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1차사료와 문헌자료의 사료비판등의 논평

265 comments:

  1. 에서 알 수 있듯이 고구려의 요동은 오늘날의 산서성이고 요서는 넓은 의미로는 섬서성 동북부, 하남성 서북부, 산서성 남서부이며 좁은 의미의 요서는 산서성 남서부이다. 한국 제도권 식민반도 사학계의 통설인 오늘날의 요녕성 요하를 경계로한 좌측 요서, 우측 요동은 엉터리임을 밝힌다.2/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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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를 통하여 함께 살펴본 고구려의 압록수(요수)는 오늘날의 산서성에 위치한 하천으로 "고구려시기 압록수가 현재의 압록강이 아니고 현재의 요하"라고 한 고광진, "현재의 탁장하와 청정하가 요수"라고 비정한 김진경, "요하는 길고 수많은 지류들이 있어서 지역과 구간에 따라 여러 가지 강 이름이 혼재되어 있으며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어떤 구간은 압록강으로, 어떤 구간은 혼동강, 대요수, 소요수, 거류하, 고려하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는 남의현, "요수는 현 요하가 아니라 난하나 난하부근 강이어야 한다."는 최은형, "거마하를 요수"로 추정한 장우순과 문치웅, "요수는 현재의 요하라는 것을 확인하였다."는 오현수, "요수를 영정하"로 파악한 김종서, "압록수(강)를 한반도의 압록강"으로 본 김경춘, "압록강을 한반도의 압록강"으로 설정한 박노석 등 선행 연구자들의 주장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적 고증에 의한 역사적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오류였음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김태영, 20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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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하동은 황하의 동쪽으로 오늘날의 산서성을 가리킨다고 하였으니 고죽국은 산서성에 위치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기존 선행연구자들인 신용하, 송호정, 정형진, 오장록, 김종서, 그리고 맹극탁력 등은 고죽국이 오늘날의 하북성이나 요녕성에 위치하였다고 비정, 추정, 주장한 것은 오류임이 분명하게 밝혀지는 대목이다. 고죽국의 상징인 수양산은 황하의 동쪽인 경도 110도의 우측인 산서성에 위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북성이나 요녕성은 황하의 동쪽인 하동이 아니며 황하와 인접해있지 않은 직선거리 약 2,000리가 넘는 지역이다. 하북성에 고죽국이 있었다고 믿는 것은 역사왜곡의 산물로 본고 제3장 제1절 중간 손문정부 업급부분을 참조하기 바란다. (김태영, 202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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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논평 감사합니다. 말하는 기능이 중요합니다. 동서양 역사를 살펴보면 말을 잘하는 사람도 있었고 말을 잘 할줄 모르는 사람도 있었어요. 모세의 형 아론은 말을 잘했고, 로마의 쎄네카도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지요. 진시황의 책사 이사와 동문수학을 했던 한비자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6살에 과 을 배워 22만자를 외운 동방삭도 있어요. 말을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가 중요하지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철학이라 정의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독배를 마시고 죽었어요.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책한권 남기지 않았지만 2,400년이 지난 오늘 날에도 소크라테스의 이름은 청사에 길이 빛나고 있습니다. 조선조의 사육신도 모두 자신들이 한 말에 책임을 지고 죽음을 당한 것이나 같지요. 이들 모두 멋진 사람들이예요. 멋이있어 그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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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정치적인 논평을 싫어하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한마디 적도록하지요. 의대생들이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는 히파크뤄티스 선서를 합니다. 의학의 아버지인 희파크뤄티스(Hippocrates)의 업적을 기리는 윤리강령같은 것이지요. 그 중 한 가지 맹세로 "의사는 환자에게 해악을 끼치거나 아프게하는 일을 삼가하며 모범적이고 지적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맹세한다"입니다. 미국의학협회(AMA)는 1847년에 설립되었는데 의학협회가 설립된 후부터 의학계의 모순들이 나타납니다. 다시말하자면 히파크뤄티스의 윤리 선언은 이미 없어졌어요. 그들에게는 오직 '돈'에만 관심이 있어요.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가 인간을 이토록 타락하게 만든 것이지요. 원래 선비사(士)자는 주나라때부터 나온 단어로 "왕을 위해 봉사하는 귀족으로 가장 바람직한 인간상"을 의미했어요. 그 후 변천하여 선비(士)란 이, 해, 고, 락, 생, 사, 영, 욕을 초월한 사람을 의미하지요. 남을 위해 희생하는 그런 표본 말입니다. 집단이기주의 때문에 국민의 생명에 관심이 없는 의사는 더이상 의사가 아니지요. 사(士)의 자격이 없어요 자(者)도 분에 넘칠 듯 하네요. 도깨비 괴(傀)를 사용하여 의괴(醫傀)가 적당할 듯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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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논평 감사합니다. 그리고 옳은 말씀입니다. 한국의 역사학계가 큰 문제예요. 교수라는 사람들이 도대체 공부를 안해요. 책들을 안읽어요. 세상에 동양사를 전공했다는 박사, 교수, 사람들이 사마천의 조차도 읽지 않아요. 대신 조선후기 실학자란 사람들의 엉터리 개인 의견을 학설이라고 굳게 믿고 있으니 한심합니다. 중공의 동북공정과 싸워야할 동북아 역사재단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들을 읽어보고 논문을 발표하여 그들의 잘못된 주장을 반박하면서 논리적으로 싸워야 하는데 그런 것은 안하고 중공사람들의 왜곡 조작된 역사책들만 번역하는 수준입니다. 동북아 역사재단에서 출판한 책들 다 읽어보았는데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어요. 정부에서 엄청난 재정지원을 받는 것으로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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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Paul Kim 토착 동이배달한민족의 피를 받은 사람입니다. 본은 김녕으로 신라 경순왕의 4째 은열의 후손으로 김녕의 시조는 시흥(時興)이라는 분이지요. 4자인 은열은 고려 왕건의 낙랑공주와의 사이에서 출생한 분이지요. 그래서 저는 신라 935년의 피와 고려 457년 합 1392년의 '김씨'와 '왕씨'의 피를 받은 셈이지요. 먼 엣날 연등금선자(BC8011)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분이 한인(桓因)의 5대손이라 합니다. 그리고 김씨의 원시조로 알려진 소호금천씨(BC2578)가 있었는데 김씨의 원류를 연구해 보았더니 대단해요. 연등금선자가 김씨이고 한인의 5대손이니 결국 한인(BC8936)이 김씨라는 논리가 성립되더군요. 그래서 인지 김씨라는 사실에 항상 자부심을 가지고 삶니다. 역사가 증명해주는데 김씨의 피를 가진 사람은 매국노역적이 없어요.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구적 중에 김씨가 단 한명도 없다는 사실이예요. 즉 권중현, 박제순, 이근택, 이완용, 이지용, 고영희, 송병준, 이병무, 이재곤, 임선준, 조중응, 민병석, 윤덕영, 이재면, 조민희 15명 중 김씨는 단 한명도 없어요. 멋있지 않아요. 김선생님의 고명한 댓글에 답글을 달다보니 그만 김씨 집안의 역사를 알려드리게 되었네요. 방문해 주시고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왜곡 날조된 동이배달한민족사를 바로잡아야 되지않겠습니까. 즐거은 시간 되세요. 이글은 김요셉 선생님에 대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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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왜곡된 역사 내용을 바로잡는다.

    “고황제 천자로 기록된 태조 리성계가 천하통일 사해통일 천하일가를 이룩했다는 기록”에 대한 논평이다.


    한 facebook 역사 게시물에 “태종실록 5권 태종3년(1403) 6월 18일 갑자 2번째 기사 1403년 명 영락(永樂) 1년”에 대한 오류를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태종실록이 기록하고 있는 당시 연호인 영락1년은 명(明)나라 주원장의 서자로 4째 아들이자 3대 왕인 주체(朱棣: 재위, 1402-1424)의 연호이며 고황제나 태조는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을 일컫는 말이다. 조선은 명나라의 속국으로써 조선을 세운 리[이]성계는 천자(天子)도 아니고 천하통일도 하지 않았으며 사해 통일은 물론이고 천하 일가도 이룩하지 못한 왕조의 왕이다. 이씨조선은 동이배달한민족사에서 가장 치욕스런 사대의 극치를 보여주었던 왕조였다.

    태종실록 첫머리에 “칙유(勅諭)는 이러하다”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칙유란 ‘천자의 선유(宣諭)를 백성에게 포고한다’는 뜻이고 선유(宣諭)란 임금의 훈유(訓諭)를 백성에게 포고한다‘는 의미이며 훈유란 ’가르쳐 깨닫게 한다‘는 뜻으로 명나라 황제인 주체가 속국인 조선의 백성에게 가르쳐 깨닫게 한다는 기록이다. 1403년 6월 18일자 태종실록의 1,064자로 기록된 이 내용은 이성계나 이방원이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자로 기록된 태종실록의 본문을 한글로 훌륭하게 해석하였으나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른 해석을 하여 사서를 왜곡한 결과가 되어 심히 유감이다. 명나라의 역사를 알지 못하여 빚어진 실수가 아닌가 한다. 역사적 사실이 아닌 이와 같은 잘못된 글은 facebook에서 즉시 삭제해 주길 바란다.


    명나라 3대 왕인 주체(朱棣)는 조카인 2대 왕인 건문제(建文帝)를 ‘정난(靖難)의 변’을 일으켜 죽이고 황위를 찬탈하였다. 당시 최고의 학자인 방효유(方孝孺)에게 자신의 즉위조서를 강제로 쓰게 하였다. 붓을 받아든 방효유는 ‘연적찬위(燕賊簒位)’ 즉, ‘연왕(燕王: 주체)이 왕위를 찬탈했다’라는 네 글자를 쓰고서 붓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화가 난 주체는 방효유와 그의 구족(자신을 포함 위로 4대 즉, 부, 조, 증조, 고조와 아래로 4대 즉, 자식, 손자, 증손, 현손을 포함)을 죽이고 방효유와 관계된 사람들 모두 870명을 죽인 무도한 자였다.

    더욱더 가증스러운 것은 동이배달한민족사를 가장 심각하게 왜곡, 날조, 조작한 장본인이 영락제라고 하는 주체라는 사실이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을 방문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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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작성자 Rainbow Lin 도(道)의 의미를 잘 아실것으로 믿고 노자나 장자는 같은 도가(道家)이지요. 노자의 에 "大道甚夷民甚好(대도심이민심호) 큰도는 동이의 백성들이 좋아한다. 혹은 큰 도는 동이의 백성들에게 안락하고 좋은 것"이란 말을 남겼어요. 장자는 노자의 도를 이은 사람이지요. 장자는 하남성 상구에서 태어났어요. 하남성은 은(殷)나라 였고 은나라는 동이족이니 장자는 당연히 동이족이라고 믿어요. 장자의 '소요유(逍遙遊)'만 읽어봐도 동이족의 웅대함을 알 수있지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지만 동이족이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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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작성자 Rainbow Lin) 지금까지 연구해본 바로는 묵자는 고죽국의 백이숙제의 집안으로 동이족이지요. 백이의 윈래 이름은 묵윤(墨允)이고 숙제의 본명은 묵지(墨智)였어요. 묵자는 동이라고 믿어요. 참다운 민주주의를 실천하려면 묵자의 사상을 알아야 해요. 노자, 장자, 묵자는 공자, 맹자와는 여러면에서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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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작성자 고마워요. '홍익인간'이란 뜻 아시지요. 많은 사람들은 홍익인간을 외치는데 정작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모든인간을 이롭게하는 것'이 자본주의 인가요? 자본주의는 누가 만든 것인지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유태인이 만든 것이 자본주의 이지요. 자본주의 때문에 '유태인 문제'가 대두되었고, 자본주의 때문에 유태인들이 한때 전 유럽 나라들에서 추방된 적이 있어요. 자본주의 때문에 히틀러가 '유태인 학살'을 하고, 자본주의 때문에 지구가 망가져서 온난화가 일어나 만물이 죽어가고 있으며, 자본주의 때문에 칼막스가 '자본론'을 지었지요. 이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 수많은 인간들이 굶주려 죽어가고 있어요. 참담한 현실이지요. 빈부의 차이가 심하고 금력과 권력의 부패의 온상이 자본주의 때문이지요. 자본주의 때문에 제국주의가 생겨났어요. 인간의 참다운 자유와 평화와 자연의 조화를 파괴한 주원인이 바로 자본주의랍니다. 깊게, 넓게, 높이 공부하고 연구하면 답을 쉽게 얻을 수 있어요. 어떤 면에서 묵자를 사회주의 자로 생각할 수도 있지요. 나는 모든 주의를 싫어합니다. 무정부주의자라 할까. 그래서 노자, 장자, 묵자와 같은 도가들을 좋아하지요. 내가 바라는 것은 누구에도 구속받지않고 우주자연과 벗하면서 살아가는 참다운 자유이지요. 다만 과학은 우리 인간이 끊임없이 발전시켜야한다고 믿지요. 인류를 구해줄 유일한 방법은 주의가 아니라 과학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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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작성자 역사와 정치는 다르지요. 역사는 사실로 말하고 철학은 논리로 말하며 정치는 술수(術數)로 말하지요. 정치적 그리고 이념적인 사고가 개입되면 그 역사는 왜곡, 날조된 역사이지요. 역사는 순수한 역사여야해요. 내가 상대방과 싸워서 패배했을 때는 패배했다고 적어야하고, 그 패배가 미인계의 술수로 인해 패배했을 때는 미인계의 술책에 속아 패배했다고 사실대로 기록하는 것이 역사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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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작성자 너무나 슬퍼하지마세요. 좋은 일들이 곧 일어날 것으로 보이니까요.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해 해야 해요. 100억대 1의 경쟁율을 통과하여 태어난 것이 인간이니 얼마나 귀중한 생명인가요. 행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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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Facebook에 게제된 허구의 조선 강역 주장에 대한 논평이다.

    “조선의 중심무대 그 력사적 강역은 아메리카다!”는 역사적 사실이 아님을 논증한다.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모든 사건을 기록한 것”이라고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웹스터 사전(Webster Dictionary)이 설명하고 있다.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기록한 학문이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을 주장할 때는 반드시 그 당시에 쓰여진 1차사료와 그런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논증해야 하는 것이다.

