Sunday, April 1, 2012

단군조선(壇君朝鮮)이 신화(神話) ? 제2부

● 현 요하(遼河)는 916년부터 만들어진 지명

거란족 야율아보기가 현재의 내몽고 자치구에 있는 파림좌기(巴林左旗)에 도읍을 정하고 요(遼: 916-1125)나라를 세움으로서 이곳의 하천을 요하(遼河)라고 부르게 된다. 요나라를 세우기 이전의 요하는 하남성과 산서성 혹은 섬서성과 산서성 사이의 황하(黃河)를 요하나 요수(遼水)로 불렀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 할 때의 요수, 요하는 위에서 언급한 황하를 지칭함을 분명히 밝힌다. 고구려가 망하고 248년후에 요나라에 의해 새로 생긴 요하(遼河) 때문에 한국의 재야사학자들도 이에 속아 수(隋)와 당(唐)이 마치 이곳 요녕성까지 처들어 온 것으로 잘못 알고있는 것이다.

현재의 요하는 요녕성 서북부 내몽고 자치구의 노합하(老哈河)와 서랍륜하(西拉倫河)를 뜻한다. 홍산문화가 발견된 지역은 노합하의 상류에 있는 적봉시(赤峰市)의 동북에 위치한 홍산(紅山: 붉은 산을 의미)으로 단군조선(壇君朝鮮: BC2333-BC237)의 5경(五京: 다섯 곳의 도읍지)의 한 곳으로 <삼국유사>에서 말한 무엽산(無葉山)으로 보이는 곳이다.

요(遼)나라의 도읍지인 파림좌기 남쪽 약 441리에 위치한 산이다. 홍산은 붉은 산으로 철 성분이 많은 바위 산이기 때문에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나무가 자라지 않으니 나무 잎은 존재 할 수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무엽산(無葉山: 나무 잎이 없는 산)이라 했던 것으로 보인다.

● 역사 말살이 곧 그 민족의 말살

지나의 역사에도 신화가 있고, 단군조선의 기록에도 신화가 있는데, 왜 지나의 신화는 문제가 되지않고 단군왕검의 출생(出生) 신화만이 문제가 되어, 단군조선(壇君朝鮮)의 역사가 송두리째 부정되고, 매도되고, 말살되어야 한단 말인가?

역사학자 토인비는 “ 한 민족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그 민족의 역사를 말살(抹殺)하는 것이 식민제국주의자들의 철학이다.”라고 했다. 일본X들이 우리민족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2,096년의 찬란한, 실존(實存)했던 단군조선을 신화로 둔갑시켜 매장(埋藏)시켰다.

특히 일본인 이마니 시류(今西龍: 1875-1932)가 식민사학을 주도했고, 그의 제자였던 반민족 사학자 이병도와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의 대학 강단에서 식민사학(植民史學)을 가르치고있는 민족반역자들이 공범자들이며, 단군조선의 역사의 실체를 두려워하는 일부 기독교인들 때문에 단군조선의 역사가 신화(神話)로 된 것이다.

● 단군조선은 실존했던 나라

단군조선은 신화가 아닌 실존했던 나라이다. 단군왕검( 왕검은 이두어이고, 왕검을 환검桓儉이라고도함)은 BC 2370년 5월 2일 인시( 새벽 3시 - 5시사이)에 태어났으며,아버지는 배달국 (倍達國)의 18대 거불단환웅(居弗檀桓雄)이다. 왕검은 14세때 비왕( 왕을 보좌하는 왕)이 되어 24년간 있다가, 무진년인 BC 2333년에 아사달(阿斯達: 이두어로 새로운 땅 혹은 새로운 산이란 뜻으로, 필자는 현 산서성山西省 태원太原으로 비정한다.)에 도읍(都邑)을 정하고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비왕으로 24년간, 단군으로 93년간, 130세까지 살았다. 단군조선(壇君朝鮮)은 지나의 왕조인 요(堯), 순(舜), 하(夏), 은(殷), 주(周)의 상국(上國)으로 조공을 받았으며 왕조가 바귈때마다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음을 여러 사서에서 볼 수 있다. 단군조선(壇君朝鮮)은 1대 왕검(일명 환검)부터 47대 고열가 단군까지 2,096년간의 장구(長久)한 역사를 누린 어느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실존(實存)했던 국가이다.

암울한 시대를 만나 식민사학자(植民史學者)란 오명(汚名)을 갖게 되었던 이병도 선생도 작고(作故)하기 전에는 “ 단군(壇君)은 신화(神話)가 아닌 우리 국조(國祖)다.” 라고 했다하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단군(壇君)이 국조가 아니라 왕검(王儉: 환검桓儉)이 국조라 했더라면 더 휼륭했었을 것이다. 단군이란 고천제(告天祭: 하늘에 제사지냄)를 지낼 때 주인(主人)이자 천자(天子)란 직책이지 사람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단군조선 때의 단군(壇君)은 한분이 아니고 모두 47분이였다. 현재의 대통령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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