    소금이 인체에 중요하다는 것은 평범한 진리로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15세기 이전 천연소금이 단 하나도 없는 아시아 지역에는 해변가에 소수민족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며”라고 하는데 BC2707년에도 동이배달한민족의 중원이었던 산서성(山西省) 남부에는 천연 염지가 있어 오늘날까지도 엄청난 천연소금이 생산되고 있다. 이 천연 염지는 산서성에 있던 운성염지(運城鹽池)로 동서 35km 남북 7km의 크기이며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탁록이다. BC2707년부터 10년간 73차례 치우천자와 황제헌원이 이 염지를 소유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던 곳이다. (김태영, 『동이배달한민족사』(개정증보판), 세계출판사, 2019, pp.43-47 참고) 오늘날에는 해지(解池)라고 부르고 있다. 어찌 아시아에는 천연 염지가 없었다고 어떤 문헌에 근거하여 그런 망발로 단정하는가.

    “추정되며”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추측이나 추정이나 비정은 개인 생각으로 역사적 사실이 아닌 허구의 소설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여러 차례에 걸쳐 한반도에는 이씨조선만의 도읍지가 있었고 단군조선을 비롯하여 북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대진, 고려 등 모든 동이배달한민족의 도읍지(都邑地)는 아시아 대륙에 있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제도권 식민 반도사관에 쇠뇌되어 한반도에 갇혀있기 때문에 이런 허구의 억측(臆測)과 억설(臆說)과 억단(臆斷)이 나오게 된 것으로 본다.

    역사적 사실을 논할 때는 다음과 같은 기본요건이 있다. 논리적이어야 하고 객관성이 있어야 하며 설득력이 필요하고 누구든지 그 주장을 검증할 수 있는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오바마’ 대통령은 ‘오’씨로 한국의 성씨이니 미국은 당연히 대한민국의 영토여야 한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몇가지 더 살펴보자. ‘소크라테스’ ‘소’씨이니 그리이스도 우리의 영토였고, 미국의 남북전쟁 때 ‘이장군’은 ‘이’씨이니 미 남부도 우리의 영토, ‘나폴레온’은 ‘나’씨이니 프랑스도 우리의 강역, ‘배이컨’은 ‘배“씨이니 영국도 우리의 영토, 노벨상을 만든 ’노벨‘은 ’노‘씨이니 스웨덴도 우리의 ”력사 강역“이 될 수 있는지 묻는다.

    미대륙에 이씨조선(대조선?)이 있었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는 그만두는 것이 민족사를 정립하는 길임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왜곡 날조 조작된 동이배달한민족사를 바로세우기 위해 조선의 실학자들을 비판해야 하고 중공의 동북공정의 단초를 제공한 김육불을 비판해야 하며 한국 제도권 식민 반도 사학자들과 싸워야 하고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역사왜곡에 대항하여 역사적 사실을 밝혀야 하는 이 바쁜 일정에 이성적이지 못한 한국동포들과 허구의 소설까지 논평을 해야하니 앞이 캄캄하다. 제발 부탁드리는 바이다. 이성으로 돌아가 주기 바란다. 앞으로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비논리적인 글은 관리자의 재량으로 삭제코자 하니 양해 바란다.
    고구려의 요동이던 산서성 남부 천연소금이 산출되는 염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논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김태영, 『고구려의 요동 위치 연구』 제7집, 세계출판사, 2020)


    www. coreanhistory.com에서 누구든지 확인할 수 있으니 참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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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작성자 좋은 말이네요. 역사의 삼대 요소는 사람, 장소, 시간이예요. 시간과 장소는 같은 의미이지요. 그래서 물리학에서는 시간과 장소를 구분하지않고 시공간(Time and space)을 함께 사용하지요. 공간 즉 장소가 역사의 66%를 차지하네요. 한마디로 말하면 역사는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무왕, 진시황, 노자, 공자 이 사람들이 어디에서 활동했던가요? 한반도인가요 아니면 미 대륙인가요? "춘추삼전(春秋三傳)"을 아시지요. 첫째, 제사에 관한 기록이고 둘째, 전쟁에 관한 기록이며 셋째, 천재지변에 관하여 기록한 것이 이지요. 물론 왕들이 있었지만 사람은 전쟁이나 천재지변보다 중요성이 덜 했지요. 생각해보세요 천재지변과 전쟁과 재사를 어디에서 하나요? 바로 장소예요. 그래서 역사는 장소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 믿고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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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작성자 큰일 날 말씀을 하시네요. 역사학을 전공하신 분이! 1392년 이성계가 이씨조선을 세우기 전까지 동이배달한민족의 모든 왕조의 도읍지는 아시아 대륙에 있었어요. 고구려가 668년 당과 신라의 연합군에게 패망할 당시 고구려는 지금의 산서성에 있었어요. 아름다운 1차사료와 문헌자료들이 그렇게 기록하고 있지요. 두루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역사를 왜곡하려고 발버둥쳐도 문헌사료가 너무나 많아 그 모든 사서들을 다 첨삭하기란 불가능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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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작성자 역사학자는 사실로 말하기 때문에 1차사료와 문헌자료의 기록만 믿어요. 정치적인 그리고 이념적인 요소와는 거리가 멀지요. 역사학자는 역사의 진실만 밝히면 되는 거랍니다. 중공이 자기의 땅이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동이배달한민족이 그들에게 빼앗긴 땅이니까요. 그러나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대진, 삼한, 단군조선의 역사는 중공이나 지나의 역사가 될 수 없지요. 그 역사는 지금의 대한민국과 북조선의 역사이기 때문이지요. 영토를 실효 지배하는 것과 역사는 완전히 다르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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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작성자 이들이 주장하는 1909년 순종황제의 "지중해 해상충돌 방지법"이라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순종실록 권3, 순종2년 [1909년] 10월 8일자의 기록이다. "八日, 法律第二十七號, 海上衝突豫防法. 裁可頒布(팔일, 법률제27호, 해상충돌예방법. 재가반포.) 8일 법률제27호 해상충돌예방법을 재가하여 반포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지중해"란 기록은 전무하다. 또한 "순종황제"라고 기록되어있지도 않다. 에는 이들이 주장한 내용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을 왜곡한 것이다. 사서에 기록되어 있지않은 내용을 사서를 빙자하여 마치 자신들의 주장이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사서를 왜곡하는 것은" 중대한 범죄행위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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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논평한다.

    Facebook ‘한국역사 그룹’에 남긴 댓글 “고구려가 황하를 경계로 하였다면 수당에서 몇십만 백만대군 동원했다는게 이해가 됩니다... 아니면 장안에서 대동강까지 어떻게? by 이기홍”에 대한 논평이다.

    우선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이 선생께 진정어린 큰 박수를 보낸다. 상식(常識)이란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어야 할 이해력, 판단력, 사려, 분별 등”을 말한다. 지금부터 기본적인 상식을 가지고 생각해보자.

    수•당이 있었던 섬서성 서안(西安)에서 한반도 대동강의 평양까지는 직선 거리로 약 3,744리에 달하는 거리이다. 강과 산을 피해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는 평지인 곡선의 도로를 택한다면 6,000에서 7,500리의 먼 거리가 될 수 있다. 긴창과 무거운 칼로 중무장한 보병들이 6,000–7,500리를 걸어와 고구려의 군사와 싸웠다는 얘기는 마치 “손오공 원숭이가 하늘을 날았다는” 허구인 소설과 뭐가 다른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기 바란다.

    위도 35도로 나뉘는 황하(해, 하, 수)를 경계로 하여 고구려는 산서성에, 수(隋)와 당(唐)은 섬서성 서안(장안)에 도성이 위치했기 때문에 그 많은 군사의 동원이 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동양 최초의 역사서이자 지리서인 를 비롯하여 , , , 등 수많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조사, 검토, 비교, 분석, 교차확인하면 산서성에 고구려의 도읍지였던 국내성, 평양성, 안시성, 환도성, 영락궁 등이 존재하였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수와 고구려 당과 고구려의 전쟁은 수•당과 아주 가까운 고구려의 강토 산서성에서 비롯되었던 전쟁으로 한반도와는 전혀 무관한 지역이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제도권 식민 반도 사학자들은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며 1차사료와 문헌자료들을 꼼꼼히 읽은 후에 고증과 실증을 할 수 있는 논거를 제시하면서 논증해주기 바란다. 더불어 충고한다. 대한민국의 방송사에서 역사극을 제작할 때는 반듯이 역사적 사실만을 알리기 바라며 특히 지리지명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을 피해야 할 것이다. ‘허구의 역사 drama’로 시청자들을 더 이상 우롱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래 그림에서 고구려의 도읍지 평양성의 위치를 가늠하기 바라며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을 방문하여 게제된 필자의 논문들을 읽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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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삼국지 소설에 나오는 관우(160-220)는 하동군(河東郡) 해현(解縣) 사람이지요. 정확하게 말하면 고구려의 영토였던 산서성에 있는 천연염지인 운성염지 부근이지요. 그 곳을 해현이라합니다. 관우는 조국인 고구려에서 망명을 하여 탁군(涿郡)으로 달아났지요. 탁군과 탁현은 황하를 건너 섬서성에 있는 지명입니다. 오늘날의 하북성이 아니지요. 관우는 한(漢)나라가 있던 섬서성으로 망명하여 유비가 고향에서 병사들을 모을 때 장비와함께 유비를 호위하지요. 동이배달한민족의 지리지명을 모두 하북성 요녕성으로 옮긴 나라가 바로 명(明)나라이지요. 그래서 명나라는 관우의 사당을 관우의 조국이라할 수 있는 고구려의 영토인 산서성에 만들어 놓았어요. 고구려의 환도성이 있던 지금의 화염산에 관우의 사당이 있지요. 현대 지도를 보고 화염산의 관우의 사당을 찾아보세요. 바로 그곳이 고구려의 환도성 자리랍니다. 임진왜란 때에 명나라가 이조선을 도와주면서 한반도 곳곳에 관우사당을 세우지요. 왜인지 아세요? 고구려의 영토와 이조선의 영토안에 관우의 사당을 만든 이유는 '우리 민족을 조롱하기 의한 것'이었지요. 참으로 기분 나쁜 일입니다. 그렇지만 역사의 진실을 알고나니 시원하지않으세요? 왜곡, 날조, 조작되어온 동이배달한민족사를 정립하는데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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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신라의 10대 성인이라는 글에 대한 논평입니다.
    극(劇)이란 "연극이나 희극이나 유희"등을 통칭하는 말로 대중을 즐겁게 하는 문학의 한 장르이며 '역사적 사실'과는다르지요. 신라의 10대 성인(聖人)이라 주장하시는 인물들은 성인이라 기록된 1차사료나 문헌 기록이 없어요.
    김견명 스님이 지은 에 의하면 "신라왕 김씨[진평왕]는 [원광]을 만나보고 공경하여 성인처럼 우러러 모셨다'라고 적고 있지요. 성인이 아니라 '성인처럼' 존경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원광은 10명의 이름 속에 없군요. 필자의 생각으로는 원광은 성인에 가까웠다고 봅니다. 아도는 고구려인 입니다. 신라인이 아니고 아도 역시 성인이라 기록한 객관적인 문헌사료가 없어요. 염촉의 본명은 박염촉으로 이차돈으로 알고 있는 승려이지요. 이차돈 역시 성인이었다는 기록이 없어요.
    우선 다음과 같은 한자의 뜻을 먼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선(禪), 도(道), 현(賢), 성(聖) 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필자가 게제한 한자의 뜻풀이를 참고하시면 유익할 듯합니다. 현인은 스승이 있으나 성인은 스승이 없이 홀로 수많은 책을 읽어 스스로 도통의 경지를 넘어선 마지막 단계를 의미하지요. 그래서 '도통성인'이라 합니다.
    성인이란 기(氣)인 하늘의 소리와 인간의 소리와 땅의 소리를 자유자재로 들을 수 있는 귀구멍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도통한 사람은 꽤있지요. 노자와 예수같은 인물이 성인이었지요. 공자도 성인이 못되었구요. 노자는 책 1만권을 읽고 도를 통한 성이이고 예수는 14세에 인도북부 캐쉬미르에 와서 12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수많은 경전을 읽고 도를 통한 성인이지요.
    노자와 예수는 스승이 없었어요. 승자생활로 시작한 승려는 자신의 스승이 정해지기 때문에 성인이 될 수 없지요.
    성인이 되면 달라지는 모습이 있지요. 모든 세상의 욕망이 사라집니다. 식욕, 성욕, 재물욕, 명예욕을 비롯하여 모든 탐욕이 사라지지요. 정치참여를 해도 안되고,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안절부절 해도 안됩니다.
    세상에 초연해야 하지요. 그리고 언제나 당당하고 비굴하지않아요. 아주 검소한 생활을 하지요. 사치를 모릅니다. 그러나 1만년의 전생을 보고 1천년의 내세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지요. 매사에 조심하고 하찮은 불행일지라도 닥아오는 불행을 심히 염려하지요. 진리를 말하지만 일반 대중들은 이해를 못하지요. 성인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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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편의 이야기 잘 알고 있지요.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랍니다. 김견명 스님이 10성인이라 하는 각자를 아래 인용문의 내용과 그들의 행적을 대조해보면 성인인지 아닌지 쉽게 알 수 있지요. "성인이 되면 달라지는 모습이 있지요. 모든 세상의 욕망이 사라집니다. 식욕, 성욕, 재물욕, 명예욕을 비롯하여 모든 탐욕이 사라지지요. 정치참여를 해도 안되고,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안절부절 해도 안됩니다. 세상에 초연해야 하지요. 그리고 언제나 당당하고 비굴하지않아요. 아주 검소한 생활을 하지요. 사치를 모릅니다. 그러나 1만년의 전생을 보고 1천년의 내세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지요." 이와같은 성인이 갖추어야 할 행위 때문이었지요.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이란 바로 '행위'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들의 업을 보면 성인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알수 있어요. 이미 고인이 되신 훌륭한 스님들을 욕보이고 싶지않아 지나친 것 뿐이지요. 역사는 사실만을 기록해야 합니다. 사실만을 기록하지 않을 때는 두고두고 화근이 되지요. 그래서 속된 말로 '역사를 4심'이라 한 것 같습니다.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밝힐 때에는 수많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조사, 비교, 분석, 검토, 교차확인한 후 고증과 실증을 해야합니다. 분명하게 짚고넘어가야 할 구분이 있어요. 역사와 문화는 다릅니다. 역사속에 문화가 자리하는 것이지 문화가 역사는 될 수 없지요. 대한민국 사람들만 문화나 고고학을 역사로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극(劇)으로서의 작품은 문학적 가치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역사적 사실이 아닙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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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역사서는 이긴자의 글"이라는 생각과 비슷한 말을 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영국의 죠쥐 오우웰(George Orwell)은 "우승자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고 했고, 영국의 춰췰(Churchill)도 "승리자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라고 했어요. "역사란 합의된 허구에 불과하다'고 말한 너포울리언(Napoleon)도 있지요. 그런데 세계의 권위를 자랑하는 웹스터(Webster) 영어 사전에는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모든 사건을 기록한 것"이라고 뚜렷하게 정의 하고 있지요. 필자도 웹스터의 정의를 따릅니다. 사전은 객관적인 내용을 기술합니다. 승리자의 일방적인 역사기록은 왜곡, 날조, 조작된 역사가 될 수 있지요. 그러한 이유로 참된 역사학자는 역사적 사실을 밝히려고 갖은 애를 쓰는 것이랍니다. 역사는 사실그대로의 기록이여야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UFO가 지구에 나타났어요. 영국의 춰췰은 그 같은 엄청난 사건을 "향후 최소한 50년간 발표하면 안되다"고 경고했어요. 2차대전에서 영국은 전승국이 되지만, 독일에 승리했다고 하여 UFO 사건을 언급한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지 않았지요. 승리자의 역사란 보는 관점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됩니다. 결론은 역사를 기록할 때 정치적 그리고 이념적인 요소가 개입되면 안된다는 것이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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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의미있는 논평 감사합니다. 작금의 한국사회를 살펴보면 황금만능주의가 만연해있어요. 송나라 때 주자가 좋은 말을 남겼지요. "백성이 부유하더라도 가르치지 않으면 금수(짐승)에 가까워지므로 반드시 학교를 세우고 예의를 밝혀 백성을 가르쳐야한다." 지금 한국에는 학교가 넘쳐나는데 교육의 본연인 진리를 가르치지 않으니 걱정이지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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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동이배달한민족의 역사가 지금도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어요. 동북공정이 그 한예입니다. 김육불이라는 중공의 역사가가 조선 말기의 실학자들이 허구의 소설로 지은 문집이나 , , 등을 보고 그대로 왜곡을 이어갔어요. 기가막힐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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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에고의 영역에 분석적, 논리적, 이성적, 합리적인 면이 포함되는가?
    “에고는 이원성을 기반으로 세상을 본다. 이원성 잣대는 매우 분석적이면[서]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이라고 칭찬을 받지만 에고의 영역이다”라고 한 글에 대한 논평이다.
    우선 이글은 수필(essay)로 보인다. 수필이란 “생각나는 대로 붓가는 대로 형식없이 기술한 문학의 한 분야”를 말한다. 따라서 수필은 객관적이지도 못하고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도 못한 글을 말한다. 때문에 수필은 극히 이기적인 글일 수 있다.
    ego를 영어 발음으로는 ‘이고우’ 또는 ‘에고우’라 하지만 인용문의 “에고”를 따른다. 에고는 철학에서 “절대아(absolute self)”를 말한다. 철학이란 그리스어의 philosopia에서 유래된 것으로 지혜(sopia)와 사랑하다(philo)로 “지혜를 사랑하다”라는 의미이다. 즉 진리에 대한 탐구를 뜻한다.
    에고라는 글자에는 분석적, 논리적, 이성적, 합리적이란 의미가 전혀 없다. 먼저 이성이란 단어를 살펴보자. 이성을 reason이라 하는데 감정이나 감성과 대치되는 단어이다. reason의 의미는 이유, 동기, 도리, 이성, 지성, 추리력, 판단력, 본정신, 지각, 분별, 상식, 논거 등의 의미를 갖는 용어로 ‘에고(ego)’란 뜻과는 무관하다. 다시 말하면 이성은 “에고의 영역”이 되지 않다는 말이다.
    그리스인들은 철학이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라 했고, 헤겔은 “철학은 반드시 과학적이여야 한다”라고 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은 의아하게 생각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했으며, 소크라테스는 철학이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 하였고, 플라톤은 “바른 삶을 위한 지혜의 추구”라 하였고, 필자는 “진리에 대한 질문”이라고 피력한다.
    자존심이란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으로 미덕이 된다. 그러나 자만심은 ‘자기 자신을 남앞에 뽐내는 행위로’ 미덕이 될 수 없다. 비록 생각나는 대로 붓가는 대로 쓴 수필이라 하나 철학의 본질과 논리성, 합리성, 이성적 사고(思考)를 질서없이 혼합하는 방식은 피해야 할 것이다. 위대한 철학자들을 욕보이는 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사실로 말하고 철학은 논리로 말하며 정치는 술수로 말하는 것임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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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많이 망설이다 답합니다. 현재 지구에는 약 4,300여개의 종교가 존재하고 있으며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그리고 불교의 순서로 신도들이 전세계에 분포되어 있지만 종교전쟁을 겪는 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종교보다는 권력투쟁(Power game)이라고 봅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대통령이나 수상은 허수아비나 마찬 가지이고 실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돈과 권력을 가진자들 이지요. 미대통령에 츄뤔프가 되든 바이든이 되든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종교전쟁은 제9차(1095-1272)에 걸친 십자군전쟁으로 일단 끝이났지요. 문제는 종교가 아니라 수천년 아니면 수만년 전부터 지구의 인간을 감시하고 실험해온 외계인들이 지구문제에 개입했다는 것 때문이지요. 돈과 권력을 가진자들은 기득권을 포기하려 하지않아요. 외계인들은 충고하지요. "전쟁이 그치지않고 지구가 파괴되며 이토록 세상이 혼란한 것은 인구가 너무 많고 서로 다른 종류의 인간들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입니다. 외계인들로부터 들은 충고를 그들은 실행하려고 하지요. 앞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세상은 단일정부(New World Order)로 '전체사회주의'입니다. 전 인류를 소수 독재자들이 통치를 해야 하는 데 인구가 너무 많아서 힘들다는 거예요. 그래서 인구를 60억을 감축시켜야 한답니다. 그목표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 에이즈와 지금의 바이러스 이지요. 실험실에서 의도적으로 만든 생무기이며 인구를 감소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지요. 지구 온난화를 핑계로 캠츄뤠일스(chemtrails)도 한몫 하고 있구요. 이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이용하고 있어요. 이 음모에 앞장선 자가 바로 빌게이츠 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전체사회주의 정부는 지구상의 모든 종교를 없애고 대신 새로운 종교를 만들 것입니다. 이런 무서운 음모가 비밀사회(Secret Society)에 의해 진행되고 있지요. 그런데 대다수의 인류는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못합니다. '빛을 가진자' 일루머나리들은 잘 알고 있어요. 종교전쟁은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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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두보의 어느 부분에 관심이 있으신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를 소개하려면 최소한 2-page는 가능할 것 같아 대충만 적을까 합니다. 하남성 낙양에서 가까운 공현(鞏縣)에서 태어났고 그의 조상 11대에 걸쳐 벼슬을 한 집안이지요. 진(晉)나라 유명한 장수이자 의 주석을 남긴 두예의 후손이고 당나라 초기 이름난 시인 두심언의 손자이기도 하지요. 두보는 7살부터 글을 지을 수 있는 신동이었어요. 가족과 이웃과 대중을 사랑하고 조국을 사랑한 그런 사람이었어요. 사실주의 시인으로 사물을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표현한 시인입니다. 그리고 서정시인이고 눈물의 시인입니다. "만권의 책을 읽으면 붓에 신이 들리는 것 같다"고 하여 1만권의 책을 읽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아름다운 그의 시가 1,500수가 전해오고 있지요. 그런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두보가 큰 실수를 한가지 했다고 봅니다. 벼슬 한자리를 얻기위해 자존심 상하는 글을 남겼어요. "천자께서 불쌍히 여겨 주시길 엎드려 바랍니다. 만약에 발탁하여 주신다면... 신의 눙력이 이와 같으니 폐하께서 저를 버리지 말아 주시기 앙망합니다." 명색이 사대부요 11대째 벼슬을 해온 후손으로 벼슬자리 하나 구하고자 자존심 다 구긴 결과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의 개인 의견이니 괴념치 마세요.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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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Facebook 글을 논평한다.

    “로마 가톨릭의 예수회 조직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실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에 대한 논평이다.

    이 글을 쓴 사람은 마치 타이타닉 침몰 사건을 계기로 예수회에 의해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실시되었으며 제1•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게 된 것도 ‘예수회’ 때문이고 1539년 예수회가 조직된 이래 지금까지 로마 가톨릭의 예수회 조직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실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역사적 사건을 기술할 때는 일반적인 원칙이 있다. 역사학은 수학, 물리학, 화학, 천문학처럼 공통적인 기호나 부호로 표현하지 못하고 자국의 언어로 기술해야 한다는 특수한 학문이다. 따라서 타국의 역사를 한글로 번역하여 소개할 때는 반드시 고유명사 만큼은 원어를 함께 적어야 한다는 일반 원칙이다.

    미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롸스촤일드(Rothschilds) 때문이지 예수회(Jesuit)와는 무관하다.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을 수행할 때 전쟁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롸스촤일드 같은 세계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지 않고 오늘날의 금액으로 대략 4억5천만불 상당의 국채를 발행했다.

    자신들에게서 전비를 빌리지 않고 링컨이 발행한 돈에 대해 롸스촤일드는 무척 못마땅했다. 롸스촤일드는 워싱턴에 있는 자신들의 대리인들을 설득하여 결국 1863년에 국립은행법(National Banking Act)을 만들게 하며 이 법으로 인하여 미국은 더 이상 자체적으로 돈을 발행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법이 통과되고 난 몇 주 후에 링컨은 부쓰(Booth)라는 롸스촤일드의 하수인에게 암살당했다. 연방준비제도는 연방(Federal)이란 단어를 사용하지만 개인회사로 록펠러(Rockefeller)나 롸스촤일드 같이 돈 많은 사람들이 주식을 가지고 있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역시 롸스촤일드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 그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높은 이자에 전비를 빌려주고 돈을 벌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역시 예수회와는 무관하다. 로마교황청은 전비를 빌려줄 만한 재력이 없었으며 세계대전에 참가한 나라에 전비를 빌려주었다는 문헌사료는 보지 못했다.

    예수회는 1534년에 스페인의 기사(騎士)인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Loyola:1491-1556)가 신부(Priest)가 된 후 창설한 비밀사회로 일명 ‘예수회’ 또는 ‘예수의 군대’라고 불린다. 1540년에 로마교황의 승인을 얻어 로마에 본부를 두게 되었고 예수회의 처음 목적은 이교도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는 것이었으나 세계 단일 정부를 목표로 하고있는 비밀사회들 중의 하나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비밀사회가 있다. 그러나 이 글을 쓴 이의 주장처럼 예수회가 가장 강력한 실체는 아니다. 다음 기회에 비밀사회들을 소개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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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논평 고맙습니다. 우리 속담에 "개구리가 올챙이적 모른다"는 말이 있어요. 시공간의 변화를 일컫는 것이지요. 20세기인 지금은 바티칸이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타이탄침몰, 미국 연방준비제도, 제1. 2차 세계대전, 식민지 개척 등이 일어난 시간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요. 필자는 예수회의 올챙이일때를 논평한 것이지요. 약 200년 가까운 십자군 원쟁(1095-1272)은 잔인한 인종학살의 역사였지요. 즐거운 시간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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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잘 지적하셨네요. 당나라 중렵까지 황하를 해(海: 바다)라고 불렀어요. 낙양성 북문에서 도보로 걸어갈 수 있는 황하 가운데 갈석산(대갈석, 우갈석)이 있어요. 그래서 조조가 걸어가서 이란 시를 읊었지요. 이병도가 주장한 한반도 수안의 갈석산은 하남성 낙양에서 직선거리로 약 3,130리이고 하북성 창려현의 갈석산은 직선 거리로 약 2,000리가 넘어요. 산과 강을 피해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도로를 택한다면 3,500리에서 5,000리가 될 수도 있는 거리지요. 그런데 조조가 하북성까지 2,000리, 한반도 수안까지 3,130리를 걸어가서 시를 읊었다고 믿고 있으니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일취월장하시는 이선생께 우렁찬 박수를 함께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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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잘 지적하셨네요. 당나라 중렵까지 황하를 해(海: 바다)라고 불렀어요. 낙양성 북문에서 도보로 걸어 갈 수 있는 황하 가운데 갈석산(대갈석, 우갈석)이 있어요. 그래서 조조가 걸어가서 '갈석보출하문행'이란 시를 읊었지요. 이병도가 주장한 한반도 수안의 갈석산은 하남성 낙양에서 직선 거리로 약 3,130리이고 하북성 창려현의 갈석산은 직선거리로 약 2,000리가 넘어요. 산과 강을 피해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곡선 도로를 택한다면 3,500리에서 5,000리가 될 수 있는 거리지요. 그런데 조조가 하북성까지 2,000리, 한반도 수안까지 3,130리를 걸어가서 시를 읊었다고 믿고 있으니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일취월장하시는 이선생께 우렁찬 박수를 함께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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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자궁백신뿐만 아니라 모든 백신(Vaccine)은 인체에 해롭다. 백신에는 수은이나 알루미늄 같은 중금속을 넣어 인체의 면역체계를 자극하는 작용(Function)을 하기 때문이다. 1918년 유럽을 강타한 전세계적 독감으로 2천만명이 죽었다. 아이러니 한 사실은 백신 접종을 거부한 사람들은 살아남았고 백신 주사를 맞은 사람들이 죽었다. 세계를 이끌어 가는 비밀사회들이 바티칸과 한통속이 되어 전체사회주의를 향한 세계단일정부의 막바지를 위해 전 인류에게 백신을 핑계로 인간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마이크로췹을 접종시킬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 깨어야한다. 이들의 음모에 협조하는 것은 인류의 파별을 자초하는 길이다. 역사는 모든 학문의 뿌리라고 했다. 역사 속에 생생하게 기록된 사실이다. 필자의 말을 믿지않아도 좋다. 각자가 직접 공부하고 연구하기 바란다. 그러나 지혜있는 사람은 믿을 것으로 안다. 단지 학자의 양심에 따라 이같은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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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Facebook 유튜브 강의를 논평한다.

    “사고전서로 조명하는 한국상고사의 실체 – 심백강 민족문화 연구원장 – 대한사랑 역사특강”에 대한 논평이다.


    심백강이 주장한 한국상고사와 관련된 지리지명은 한국의 몇몇 재야사학자라는 사람들의 이론과 똑같은 허구로 1차사료나 문헌자료에 근거하지 못한 억설(臆說)이며 비록 ‘무경총요’를 논거로 제시하였으나 해석의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논증하여 밝힌다.

    첫째: “연나라가 있었기에 지금의 북경을 연경이라 했다.”
    역사에 등장하는 연(燕)나라는 모두 11개로 단군조선과 위만조선이 있던 춘추전국시기(770-221BC)의 연은 북연(北燕)이며 산서성 남부 일대를 일컫는 말이고 당시 북연의 도읍지는 계현(薊縣)으로 하북이라고도 부르던 산서성 남부 석진현이자 대흥현을 뜻한다. 오늘날의 하북성에는 북연이 없었다. 어느 시대의 어떤 연을 지칭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완전히 달라진다. 하북성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손문의 중화민국 때인 1938년 무렵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김태영, ‘고구려의 요동 위치 연구’(제7집) 서울: 세계출판사, 2020.

    둘째: “고구려의 뿌리가 고죽국이며 고죽국은 하북성 창려현에 있었다.”
    고죽국의 위치를 밝히는 결정적인 산이 바로 수양산이다. ‘원화군현도지’, ‘괄지지’, 그리고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 수양산은 중조산이라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중조산은 산서성 남부에 있는 산이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 “노룡현을 창려현”이라 하며 “지금의 노룡현에는 옛 고죽성이 있고 전국시 연[북연]에 속했다”라고 이 밝히고 있다. 따라서 고죽국은 산서성 남부이며 산서성이 바로 고구려의 도읍지들이 있던 곳이다. 하북성의 창려는 허구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태영, ‘갈석산의 위치 연구’(제5집) 서울: 세계출판사, 2019. 김태영, ‘유주와 영주의 위치 연구’(제8집) 서울: 세계출판사, 2020.

    셋째: “예맥족에 관하여”
    역사상 우리민족(동이배달한민족)의 명칭을 ‘상서’, ‘논어’, ‘맹자’, ‘사기’를 비롯하여 약 100종이 넘는 문헌사료에 보면 예맥(濊貊), 맥(貊)이라 불렀다. 예맥이라 불린 것은 예수(濊水)라는 하천으로 인한 것이며 산서성 남부 왕옥산(방산)에서 발원한 하천으로 일명 연수, 패수, 제수로 불렀던 강이다. 이곳이 바로 단군조선이 위치한 곳이다. 당시 단군조선의 평양인 지금의 산서성 임분을 예읍(濊邑)이라 칭하였다. 맥(貊)을 소수맥이라고도 하여 산서성 서북부 요산에서 발원한 소요수 일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김태영, ‘실학자 정약용의 역사인식 비판’(제10집) 서울: 세계출판사, 2020. 김태영, ‘고구려의 압록수 위치 연구’(제2집) 서울: 세계출판사, 2019.

    넷째: “북경에 조선하가 있음으로 한사군은 하북성에 있었다,”
    조선하(朝鮮河)는 보이지 않고 조수(朝水)에 대해 “지금의 조하(刁河)이다. 하남성 내향현 서북에서 발원한다. 등현을 경유하여 신야에서 백하(白河)로 진입한다”라고 ‘중국고금지명대사전’과 ‘중국역사지명대사전’이 기록하고 있다. 역시 “백하는 산서성 진성현(晉城縣) 남쪽 3리에 있다”라고 기록해 주고 있다. 따라서 “조선하”로 보이는 조수는 산서성 남부에 있고 왕옥산을 중심으로 한 조선현이나 패수현이 있는 지역과 일치한다. 오늘날의 하북성에는 조선하도 한사군도 없었으며 ‘무경총요’가 기록하고 있는 조선하는 산서성의 조수를 뜻한 것이 분명하다. 수많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교차 확인하면 알 수 있다. 한사군은 허구이며 한오군이 황하 주변에 위치하였음을 학술논문으로 이미 밝힌 바 있다. 김태영, ‘패수의 위치 연구’(제4집) 서울: 세계출판사, 2019. 김태영, ‘한사군의 허구성과 그 위치 연구’(제9집) 서울: 세계출판사, 2020.

    다섯째: “조선성이 있는 곳이 고죽국이며 그곳에 난하가 흐른다. 하북성에 고조선이 있었다.”
    고죽국이자 고구려의 강토인 산서성 남부에 수양산과 유수(濡水)가 위치한다. ‘수경주’에 “유수는 노룡산(흑룡산)에서 나온다... 남쪽으로 흘러 고죽성 서쪽을 지나 우측에서 현수와 합류한다”라고 적고 있다. 이 유수를 난하 또는 역수라고 불렀으며 오늘날의 속수(速水)를 일컫는 말이다. 또한 ‘로사(路史)’에 “노룡에 조선성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노룡과 난하는 고죽국이자 고구려의 영토인 산서성에 위치한 지명과 하천으로 지금의 하북성에 있지 않았다. 하북성의 난하는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역사 왜곡의 허구이다. 김태영, ‘유주와 영주의 위치 연구’(제8집) 서울: 세계출판사, 2020.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대한사랑 역사특강에서 심백강이 주장한 지금의 하북성에 있었다는 연[북연], 고죽국, 난하, 창려현, 조선하, 조선성, 한사군, 고조선 등은 필자가 논거로 제시한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입각하여 사실과 일치하지 않은 명백한 오류임이 밝혀졌다. 이들 지리지명들의 위치는 한반도나 하북성이나 요녕성과 아무 관련이 없다. 더이상 허구의 소설을 역사적 사실인양 각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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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당나라 때 시선(詩仙)이라 불린 이백의 칠언절구로 사천성 성도를 찬양한 시이군요. 당대의 눈물의 시인 두보는 이백을 "筆落驚風雨, 詩成泣鬼神(필락경풍우, 시성읍귀신) 붓을대면 비바람도 놀랐고 시가 이루어지매 귀신을 울게했다."고 평했어요. 이백은 10세에 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 5경을 통다했다지요. ‘전당시’에 수록되어 있는 시이군요. 두군데가 조금 서먹하지만 훌륭한 시를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독자들이 한번씩 읽어보고 지나갔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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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멋진 질문입니다. 박지원은 갈석산이 오늘날의 하북성 창려에 있다고 했어요. 하북성 창려현의 갈석산은 명나라가 왜곡하고 청나라가 따르던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없는 허구의 소설이랍니다. 박지원이 소설가 였으니 문헌사료에 관심이 없었겠지요 아니면 무능했던지... 동이배달한민족사의 크나큰 수치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토록 왜곡된 역사를 기록한 ‘열하일기’를 2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금과옥조로 여기는 무식한 한국의 제도권 조선 식민사학자란 친구들의 어리석음입니다. 사학자란 사람들이 책을 읽지않아요. 허구의 역사소설은 읽으면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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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논평한다.

    댓글 “기독교인들이[의] 반발이 거셀 듯하네요”에 대한 논평이다.

    ‘누가복음’ 제8장 제17절에 다음과 같은 명언이 실려있지요.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어진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For there is nothing hidden that will not be disclosed, and nothing concealed that will not be known or brought put into the open)”

    진리(眞理)는 언젠가 밝혀지게 되어 있지요. 약 200년 동안의 십자군전쟁도 지나갔고 14세기에서 16세기 후반까지 전 유럽을 휩쓸던 마녀사냥도 과거사이며 르네상스와 문예혁명을 통하여 종교와 신이란 속박으로부터의 해방과, 인간의 역사무대에서의 주인은 더이상 신이 아닌 인간이 되었지요. 지금의 주인은 인간이지 종교가 아니랍니다.

    인류에게 남은 과제는 어떻게 우주인(외계인)들의 과학을 따라잡아 지구에 닥쳐올 참담한 천재지변을 슬기롭게 피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여 살아남느냐 입니다. 20세기인 지금 허구의 소설을 진리라고 믿고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이지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미개한 그런 어리석은 자들 말입니다.

    바티칸의 천문관측소 소장인 퓨네스(Jose Gabriel Funes) 박사도 우주에 고도로 지능이 발달한 생명체(외계인)가 존재한다고 인정한 지가 벌써 12년이 지났습니다. 부정하고 싶고 싫어도 진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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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책은 지식(知識)의 보고이고 지식에서 얻은 역사는 지혜(智慧)의 관문이지요. 농담으로 이해합니다만 도서관 책을 몰래 가져오지마시고 그곳에서 열심이 많은 다양한 책을 읽으세요. 값으로 평가할 수없는 귀중한 지혜의 보배를 얻게될 것입니다.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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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직접 돕지는 못하지만 힘찬 응원은 아끼지 않습니다. 37개의 쇠말뚝 버리지 말고 박물관에 전시하여 뼈아푼 역사의 교훈을 자손에게 전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쇠말뚝은 일종의 유물로 고고학의 분야이지만 역사학의 보조학이 될 수 있기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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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어리석은 자들은 단어만 나열하면 글인줄 알지요. 비이성적이고 논리성과 합니리성이 없는 글은 아무리 미사여구로 장식해도 잡글이지요. 잘 지적한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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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독일은 도시국가(City State)였어요. 각각의 도시가 하나의 독립된 나라였지요. 그리이스도 초기에는 도시국가였고 중세의 이탈리아도 도시국가였지요. 그러나 프랑스와 영국은 도시국가의 경험을 가지지 않았던 나라이니 독일과 프랑스의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지요. 그리이스는 아주 작은 영토이지만 한때 30개가 넘는 도시국가들이 공존했던 적도 있어요. 동양의 역사도 마찬 가지이지요. 춘추전국시기 약 140개가 넘은 나라들이 있었어요. 도시국가로 보야야 합니다. 성자체가 국가라는 말입니다. 옛날에는 성(城) 자체가 하나의 국가였어요. '안시성'은 안시나라로 성주 양만춘이 왕이나 같았고, '금성'은 신라, '낙양성'은 낙양나라이지요. 그런 여러 성들이 모여 제국이 된 것입니다. 고구려의 경우는 176개의 성이 있었다고 ‘구당서’와 ‘신당서’가 기록하고 있지요. 다시말하면 독일의 도시국가처럼 고구려는 176개의 도시국가를 연방국으로 통치한 대제국이라는 말과 같지요. 그리고 역사와 문화는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文化)란 "의식주를 비롯하여 학문, 예술, 종교, 법률, 경제 등 외적 물질적인 문명(文明)에 대하여 특히 인간의 내적 정신적 활동의 소산"을 말합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김치'를 김치문화라고 하는 것을 보았어요. 김치가 어떻게 문화인지 이해가 되지않아요. 김치는 의식주인 음식의 하나이지 문화는 아니라고 봅니다. 요약하면 역사속에 문화가 있는 것이지 문화 자체를 역사와 대치시키는 것은 오류라고 봅니다.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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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향원(鄕愿)이란 지방에서 인정을 살피면서 군자(君子) 소리를 듣는 위선자를 뜻하지요. 이익의 말이 일면 옳기도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익은 성인(聖人)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못합니다. 성인은 한 개인에게는 관심이 없어요. 그가 위선자이던 군자말을 듣던 그런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도통의 경지를 넘은 사람을 성인이라합니다. 하늘의 소리와 인간의 소리와 땅의 소리를 자유자재로 들을 수 있는 귀구멍을 가진 사람이 성인이고 도를 통한 마지막 단계가 성인입니다. 석가모니, 노자, 소크라테스, 그리고 예수가 성인입니다. 이들은 일개 향원같은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지요. 대중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도통성인이란 식탐, 색욕, 재물욕을 초월한 지혜의 결정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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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인성(人性)은 선과 악이 있다고 하여 순자는 성악설을 맹자는 성선설을 피력했지요. 유학(儒學)은 공자와 맹자에서 비롯된 학풍으로 성선설을 따르는 사람들이지요. 필자는 고자와 순자의 성악설이 옳다고 지지하는 학자입니다. 인성은 원래 악하지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그런 악한 인성말입니다. 성악설을 인정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무지막지한 사람들이 출현하지 않았어요. 거짓 학문인 성선설의 주자학을 500년이 넘게 신봉하여 가식과 위선이 판을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한달에 한번씩 인성교육 받자는 견해에는 찬동 하지만 잘못된 성선설의 유학을 바탕으로한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지요. 교육을 누가 시킬건가요? 교육을 시킬 교육자가 위선자이고 가식자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인간 의식개조 혁명을 해야합니다. 유교에서 하루빨리 탈피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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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이백의 새하곡6수중 기육(其六)에 해당한 곳으로 인용시에 첫줄에는 "항대야사막(降大野沙漠)"을 "봉화동사막"으로 잘못 음을 달았고 해석또한 잘못된 것같습니다. 여기서의 '대야'는 우리 역사에 나오는 그 유명한 '발해'이자 '동해'인 하남성과 산동성 사이의 '대야택'으로 이지역을 뜻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태백이 이 시를 지을 당시인 당나라 말 이곳은 대조영의 대진국 영토였어요. 황하강과 접한 지역으로 대야택=발해=동해는 같은 지역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지요. 그 흔적으로 '동평'호수가 오늘날의 지도에도 나옵니다.인터넽에 소개하고 있는 이백의 같은시 첫행은 "봉화동사막(烽火動沙漠)"으로 나오며 후대의 역사왜곡을 위한 조작으로 보입니다. 확인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본문의 기록은 원문으로 장기근교수의 실수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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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Facebook 유튜브 강의를 논평한다.

    “환(한)단고기는 위서가 아니다 – 박석재 천문학박사 - 미국 LA 대한사랑 역사특강“을 논평한다.

    우선 용어의 정의를 살펴보자 역사학이란 “과거에 일어난 모든 사건을 기록한 학문”이며 천문학이란 “별, 행성, 혜성, 은하와 같은 천체들과 지구 대기의 바깥에서 야기된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을 뜻한다. 따라서 천문학은 역사학의 보조학문은 되지만 역사학을 대치할 수 없음을 밝힌다. 제13대 흘달단군 무진30년(BC1733) “오성(五星)이 모여들고 누런 학이 날아와 뜰의 소나무에 깃들었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었기에 천문학자들은 천문학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기록이 먼저이지 천문현상이 먼저가 아님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첫째: 박석재는 고조선[단군조선] 삼한지역을 언급하면서 한반도는 마한, 흑룡강성과 길림성 지역은 진한, 요녕성과 하북성 지역은 변한으로 잘못 비정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지 못한 비정이나 추정이나 생각은 역사적 사실이 아님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단군조선의 삼한지역은 오늘날의 산서성남부와 섬서성과 감숙성 그리고 하남성북부 일대였다. 김태영, ‘패수의 위치 연구’(제4집) 서울: 세계출판사, 2019. 김태영, ‘실학자 정약용의 역사인식 비판’(제10집), 서울: 세계출판사, 2020.

    둘째: 박석재는 태호복희가 만든 8괘에 근거하여 “대한민국의 태극기는 고종황제나 박영효가 만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고종실록’ 어디에도 고종과 박영효가 태극기를 만들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태극기를 도안한 사람은 조선과 미국 간의 조미수호통상조약(1882) 체결을 주도한 마건충(1845-1900)이 1882년 4월 11일에 도안한 것이다.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때 사용된 태극기가 발견된 바 있다. “‘청국문답’을 보면 태극기의 도안자가 마건충임을 알 수 있다”고 하여 설득력이 있다. 한홍구, ‘대한민국: 단군에서 감두한까지’ 서울: 한겨레 신문사, 2003. p.51.


    셋째: 천부경이 대단한 경전으로 한인, 한웅 시대에 만들어진 것처럼 목청을 높이고 있으나 근거가 없는 추측일 뿐이다. 천부경이 기록된 최초의 문헌은 고려말 오은(五隱)의 한 사람인 조원길(趙元吉: ?-?)의 유집에서 ‘천부경문’이 발견되어 공개되었다. 조원길은 고려 공민왕 18년인 1369년에 문과에 급제한 사람으로 ‘천부경문’의 연역은 길어야 1369년을 넘지 못한다. 한자 81글자로 이루어진 천부경은 일종의 주문이나 주술 같은 것으로 글자 뜻을 풀이하면 대단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만년 전의 한인과, 5900년 전의 한웅 시대에 만들어진 대단한 경전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으로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역사 왜곡을 조장하는 일이 된다.


    넷째: 박석재는 태호복희씨가 창시했다는 8괘가 마치 “우주론” 인양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위험한 억단이다. 역사적으로 역(易)인 주역은 점을 치는 점괘로 사용한 것이며 점이란 미래를 예측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과학이 발달했다는 20세기인 지금도 일기예보 하나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인간의 가시영역을 벗어난 단 3가지(천乾, 우레震, 바람巽)의 괘를 가지고 우주의 변화무쌍을 논할 수 있겠는가. 8괘를 중첩시켜 보았자 겨우 64괘로 인간의 길흉을 점치도록 만든 것이다. 주역인 성리학을 만든 남송의 주자는 말년에 한탁주로부터 ‘성리학은 거짓 학문’이라는 비난을 받았을 때 주자는 ‘둔(屯) 괘’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둔이란 “하고 싶지만 여력이 없다 멈춰라”는 점괘이다. 이따위 점괘가 어찌 우주론이 될 수 있는가! 자중하기 바란다. 김태영, ‘역사는 모든 학문의 뿌리다’ 서울: 세계출판사, (2021년 1월 출간예정)

    다섯째: 역사관련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하였는데 소설은 소설일뿐 역사가 아님으로 문헌사료에 논거를 제시하지 못할 허구의 소설에 동이배달한민족사를 다루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 믿는다. 재고하길 충고드린다. 이 밖에도 지적할 내용이 많으나 크게 다섯 가지로 줄인다.


    한단고기는 위서(僞書)가 아닌 정사라고 굳게 믿는다. 문제는 역사에 무지한 주해자(注解者)나 주석자(註釋者)들이 당시의 지리지명을 제멋대로 비정했다는 데 있다. 고대 지리지명들을 한반도나 요녕성, 하북성, 길림성에 있었던 것처럼 주장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이씨조선 후기의 실학자들로 한백겸, 안정복, 신경준, 이익, 한치윤, 한진서, 박지원, 정약용 등 이었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이들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지 않고 억측과 억설과 억단으로 일관하였다. 그들이 주장했던 위치들과 필자의 논문이 밝힌 지리지명들을 꼼꼼히 대조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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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훌륭한 지적이며 옳은 통찰입니다. 예를 들자면 원문에는 패수(浿水)란 지명만 나오지 그 위치는 없는데 실학자 한백겸이 "패수를 대동강"이라하였고 "패수가 압록강"이라고 한사람은 유형원, 이익, 정약용 등과 같은 실학자들 이었서요. 1차사료나 문헌자료에 근거하지않은 터무니 없는 허구이지요. 실학자들의 엉터리 주장을 일본식민학자들과 이병도가 답습했고 이병도의 제자인 이기백, 노태돈, 송호정, 김태식, 오강원 등이 재탕, 십탕, 백탕, 천탕을 해오고 있어요. 한심한 사람들입니다. 또한 철저한 문헌사료에 근거하면 모를까 그렇지않다면 역사와 종교는 분리되아야 한다고 봅니다. 논평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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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글자는 크게 뜻글과 소리글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상형문자는 뜻글자입니다. 이집트의 글자가 상형문자인데 새는 새모양으로, 해는 해모양으로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그 뜻을 상징하는 논리성이 있지요. 한자도 처음에는 원시적인 상형문자의 모습에서 오늘날의 한자 모양으로 발전되어 왔다고 추측할 수도 있겠지요.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한자가 '십간십이지'에서 발전되면서 만들어진 글자라고 믿습니다. 지나인들은 자신들이 동이족(東夷族)이라 하지않아요. 그들은 하화족(夏華族)이나 한족(漢族)이라 주장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한자는 자신들이 만든 글자가 아니고 추운지방에 살던 동이족이 만든 글자다"라고 인정합니다. 한자는 동이배달한민족의 글자예요. 한국사람들만 인정하지않는 진리말입니다. 한자를 누가 만들고 만들지 않고를 떠나 같은 글자를 함께 사용한다는 점에서 '같은 문화권'이라 볼 수 있어요. 동의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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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젊은 이들이 통일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첫째, 바른 동이배달한민족사를 배우지 못해 역사인식의 부재이며 둘째, 작금의 물질문명에 심취되어 민족이니 통일이니 이념이니 하는 대상과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찾지 못한 점이고 셋째, 아직은 철이 없는 나이이기 때문이지요.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이있어요. 이리기 죽을 때는 자신이 태어난 굴을향해 머리를 두고 죽는다는 뜻입니다. 동물에는 귀소본능이 있어요. 이 귀소본능은 철이들면 즉 나이가 들어야 알 수있는 묘한 매력입니다. 젊은 이들이 관심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참된 역사를 통해서 지혜를 가르치지 못한 대한민국의 정부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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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정치적인 논평은 싫어하지만 한마디 할까한다.
    1620년 영국의 청교도란 사람들이 헨리8세(Henry VIII)의 영국 국교인 성공회 설립과 촬스 1세(Charles I)의 탄압등에 반기를 들어 자유라는 명분으로 신대륙 미국에 이민왔던 것 처럼 박정희의 철권독재하에서 숨조차 쉴수 없었고 전두환의 승계된 독재 하에 염증을 느껴 자유라는 맑은 공기가 있던 해외로 피신한 것이지 조국 대한민국을 버린 것이 아니다. 우물안의 개구리는 밖의 넓은 세상을 모르고 민족, 조국, 애국, 자존심 등의 진가는 밖의 넓은 세상에서 볼때 더 잘 보이는 법이다. 두동강이 나있는 한반도 조국통일을 가장 갈망하는 사람들이 해외동포라는 사실을 잊지말기 바란다. 또한 머지않아 통일이 될 것이니 그 때를 대비하여 망언하지말고 자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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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이 답글은 이병환선생의 댓글에 대한 답입니다. 댓글을 달 때는 구체적으로 적어주세요. 맹인모상(盲人摸象)이란 말이 있어요. '어떤 사물의 일면만 보고서 마치 전체를 아는 듯이 떠들어대는 모습'에 비유한 말이지요. 이리석음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조조', '갈석산', '하북성', '창려', '수안' 등의 단어가 나오면 다 같은 갈석산이 아니예요. 필자가 주장하는 갈석산은 위도 35도로 나뉘는 산서성과 하남성 사이의 황하강 간운데에 위치한 갈석산을 논(論)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북성 창려'에 있다는 허구의 갈석산이 아니지요. 글을 곰꼼히 잘읽어본 후에 댓글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남북한 총인구가 약 7천7백만이고 전세계 인구는 약 77억 9천만으로 알고 있어요. 77억 9천만 중에서 동이배달한민족사에 나오는 그 유명한 '갈석산(우갈석산)'이 황하강 속에 위치한 다고 주장하면서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제시한 사람은 오직 필자뿐이랍니다. 필자외에 황하강 속에 갈석산이 있다고 주장한 사람의 논문이 있으면 곧바로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도움이 되지않은 이같은 댓글을 남기지않은게 좋아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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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이병환 선생의 댓글에 대한 답임.
    강원도 춘천에 가면 '명동'이란 곳이 있어요. 서울의 명동처럼 아주 번화하지요. 그런데 '명동성당'이 있는 명동은 서울의 명동이지 강원도 춘천의 명동이 아니예요. 이와같이 문헌사료에 기록된 갈석, 낙랑을 앵무새처럼 재잘그려보았자 그 낙랑과 갈석의 위치가 어디인지 모르는 한심한 사람들이지요. 그 서쪽 유역의 갈석산이 어디라고 하던가요? 산서성(山西省)과 하남성(河南省) 사이의 황하강에 있는 갈석이라 하던가요? 그리고 낙랑이 산서성남부와 패수가 있던 하내(河內)라고 하던가요? 유튜브에 나오는 쓰레기같은 엉터리 역사물, 이곳에 가져오지마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는 모두 삭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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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논평한다

    ‘심백강과 이병환의 주장에 대한 논평이다.’

    조선하, 조하, 난하, 갈석산, 역수 등이 오늘날의 하북성에 있었다는 심백강의 허구인 소설에 입각하여 그의 억설에 동조한 이병환의 주장은 일고(一考)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마지막 논평으로 끝을 맺고자 한다.

    예리한 통찰력(Keen Insight)이 있는 역사학자는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어 감추어진 내용들도 어렵지않게 찾아내는 것이다. 그 이유는 수많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들을 조사, 검토, 비교, 분석, 교차확인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며 이 같은 능력은 그 학자의 독서량에서 결정된다. 다시 말하면 책을 많이 읽지못한 역사학자는 통찰력이 없다.

    동아시아의 지리지명을 밝히는 1차사료는 ‘상서/우공’, ‘여씨춘추/유시람’, ‘회남자/지형훈’이며 이들이 기록하고 있는 지리지명을 논증할 때는 반드시 ‘중국역사지명대사전’,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중국고대지명대사전’과 ‘이아’, ‘통아’ 등을 근거로 고증과 실증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 여덟 가지의 문헌자료를 검토하지 않은 주장은 허구의 소설이 된다는 극명한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심백강은 이들 문헌자료를 보지 못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그는 정확한 조하, 난하, 갈석산, 역수 등의 지리지명을 분명하게 찾지도 확정짓지도 못하고 횡설수설(橫說竪說), 억측(臆測), 억설(臆說), 억단(臆斷)하는 엄청난 역사왜곡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임을 숙지하기 바란다. 명나라와 청나라를 선두로 어리석은 이씨조선 후기 실학자들과 일제식민사학자들, 이병도와 그의 제자들 그리고 지나인(支那人)들의 역사왜곡에 부화뇌동하는 격이되고 말았으니 심히 통탄할 일이다.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

    첫째: 조하(朝河)의 다른 이름은 조수(朝水)이며 “하남성 내향현 서북에서 출원하며 백하(白河)로 진입한다”하였고, “백수(白水)는 산서성 진성현 남쪽 3리에 있다”라고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제1단, 903쪽과 제3단, 245쪽이 밝히고 있어 조하(조수)가 위치해야 할 곳은 산서성 남부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산서성 남부를 낙랑이라 하였고 조선현과 패수현이 함께 위치한 곳임을 이미 밝힌바 있다. 이들 지리지명들이 위치한 곳은 산서성이지 심백강이 주장한 하북성이 아니지 않는가.

    둘째: 조선성(朝鮮城)은 “노룡에 있다”라고 ‘로사’ 권 27이 기록하고 있다. 두우의 ‘통전’ 권173에 “지금의 노룡현에는 옛 고죽성이 있고 백이숙제의 나라였다”라고 하여 수양산인 오늘날의 중조산이 있는 산서성 남부를 지칭한 말이다. 따라서 노룡은 고죽국이 있던 산서성 남서부임을 필자의 학술논문에서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으니 참고 바란다. 조선성은 심백강이 주장한 하북성과 아무 관계가 없지 않은가.

    셋째: 난하는 흑룡산 조(條)에 보면 “흑룡산: 옛 유수(濡水)이며 오늘날의 난하이다... 탄산조를 보라. ... 구양수가 이르길 난수(난하)가 탄산동북에서 나온다”고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제2단, 995쪽에 기록하고 있으며 “유수라는 하천을 난하라고도 하고 역수(易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제3단, 475쪽에 명시되어 있다. 유수이자 난하이며 역수라고도 불리던 이 하천은 산서성 남부에 있는 오늘날의 속수(涑水)를 뜻한다. 심백강이 주장한 하북성과 아무 관계가 없다.

    넷째: 갈석산은 우갈석산(右碣石山)과 좌갈석산(左碣石山) 두 개의 갈석산이 있었다. 우갈석은 경도 35도로 나뉘는 산서성과 하남성 사이의 황하강 물속에 위치하고 좌갈석은 고구려의 도읍지들이 있었던 산서성 북부 요수(遼水)이자 압록수(鴨綠水)가 발원한 오늘날의 관잠산의 일부임을 필자의 학술논문에서 명백하게 밝힌바 있음으로 참고하기 바란다. 심백강이 주장한 갈석산(우인지 좌인지도 언급하지 못함)이 하북성 창려에 있다는 왜곡된 곳과 아무 연관이 없다.

    동이배달한민족 역사에 관심을 가진 이병환선생께는 고마운 일이나 쓰레기 같은 허구의 주장으로 일관된 심백강의 주장에 근거하여 필자를 더이상 괴롭히지말기 바란다. “누가 그러더라”라고 하지 말고 직접 조사하고 공부하고 연구한 후에 논하도록 충고드린다. 필자의 주장을 반박할 결정적인 논문을 제시하도록 거듭 바랄 뿐이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웹싸이트 www.coreanhistory.com 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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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재미있는 질문을 하셨군요. 우선 필자는 이세상의 모든 종교 교리의 경(經)과 책들을 섭렵하여 읽고 각자의 교리를 터득하였으며 '종교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구속하는 것'으로 결론짓고 속된말로 이미 졸업을 하여 어떤 종교나 종파에도 관여하지않습니다. 폴(Paul)은 나의 미국이름입니다. 유학시절 학부를 다닐때 아들같은 학생들과 교수들이 나의 한국 이름을 발음하지 못해 그들과 의사소통을 원할하게 하기위해 내 자신이 직접 지은 이름이지요. 동이배달한민족사와 기독교와 관련이 있느냐고 물의셨는데 '역사는 모든 학문의 뿌리'입니다. 종교를 알려면 반드시 역사를 알아야합니다. '책은 지식의 보고이고 지식에서 얻은 역사는 지혜의 관문이다' 필자가 만든 말입니다. 역사를 알면 지혜가 열립니다. 시원한 대답이 되었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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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잘못하면 정치적인 논평이 될것 같은데 질문에는 대답을 드리는 것이 도리일 것 같네요. 자주란 "남의 간섭이나 보호를 받지않고 독립적으로 행함"을 뜻하지요. 한자가 대한민국의 글자이고 한국은 한자의 원형을 사용하지만 중공은 간자체라하여 지금 그들이 사용하는 간자체는 더이상 한자가 아니예요. 그러니 한자만 보더라도 중공과의 관계에서 보면 한국은 자주적이네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자주적이기 위해서는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이 있어야 합니다. 전쟁이 나면 국군을 통솔할 수 있는 대통령의 고유한 권한 말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이 없어요. 그러니 자주적이지 못하고 따라서 주권국(主權國: Sovereignty)이 아닙니다. 박지원이 생존했을 때의 이조선 역시 자주적이지 못한 사대의 시대였어요.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역사는 냉정한 학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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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그렇습니다. 동이배달한민족의 선조들이 만든 대한민국의 뜻글자이지요. 지나의 석학이라는 임어당 선생이나 필장복 같은 학자들이 한자는 "동이족의 글자"라고 하는데 어찌된 엉문인지 대한민국의 대다수의 사람들만 인정하지 않아요.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입니까. 한자교육을 누가 없앴고 누구때문에 없앴는지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연이 상당히 재미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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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교육이 잘못되어서 그렇지요. 대한민국의 학자라는 사람들은 공부를 안해요. 책을 읽지도 않고 자신의 전공분야도 제대로 연구도 못합니다. 왜인지 아세요? 한자를 읽을 실력도 한자를 해석할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모르니 한자가 우리의 글자가 아니라고 변명하는 것이지요. 학문을 하여 학자가 되려면 최소한 2개국 언어를 능숙하게 해야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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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수양산은 고유한 산으로 하나의 산이고 한 곳에만 위치한 산입니다. 마치 백두산이 하나인 것처럼 말입니다. 수양산을 서산(西山), 수산(首山), 뇌수산(雷首山), 역산(歷山), 포산(蒲山) 등 6가지로 불렀어요. 필자의 논문 ‘고죽국의 위치 연구’ (제3집) 제8쪽, 각주22.를 참고하세요. 지도상의 거리는 무시하세요. 당시의 지도는 오늘날 처럼 과학적으로 그린 것이 아닙니다. 산서성에 가서 현지답사하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에 있을까합니다. 산서성은 동이배달한민족의 중원입니다.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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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논평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픈 것이 있어요. 바이러스와 관련된 여러가지 떠도는 기사들은 보았는데 문제가 많아요. 짬뽕음식처럼 옳고 그릇 정보가 함께 뒤죽박죽 섞여있어요. 지혜롭게 잘 이해하지않으면 많은 혼란이 옵니다.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바이러스의 심각성을 믿지않은 사람들은 직접 바이러스에 걸려보면 가장 확실한 증명을 할 것으로 생각되네요. "백문이 불여 일견"이라 하니 직접 바이러스에 걸려 보면 거짖인지 진실인지 심각성을 체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벡신접종은 절대 피해야합니다. 이번 바이러스를 실험실에서 만들어 엄청난 인간을 죽이면서 공포로 몰아넣은 제1의 이유가 바로 '마이크로츂(microchip)을 넣어 인간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려는, 완전한 노예로 만들려는 벡신 접종에 있어요' 깨어야 합니다. 강제접종을 저지해야합니다.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지요. '일루머나리들이 접종받은 벡신은 일반 대중의 벡신과 완전히 다릅니다. 그들은 전시효과를 노리는 것이예요.' 그리고 만병의 원인은 바이러민-D의 결핍에 있습니다. 햇볕 많이 쪼이는 것이 최선이지요. 제약회사에서 팔고있는 정제된 모든 바이러민은 '독약'입니다. 약간은 소변으로 배출되지만 많은 양이 체내에 축적되어 오히려 암같은 질병을 야기시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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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멋있는 지적 감사합니다. 공자는 현실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예요. 자리하나 얻으려고 14년 동안 전국을 헤메고 다녔어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유교는 정치에 목멘 사람들입니다. 이씨조선은 유교의 나라지요. 리학=유학=주자학=성리학은 모두 같은 것으로 머리좋은 사람이면 40분이면 충분히 알수있는 이론을 400년동안 서로 옳다고 하면서 당파싸움을 했어요. 정치라는 못된 것 때문이지요. 그래서 공자를 사마천 보다 아마 더 기억할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공자는 곡필의 대가 입니다. 정치적 이념이 개입되면 그 역사는 왜곡된 역사이거든요. 필자는 사마천이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공자는 동이족의 나라인 은나라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고 주(周)나라를 섬긴 사람이예요. 의리없는 그런 사람말입니다. 필자는 미국에서 40년이 넘게 살면서 햄버거와 코욱(Coke)을 엄청 먹고 마셨으며 언어로도 미국인과 어떤 대화에도 막히지 않은데 미국사람이 안되요. 뿌리를 부정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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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알고보면 양명학이나 실학도 별거아니예요. 리(理)이든 기(氣)이든 '지아학(知我學) 자신을 아는 학'이 제일인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가 한말 기억하시지요. "너 자신을 알라" 멋있는 말입니다. 그의 말한마디에 심오한 학문이 들어있어요. "지아학"은 지금 필자가 만든 말이니 오해없기 바랍니다. 논평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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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주원장은 홍건적의 두목으로 1359년 12월에 산서성 고구려의 평양성이던 고려의 서경(西京)을 함락한다. 산서성 남서부에 지금도 영락궁이란 지명이 뚜렷하게 보이는데 필자는 이 영락궁이 고구려 제19대 광개토호태열제의 황궁이라고 믿고있다. 주원장은 도적의 괴수로 고려의 전신인 고구려를 멸한 것 같은 심리적인 성취감을 갖었음에 틀림없어, 영락이란 광개토 호태열지의 연호를 도적질하고, 고려를 무너뜨린 이성계의 약점을 잡아 대륙의 고려 영토를 해마다 말 수천필씩을 바치라는 명목으로 모두 빼앗았으며 그 댓가로 이씨조선의 왕조 설립을 인정해 준 것으로 보인다. 에 의하면, 이씨조선이 명나라에 바친 말이 무려 33,000필이다. 이 부끄러운 일은 세종때까지 지속되었다. 이 많은 말을 어떻게 몰고가서 명나라에 갈 수 있었으며 한반도(?) 고려의 어느 곳에서 말이 33,000마리나 산출될 수 있었겠는가를 깊이 생각해보면 참담했던 동이배달한민족 역사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려의 서경은 산서성 평양이었고 초기 고려의 개경(開京)은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에 있는 복양(濮陽)이었다. 단군조선의 변한이 망하면서 산서성 남부의 땅이 북연(北燕)이 되었다. 900년간 대륙을 지배한 고구려에 열등감을 가진 주원장은 고구려의 황도인 평양성(개경)을 함락시키고, 북연의 땅을 빼앗았으며 광개토 호태열제의 황궁인 영락궁을 차지하는 행운을 얻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조리있게 생각하면 명나라가 우리의 역사를 왜곡한 이유에 대한 해답을 논리적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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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우선 홍건적의 역사적 배경을 알 필요가 있다. 비밀 종교집단인 명교(明敎)란 성교를 통한 종교로서 라마교, 밀교, 밀종, 마니교, 백련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던 명나라 시기 불교의 한 파였다. 교주는 한산동으로 1351년 황하강의 범람으로 개수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봉기하자 이틈을 이용하여 이민족인 원(몽고)나라를 타도하겠다는 명분 아래 한산동은 자신이 송나라 휘종의 8세 손자라고 칭하면서 반란을 일으킨다. 이마에 붉음 수건을 두루고 안휘성 일대에서 농민봉기를 시작으로 촉발되었다. 홍건적의 대장을 자처한 곽자흥의 반군에 들어간 주원장(주중팔)은 당시 25세의 나이로 곽자흥의 양녀 (훗날의 마황후)와 혼인하여 곽자흥의 사위가 되며 곽자흥이 1355년에 죽자 주원장이 홍건적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안휘성은 하남성과 서쪽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는 성(省)으로 황하만 건너면 산서성 고려의 개경인 평양성를 침탈할 수 있고, 당시 홍건적이 배를 타고 한반도의 화순이나 나주까지 갔다는 문헌사료는 찾아볼 수 없음으로 안휘성 북부에서 한반도 화순, 나주까지는 도보로 가야하는데(일부는 말을 탔지만) 최단단거리를 얻기위해 해변쪽을 따라 한반도 전라도 화순이나 나주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4,600리가 넘는 거리인데 이런 허구를 믿으라고 한다면 어불성설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성적인 판단과 논리적인 사고로는 믿을 수 없는 하나의 통속 위인 소설이다. 이성계는 멀쩡한 고려를 못난 정중부의 꾀임에 빠져 반란을 일으킨 사람이다. 개국 시조를 영웅화하는 것은 동서양 역사서술의 잘못된 하나의 옛 관행이다. 이성계를 영웅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왜곡된 기록이라고 단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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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우선 홍건적의 역사적 배경을 알 필요가 있다. 비밀 종교집단인 명교(明敎)란 성교를 통한 종교로서 라마교, 밀교, 밀종, 마니교, 백련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던 명나라 시기 불교의 한 파였다. 교주는 한산동으로 1351년 황하강의 범람으로 개수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봉기하자 이틈을 이용하여 이민족인 원(몽고)나라를 타도하겠다는 명분 아래 한산동은 자신이 송나라 휘종의 8세 손자라고 칭하면서 반란을 일으킨다. 이마에 붉음 수건을 두루고 안휘성 일대에서 농민봉기를 시작으로 촉발되었다. 홍건적의 대장을 자처한 곽자흥의 반군에 들어간 주원장(주중팔)은 당시 25세의 나이로 곽자흥의 양녀 (훗날의 마황후)와 혼인하여 곽자흥의 사위가 되며 곽자흥이 1355년에 죽자 주원장이 홍건적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안휘성은 하남성과 서쪽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는 성(省)으로 황하만 건너면 산서성 고려의 개경인 평양성를 침탈할 수 있고, 당시 홍건적이 배를 타고 한반도의 화순이나 나주까지 갔다는 문헌사료는 찾아볼 수 없음으로 안휘성 북부에서 한반도 화순, 나주까지는 도보로 가야하는데(일부는 말을 탔지만) 최단 거리를 얻기위해 해변쪽을 따라 한반도 전라도 화순이나 나주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4,600리가 넘는 거리인데 이런 허구를 믿으라고 한다면 어불성설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성적인 판단과 논리적인 사고로는 믿을 수 없는 하나의 통속 위인 소설이다. 홍건적의 주장대로 이민족 원나라를 없애면 되지 일부러 한반도에까지 왕림할 필요성이 없다. 필자는 고려의 마지막 도성이 요녕성 심양(옛 요양)이라고 알고 있다. 이성계는 멀쩡한 고려를 못난 정중부의 꾀임에 빠져 반란을 일으킨 중부보다 더 못난 사람이다. 개국 시조를 영웅화하는 것은 동서양 역사 서술의 잘못된 하나의 옛 관행이다. 이성계를 영웅화 하기 위해 만들어진 왜곡된 기록이라고 단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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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앞의 두 논평 중에서 '정도전'을 '정중부'로 실수 하였음을 공지하며 정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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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 질문: 아...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는지....어떤 책부터 보아야할까요? 선생님의 10편의 논문과 배달민족사 말고요...

    답: 우선 ‘동이배달한민족사’와 논문 10집을 완전히 이해하세요. 처음부터 욕심 부리지 마세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하세요. 자화자찬 같지만 필자는 평생을 공부만 한 사람이며 수만권의 책을 읽은 사람입니다. 수많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모두 읽었지요.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말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단군조선으로 부터 4,353년 고구려의 패망부터 1,352년 동안 왜곡, 날조, 조작 되어온... 솔직히 말하자면 왜곡, 날조, 조작 보다는 선배 학자라는 사람들이 우리 역사에 대해서 공부와 연구를 하지않았다는 말입니다. 아직까지 아무도 연구하지 못한 그리고 관심조차없는 민족의 참 역사를 밝히는 작업 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그만큼 어려운 과업입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꾸준히 공부하다 보면 이해가 빨리 오게되고 지해가 열립니다. 지금 훌륭히 잘 하고 계시니 불안해 하지 마세요. 이선생의 지금 역사실력이면 한국의 대학 교수들 보다 한수 위라고 봅니다. 우선 이렇게 해보세요. 첫째,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먼저 읽으세요. 그러나 지리지명은 100% 무시하세요. 완전히 틀린 소리입니다. 둘째, 중 일련 승의 ‘삼국유사’를 읽으세요. 역시 지리지명은 완전히 무시하세요. 틀립니다. 셋째, 신채호의 ‘조선 상고사’를 읽어 보세요. 역시 지리지명은 100% 무시하세요. 넷째, ‘한단고기’를 일어보시는데 반드시 임승국이 주해하고 해석한 책을 읽으세요. 임승국의 책이 아니면 오히려 읽지 않은게 더 나아요. 역시 지리지명은 100% 무시 하세요. 이들 4권의 책을 읽으면서 지리지명의 확인은 필자의 저서나 논문을 보세요. 그리고 구하실수 있으면 ‘중국역사지명대사전’, ‘중국고금지명대사전’를 구입하시고 ‘중국고대지명대사전’은 인터넽으로 일정한 회비를 내면 볼수 있어요. 중공에 아는 분이 있으면 그 사람을 통해서 돈을 매년(?) 지불하면 볼 수 있어요. 그렇게 하시다가 때가되면 한국 역사의 권위자가 될 것으로 암니다. 행운을 빌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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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 훌륭한 지적입니다. 필자는 신라의 김씨이지만 나의 선조들이 잘못했음을 인정합니다. 신라는 당과 연합하여 635년에 백제를 멸망시켰고, 또다시 당나라와 동맹하여 668년에 는고구려를 패망시킨 신라입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합니다. 외세를 끌여들여 동족의 가슴에 총칼을 겨누는 것은 민족의 수치이자 민족자멸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요. 동족인 백제와 고구려를 이민족인 당과 결탁하여 멸망시켰으니 어찌 떳떳한 일이 되겠는지요? 그런 저런 이유로 고구려의 역사를 멀리합니다. 게다가 북한이 고구려의 정통성을 이어간 것 같은 이유도 한몫을 차지하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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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 훌륭한 지적입니다. 고구려의 영토뿐만 아니라 신라 백제의 영토도 가르키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하지요. 삼국의 영토가 어디였는지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사학자가 하나도 없어요.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라는 친구들 삼국의 영토가 어디인지 전혀 몰라요. 오직 한반도에 단군조선, 위민조선, 진한, 마한, 변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었던 것으로 잘못 알고 있어요. 고구려, 백제, 신라는 모두 대륙에서 망했어요. 신라는 강소성에서 망했고, 백제는 호북성에서 망했어요. 수많은 문헌사료들을 자세히 조사, 검토, 비교, 분석, 교차확인하면 다 알수 있지요. 그런데 이들 강단 사학자란 친구들은 공부도 연구도 안할뿐더러 한자로 쓰여진 25사를 읽을 능력이 안되지요. 그런 이유 입니다. 논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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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저는 우리의 교육이 왜 우리선조가 도전했던 대륙으로의 꿈을 잊게하는지 모르겠어요. 자꾸 아래의 일본만 보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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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이유는 아주 간단해요. 첫째는 이조500년이고, 두번째는 2차대전이 끝나면서 우리 스스로가 독립을 하지못하고 외세에 의한 독립으로 식민사대가 곧바로 일본에서 미국이르 이어졌고 셋째는 이승만이 남한에 정부를 먼저세웠고 넷째는 남한과 사상이념이 다른 북한이 북쪽에 버티고 있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동족을 주적으로 간주한 이유이지요. 역사적인 관점에서 넓게 높게 살펴보면 알 수 있어요. 남북통일이 되고 조상들의 옛 고토를 찾을 날이 왔으면 바랍니다. 그런 준비를 위해서 먼저 우리의 민족역사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논평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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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 2021년 1월 7일자 논평 중 한곳을 정정합니다.

    "백제는 호북성에서 망했어요"를 "백제는 안휘성에서 망했어요"로 정정 합니다. 필자의 저서 (2013) 417쪽과 (개정증보판)(2019) 499쪽을 참고하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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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지혜란 하루 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라 피나는 노력후에, 즉 수만권의 책을 읽고난 후에 얻어지는 것입니다. 정보라고 해서 다 정보가 아니지요.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도 있고 역정보(disinformation)도 있지요. 음모를 꾀하는 자들은 가끔 역정보를 흘립니다. 그때 지혜로서 판단하는 것이지요. 인구감소는 사실이며 백신주사에 나도기술(nano-technology)로 만들어낸 츂을 넣어 인간을 선별하여 통제할 수 있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이들은 "빛을 가지고 있는자(Illuminati)들 이지요. 즉 깨달은 자란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도 일루머나리 이지요. 일루머나리들은 이마에 뿔을 가진악마로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지구상에서 최고의 엘리트(Elite)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인구감소 계획은 외계인들의 제안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어요. 우주의 수많은 행성에 우주인(외계인)들이 꽉차있음을 아직도 모르시나요.? 지금 지구가 전 보다 더 빨리 돌고 있어 시간이 빨리 간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달이 지구로부터 1년에 3.82cm씩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우주의 질서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어요.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보수라는 것 빛과같은 속도로 변화하는 20세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않아요. 부질없는 곳에 편갈라 편싸움 하면서 시간낭비 하지 마시고 공부도하고 연구도 하시길 충언드립니다. 그리고 지혜있는 사람의 말에 귀를 귀우리는 것도 지혜입니다. 음오론에 반박하는 자들이 바로 역정보를 흘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시고 지혜롭게 대처하세요. 자신의 운명은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지요. 소크라테스처럼 댓가를 받지않고 가르치는 것이 참된 가르침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허위정보를 유튜브에 유포하여 돈을 벌고있는 자들은 참된 지식을 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위한 수단으로 하는 짓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http://xn--www-ow4n65wevaz52d.coreanhistory.com/ 에 게제한 빌게이츠에 관한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홍보의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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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Hwakins의 저서가 9가지나 되는데 다 사볼 수는 없고 케빈쌤께서 직접 읽은 책 제목을 주면 구매하지요. 모두 구매하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듭니다. 정신과학자네요. 이책을 읽지않은 이유를 이제 알것같네요. 정신이 정상적인 사람은 이런 책을 보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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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산서성 남부 천연소금이 나오는 운성염지가 그 유명한 판천이라는 탁록이지요. 황제헌원과 치우천자가 10년간 73회 싸워 치우가 개척한 땅에 단군조선이 그 땅을 지켰는데 지나의 왕조들이 감히 넘볼 수 없었어요. BC771년까지 말입니다. 한반도에까지 지네들의 장성을 그려놓고 진시황의 만리장성이라고 헛소리하는 것과 똑 같은 맥락입니다. 지나의 25사나 문헌자료를 읽을 때는 항시 색안경을 끼고 조심해서 읽어야 진실이 보여요. 그리고 소부 허유이야기는 허구의 소설입니다. 다음 기회에 알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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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이 논평은 김원호 교수의 논평에 대한 답입니다.역사학자의 기본은 책을 읽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것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문헌사료들을 조사, 검토, 비교,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연구를 시작하는데, 하늘인 스카이(SKY) 대학들을 비롯하여 모든 대학의 역사학자란 친구들은 책을 읽지도 않고 1차사료나 문헌자료를 읽지 않아요. 실증주의사학(實證主義史學)이란 문헌 고증을 통하여 사실을 밝혀야하는데 한국 사학자들은 모두 '재탕주의사학'이라는 이 세상에 없는 희대의 역사학을 합니다. 말하자면 문헌사료들을 보지않고 선행연구자들의 엉터리 논문에 근거하여 재탕만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학위논문이나 학술논문이 엉터리일 수밖에 없어요. 필자가 존경하는 북송시기 를 지은 구양수는 "사(史)란 국가의 법전으로 후세에 경계함을 보이는 것"이라 했어요. 작금의 대한민국의 법(法)이 XX 오분전인 것은 바로 역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은 실사구시 무징불신(實事求是無徵不信)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를 탐구하며 증거가 없는 것은 믿지않는다.'는 윈칙에 의해 하는 학문입니다. 시원한 대답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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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북송시기 '신당서'를 지은 구양수
    앞의 논평에서 빠진 부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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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 이논평은 이병환 선생의 댓글에 대한 답입니다.

    우선 훌륭한 논평에 감사드린다.
    학자란 학문에 전념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고 학문(學文)이란 지식을 배우고 익히며 체계화하는 과정으로 진리(眞理)를 탐구하는 것이다.

    진리란 ‘변호하고 우겨서’ 되는 것이 아니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고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것이 진리인 것처럼, 진리는 우겨서 변명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견해는 기원전 340년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시작되어 AD150년 그리이스의 천문학자 탈러미를 거쳐 AD1543년 코우퍼니커스 그리고 AD1633년 갈릴레이 때까지 기독교를 중심으로 줄기차게 변호하고 우겨왔지만

    결국 1992년 10월 31일 로마카톨릭의 교황 바오로 2세가 ‘천동설’이 잘못되었고 지구가 태양을 공전한다는 ‘지동설’의 진리(眞理)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2,345년이란 긴 세월이 흐른 후이다. 2,345년 전에도 지구는 태양을 공전하였는데도 말이다. 20세기인 지금도 유대인의 역사라하는 구약성서에, 지구는 정지되어 있고 태양이 움직이는 것으로 기록된 곳이 무려 세 곳으로 역대기 상, 시편, 그리고 전도서이다.

    “時有顯晦, 理無終泌(시유현회, 이무종비) 사물의 이치가 드러나고 감추어지는 데는 때가 있으나 끝까지 숨겨지는 것은 없다.” ‘누가복음’ 제8장 제17절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다.

    아무리 우기고 변호해도 허구는 허구로 영원할 수 없다. 진리가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로 그동안 왜곡, 날조, 조작되어 온 동이배달한민족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때가 이미 도래하였으니 엉터리 학자들은 더 이상 변론하고 우겨도 소용없다. 참다운 학자는 자신의 연구를 변호하지않고 변호할 필요가 없는 진리만을 찾는 연구를 할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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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 Paul Kim to 김원호
    1/29/2021
    책을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는 저자들의 역사 논문들이나 저서들의 말미에 나오는 참고문헌(Bibliography)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참고문헌은 반드시 논문이나 저서의 주제나 저자의 주장과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문헌자료를 많이 굴비 엮듯 열거해도 주장이나 주제와 연관성이 없는 내용의 인용은 가치가 없지요. 마치 정약용이나 중공의 김육불같은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책을 읽지 않고 엉터리 허구의 소설을 쓰면서 역사라고 논하는 한국역사학계이기 때문에 문제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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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이 논평은 이기홍 선생의 댓글에 대한 답입니다. 대한민국의 역사학계가 모두 썩어서 그래요. 한마디로 역사를 전공했다는 교수니 박사니 하는 친구들이 무식해서 그렇습니다. 그들의 무식함은 하늘을 찌르지요. 진리, 정의, 도덕, 윤리, 역사의식, 민족의식, 불법, 일반상식도 없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바로 엉터리 역사 때문입니다. 아무리 개혁을 외처도 개혁은 되지않아요. "역사가 국가의 법전"이기 때문이지요. 역사를 바로잡으면 개혁은 스스로 됩니다. 사학자들과 싸워야지요.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증거로 제시하면서 싸워야 합니다. 무식하게 나오면 무식하게 대처하고 유식하게 주장하면 유식하게 대꾸하면 됩니다. 똑같은 방법으로 말입니다. '역사정립 범개혁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주저하지말고 대담하게 투쟁해야 합니다. 논평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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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 이병환 지당한 말씀입니다. 박사(博士)가 아니고 전사(專士)입니다. 오로지 전(專)의 전사말입니다. 오직 자기의 분야밖에는 모릅니다. 박(博)은 넓을 박으로 두루 책을 섭렵한 그런 사람에 대한 호칭입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대학의 전사들은 자신의 전문분야의 책도 다 못읽지요. 실력도 없을뿐더러 게을러서 책읽는 것을 싫어합니다. 주위의 알고계신 학자들에게 평생 어떤책을 몇권이나 읽었는지 물어보세요. 답은 아주 쉽게 얻어집니다. 논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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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식민지를 꼭 개척했다기 보다 지구에 이민을 온 것이지요. 우주인(외계인)들이 지구에 금(金)을 캐기위해서 약 십만년 전부터 왔어요. 21세기인 지금도 인간과 동물을 조합하여 클로운으로 인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면 사람들이 믿겠나요. 이곳 미국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인 걸요. 우리 조상은 다른 행성에서 지구에 와 지구의 여자들과 결환하여 자손을 번성했다고 봅니다. 다른 행성에서 올때는 남자만 왔어요. 인류의 역사 가운데 최초로 역사를 기록한 민족이 쑤메르인데 그 당시 지구랕이라는 건물이 있었어요. 이 지구랕이 사원이나 교회의 전신입니다. 지구랕이 바로 외계인들이 집이였고 그 훨씬 이전부터 지구에는 외계인들의 방법으로 만들어낸 지구 인간이 있었지요. 필자는 아프리카인들은 외계인들이 노동을 위해 만들어낸 인간이라고 믿습니다. 한 외계인이 수많은 여자를 거느리게 되면 자연 모계사회는 나타나지요. 옛날에는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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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잘 아시겠지만 UFO란 '미확인 비행물체'를 뜻합니다. 우주의 곳곳에 수많은 우주인(외계인)들이 살고 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이를 믿지않은 사람들은 극 소수의 종교인들입니다. 필자는 UFO를 '우주선'이라고 부릅니다. 확인된 물체이기 때문이지요. 조상들이 우주선을 타고 왔어요. 신화라고 믿고있는 짐승 얼굴에 사람몸같은 이야기 사실입니다. 우주인들이 동물과 인간을 클로운이란 방법으로 생산했고 다른 행성에서 지구에 이민온 선조들은 여자가 아닌 남자로 내려왔어요. 그래서 지구의 여자들과 혼인하여 자손을 번성합니다. 그 같은 이야기는 구약성서 창세기에도 잘 나옵니다. 21세기인 지금도 짐승의 머리에 인간의 육체를 확인할 수 있지요. 대한민국에 유명한 최두호라는 킥박서(Kick boxer)가 있지요. Youtube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두호가 싸운 아프리카 선수들 중에 말, 소, 원숭이 처럼 (90%?) 생긴 사람들이 있어요. 한가지 더 알려드리자면 지금 지구에 알려진 우주인은 약 70종입니다. 아인스타인의 상대성원리와 뉴튼의 만유인력은 이미 지나간 과학입니다. 과장하면, 세상은 지금 초속 186,000 마일의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논평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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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34. 公(공):
    = 八(팔: 8, 다수, 많음) + 厶(모: 아무개, 불특정 인) = 公 (비록 보잘것없는 아무개라 할지라도 숫자가 많으면 대중이 되어 드러나니 드러낼공, 공공)
    : ‘八팔’은 통로(通路)의 상형.‘口구’는 어떤 특정한 장소를 나타냄. 제사를 지내는 광장의 뜻에서, 공공(公共)의 뜻을 나타냄.
    *해설:
    공(公)은 팔(八)과 아무개모(厶)의 합성어다. 팔(八)은 여덟이라는 수(數)이지만 방향을 나타내며, 많다는 뜻이 있는 글자다. 아무개 모(厶)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수가 많아지면 다수가 되므로 공공연하게 노출이 된다는 뜻을 가진 글자다.
    아무개 한 사람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여러 명의 아무개가 모이면 노도와 같은 힘을 갖는다. 혼자일 때는 소심하지만 대중이 될 때는 군중심리가 일어나 두려움이 사라지고 용기가 솟아오르며 성격이 과격해진다.
    다른 사람들의 언어와 행동에 따라 이성을 잃게 되고 감정이 우선한다. 건설보다는 파괴의 성향이 생기고 방해물에 부딪히면 잔인성이 일어나 그 방해물을 돌파하려고 한다. 흥분을 억제하지 못하면 기꺼이 자살까지도 한다.
    아무개 한사람이 여러 명 모여 대중이 되면 이와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래서 공(公)은 대중이라는 뜻을 갖는 글자이다. 대중과 관계되는 글자이므로 대중인 백성을 통치하는 임금이나 제후란 역의(逆意)의 뜻을 갖는다.
    사유재산를 인정하는 자본주의가 통제없이 지속되면 될수록 많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불평등의 격차는 심화되는 것이다. 하물며 대한민국처럼 법이 없고 윤리와 도덕과 정의와 사회 양심이 사라진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금력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행패는 날이 갈수록 점입가경이 된다.
    노자의 명언을 소개하면, “熟多得與亡 知足不辱 知止不殆(숙다득여망 지족불욕 지지불태)” 많이 얻어 풍족해지면 반드시 망할 일이 따라온다. 족한 줄 알면 욕을 먹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촛불이 몽둥이로 바뀌기 전에 많은 권력을 가진 자들은 못된 관행을 스스로 멈춰야 할 것이다. 위태롭지 않게 하기위해서 말이다. 프랑스 혁명이 그랬고 러시아 혁명이 그랬다. 공(公)이란 글자가 가르쳐 주는 준엄한 교훈을 잊지 말기 바란다.
    *글자뜻:
    (1) 드러낼공(숨기지않고 발표함) (2) 공공(여러사람에게 관계되는 일) (3) 마을공(조정, 관청) (4) 임금공 (5) 제후공 (6) 어른공 (7) 주인공 (8) 아버님공 (9) 시아버님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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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청화수 강사에게 알려드립니다. 귀하가 강의하고 있는 내용은 오늘날의 요녕성 요하(遼河) 서쪽을 요서라고 비정, 추정, 추측,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귀하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허구의 소설입니다. 요동과 요서를 먼저 알고난 후에 이야기 하기 바랍니다. 요동(遼東)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백제의 요서(遼西)를 아는 것처럼 역사를 논한단 말입니까? 요동은 지금의 산서성을 뜻하고 요서는 섬서성 동북부, 하남성 서북부, 그리고 산서성 남서부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황하(黃河)를 사이에 둔 지역을 말합니다.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지리지명에 대한 동양 최초의 1차사료는 , , 그리고 입니다. 먼저 이 세 종류의 1차사료를 공부한 후에 기주(冀州), 유주(幽州), 요서(遼西), 영주(營州)가 어디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한 후에 요서를 이야기 하세요. 역사학자 김태영의 논문을 먼저 읽고 공부한 후에 역사를 논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웹싸이트를 소개해 드립니다. 언제든지 방문하여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역사적 사실을 주장을 할 때는 반드시 논거를 제시해야합니다. 실사구시 무징불신(實事求是 無徵不信)을 아시는지요? www.coreanhistory.com 을 방문하여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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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 윗글 위에서 7째줄 중간에 빠진 내용입니다.
    1차사료는 '상서/우공', '여씨춘추/유시람' 그리고 '회남자/지형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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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 이 글은 류성수 선생의 댓글에 대한 논평이다.
    기회가 되면 그렇게 하시지요. 그동안 천부경에 관해 수많은 해석이 난무하고 있으나 한자는 뜻글자로 천부경 81자를 한자의 뜻으로 해석하면 별 의미가 없지요. 필자는 시중에 나와 있는 천부경 해석을 모두 무시합니다. 근거가 없는 해설들이기 때문이지요. 천부경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고려말 농은(農隱) 조원길(趙元吉: 출생 사망년대 미상)의 유집에서 천부경문(天符經文)이 발견되면서 입니다. 조원길은 고려 공민왕 18년인 1369년에 문과에 급제한 고려 오은(五隱)의 한 사람이지요. 이런 천부경을 배달국(BC3898) 환웅, 단군조선(BC2333) 왕검에서 어쩌고저쩌고 등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없는 부질없는 짓이지요. 다시 말씀드리자면 한자는 뜻글자입니다. 따라서 한자로 적혀있는 글은, 글자 그대로 한자의 뜻을 풀면 해석은 간단하지요. 만약 천부경이 그들이 주장한 것처럼 대단한 것이라면 한자가 아닌 다른 글자로 기록되어 있어야 합니다. 천부경은 별것 아닙니다. 필자에게 천부경 설명을 부탁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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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 기회가 되면 그렇게 하시지요. 그동안 천부경에 관해 수많은 해석이 난무하고 있으나 한자는 뜻글자로 천부경 81자를 한자의 뜻으로 해석하면 별 의미가 없지요. 필자는 시중에 나와있는 천부경 해석을 모두 무시합니다. 근거가 없는 해설들이기 때문이지요. 천부경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고려말 농은(農隱) 조원길(趙元吉: 출생 사망년대 미상)의 유집에서 천부경문(天符經文)이 발견되면서 입니다. 조원길은 고려 공민왕 18년인 1369년에 문과에 급제한 고려 오은(五隱)의 한 사람이지요. 이런 천부경을 배달국(BC3898) 환웅, 단군조선(BC2333) 왕검에서 어쩌고 저쩌고 하물며 천문학을 연구했다는 사람들이 최고의 경전이니 양자이론이니 하는 헛소리 등은 부질없는 짓이지요. 다시 말씀드리자면 한자는 뜻글자입니다. 따라서 한자로 적혀있는 글은, 글자 그대로 한자의 뜻을 풀면 해석은 간단하지요. 만약 천부경이 그들이 주장한 것처럼 대단한 것이라면 한자가 아닌 다른 글자로 기록되어 있어야 합니다. 천부경은 별것아닙니다. 주술이나 주문같은 것으로 최고로 평가해보았자 물질의 생성과 소멸의 순환을 표현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필자에게 천부경 설명을 부탁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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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한 것으로 기록에 의한 학문이지요. 감정이나 희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장을 할 때는 문헌사료의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학문입니다. 오대양 육대주가 우리 것이라한 것은 개인의 견해이자 바램의 충동입니다. 오대양 육대주가 우리의 것이라는 기록은 없어요. 지나인들이 동양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의 역사를 몹시 왜곡, 날조, 조작, 그리고 축소했어요. 중공인들은 1860년 이전까지도 미국을 미이(味夷), 영국을 영이(英夷) 프랑스를 법이(法夷)라 기술하여 미개인 취급을 했고 조공을 받았다고 허위 기록을 했어요. 그래서 역사를 바로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25사에 기록된 동이배달한민족의 조공 기록은 모두 거짓입니다. 그리고 한반도에는 단군조선도, 진한, 마한, 변한의 삼한도, 부여도, 위만조선도. 낙랑, 진번, 임둔, 현도란 한사군도, 신라, 백제도 없었지요. 이토록 왜곡된 엉터리 역사를 밝히고 정립하는 것이, 오대양 육대주가 우리것이라는 비논리적이고 설득력 없는 주장보다 중요합니다. 류선생의 웅대한 기계는 높이 평가해 드리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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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 1) 6차 대멸종의 위기가 닥쳐오는 것은 맞습니다. 지구가 더워지는 것 즉 온난화는 우주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지구에 인간이 너무 많고 인간의 끝없는 욕심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 시키는 것입니다. 대멸종으로부터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두가지 있는데 그하나는 지금부터 땅속 깊은 곳에서 인간이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하고 두번째는 외계인들처럼 우주선을 만들어 대재난이 일어나기 전에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야합니다. 첫번째 방법으로 미국은 벌써 시작하여 미국 남서부는 지하 땅굴로 전지역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약 200개의 지하 주거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많은 인구가 모두 땅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인구수를 줄이기 위한 한가지 방법이 바로 세계를 공포속으로 몰아넣은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입니다. 안된 일이지만 인간이 많이 죽어주어야한담니다. 지구의 파멸을 늦추기 위해서 말입니다. 2) 탈무드는 모두 25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동이배달한민족은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으로 천자(天子)나 천손족이라 하지만 유태인들은 '한 외계인 집단을 신으로 받들고' 살았던 민족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선택받은 민족이라 하지요. 유태인의 역사라고 하는 구약성경이나 탈무드, 허가더, 믿두라쉬 등을 예리한 통찰력을 가지고 주의깊게 읽어보면 알 수 있는 비밀입니다. 화성 이주건은 '제5편'에 설명될 것입니다. 탁월한 논평과 지혜가 용솟음치는 정선생의 통찰력에 감탄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닥쳐오는 지구의 불행에 관심을 가지고 걱정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기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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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 우선 참고문헌을 자세히 검토한 점에 감사드립니다. 필자와 같은 나이의 어린 시절에 속담같은 경구가 있었지요. 한 바보가 말합니다. "아 다이도 바이다." 두번째 바보의 대응입니다. "마이좀 또이 또이 해." 세번째 바보의 답입니다. "두이다 바이버이다." 결론은 세사람 모두 말을 잘 못하는 바보들이라는 것이지요. 1962년에 북경대에서 로 박사학위를 받은 리지린의 고조선 위치도 틀렸고, 리지린의 논문에 참고한 윤내현도 틀렸고, "고조선의 서쪽 강역이 하북성 난하까지"라는 이 두사람의 설을 들어 "낙랑군이 평양이다"라고 한 총독부 학설을 비판한 이덕일도 틀렸어요. 세 사람이 모두 틀린 것입니다. 물론 고강힐, 리지린, 윤내현, 이덕일 모두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고조선의 위치를 고증하지 못한 점은 모두 틀린 것이지요.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관자’, ‘산해경’, ‘전국책’, ‘진서’, ‘구당서’, ‘위서’, ‘수경주’ 등을 읽으면 무엇하나요. 해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을요. 한자에 능통하다는 것과 역사문헌을 지리지명에 맞추어 해석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지요. 고대사의 지리지명을 고증할 때는 반드시 1차사료인 ‘상서/우공’, ‘여씨춘추/유시람’, ‘회남자/지형훈’, ‘주례직방씨’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중국역사지명대사전’, ‘중국고대지명대사전’,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을 비롯하여 ‘한서지리지’를 포함하여 25사에 나오는 모든 지리지를 읽고 교차확인 해야 하고, ‘수경주’, ‘산해경’, ‘로사’ 등을 읽어야 합니다. 이들 네 사람은 이 같은 문헌사료들을 읽지 못했지요. 그들의 논문이나 저서 말미에 나오는 참고문헌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어요. 엉터리 주장을 한 사람들의 논문이나 글은 참고할 필요도 없고, 틀리고 오래된 학설은 더욱 그러합니다. 이런 이유로 북한 리지린의 논문은 무시한 것이지요. 이 글은 정태황 선생의 댓글에 대한 논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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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 정태황 선생의 댓글에 대한 논평이다.

    댓글: 고구려의 압록수 위치 연구(개정)를 다 읽었습니다. 50쪽이므로 금방 읽을 수 있었습니다. 위에 쓰셨듯이 1. 중국이 왜곡, 변조하는 주된 이유는 결국 한국을 경계하기 때문인가요? 그토록 장구한 세월에 걸쳐 훼방 놓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합니다. 2. 식민사학과 그 도제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해방 후 태어난 학자들까지 일종의 직무유기를 하는 까닭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문헌자료마저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그저 답습하려 들거나 더 나아가 거꾸로 역사왜곡 전위대를 자처하고 있다면 학자로서 기본 의무마저 저버리는 데다가 자질마저 의심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리고서 미 하바드대 램지어 교수를 비난할 수 있을는지요.

    논평: 우선 필자의 딱딱한 논문을 읽고 공감해주신 정선생께 감사와 힘찬 박수를 보낸다. 역사적 관찰을 통해 민족형성을 분석해보면 중국[지나]은 서출인 서자나 방계로 이루어진 모계사회이고 동이배달한민족은 장자나 적자로 이루어진 부계사회이다. 이 같은 민족 구성으로 인하여 지나인들은 큰집인 한국, 배달국, 단군조선, 고구려, 백제, 대진, 신라, 고려에 대해 항상 열등의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가 900년, 백제는 870년, 신라가 935년, 대진이 259년, 고려가 471년의 역사로 평균 역사 역년이 687년인데 반하여 지나의 왕조는 한나라 426년, 수나라 36년, 당 290년, 송나라 319년, 명나라 276년으로 평균 270년의 짧은 왕조이다. 270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지나는 687년의 오랜 역사에 항상 열등의식을 가졌다. 집요한 역사왜곡과 날조는 적통과 서자라는 민족형성의 열등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해방 후 학자들의 직무유기라기 보다는 사대주의에 찌들은 자주성의 부재와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일제식민주의 잠재의식에서 나타난 자율적 학문의 결여 때문이다. 학문이란 지식을 배우고 익히며 체계화하는 과정으로 학문에 전념하는 사람을 학자라 하는데 한국의 제도권이라 하는 대학에는 역사학자가 없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책을 읽어야 하는데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2011년 국가별 1인당 년간 독서량을 보면 일본이 12.7권, 프랑스가 11권, 미국이 10.8권 그리고 한국이 2.7권이다. 역사학자도 국민이니 이 통계 속에 당연히 포함되어 있을 터, 1년에 2.7권의 책을 읽어 어느 세월에 4,022권의 25사, 1,893권의 조선왕조실록, 그리고 사고전서에 수록된 80,000권의 방대한 문헌사료들을 어떻게 읽을 수 있겠는가. 그것도 한자로 쓰여있는 역사책들을 말이다. 한마디로 자질과 실력이 없는 무식한 사람들이 학자라고 자리를 꿰차고 있기 때문에 5천년 동안 왜곡, 날조, 조작되어온 민족사의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것이다. 램지어는 법학자이지 역사학자가 아니다. 역사학은 모든 학문의 뿌리로 역사학자가 다른 분야의 사건을 다루는 것은 신뢰감이 가지만 법학자가 ‘위안부 역사’를 운운하기 때문에 그런 실수를 범하게 되고, 정치와 금전을 개입시킨 학자는 학자가 아닌 것이다. 학자는 정치와 돈과 명예에 초연한 오직 학문에만 전념해야 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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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 고려의 강동 6주가 요녕성 요하의 동쪽이라는 게시물에 대한 반론이다
    (2021년 3월 8일 뉴욕시간)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전혀 근거없는 주장을 하고 있네요. 역사 연구를 더 하신 후에 이야기 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고려의 강역은 요녕성의 요하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명나라는 역사를 왜곡하고 날조 그리고 조작하기 위해 수많은 위서(僞書)를 만들어 냈어요. 혹시 ‘조선사략’이나 ‘조선지’를 읽어 보셨는지요? 이 두 책이 바로 명나라가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만들어낸 위서입니다. 어떻게 구별하느냐구요? 그같은 사실을 알려면 최소한 지나의 정사라고 하는 25사 4,022권을 읽어야 합니다. 고려의 개경은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에 있는 복양(濮陽)이고, 고려의 서경유수는 고구려의 평야성이던 산서성 임분이며, 고려의 남경유수는 호북성의 신주이고, 고려의 동경유수가 요녕성 요양(옛 요양)이었지요. 고려는 복양에서 일어나 복양에서 망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강동 6주란 산서성 요수(遼水) 일명 압록수(鴨綠水)의 동북쪽을 일컫는 말이지요. 더이상 이같은 엉터리를 역사라고 비정, 추측, 억단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동이배달한민족사를정립하는데하등도움이되지않아요.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에 게제된 필자의 논문들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역사적 사실을 주장하려면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고증할 수 없는 다시 말하면 기록에 근거없는 내용은 허구의 소설입니다. 더 이상 이같은 허구의 소설을 쓰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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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 역사학자 이익주의 Youtube 강의에 대한 비판이다

    큰 유감이지만 이익주의 강동 6주의 위치는 엉터리입니다. 강동(江東)의 강(江)은 고구려 시기 압록수이자 고려시기 압록강이라고도 부르던 산서성에 위치한 요수(遼水)인 압록수(鴨綠水)를 일컫는 말이지요. 다시 말하자면 구양수가 지은 ‘신당서’에서 언급한 말갈백산에서 발원하는 마자수가 바로 압록수입니다. 따라서 강동 6주란 압록수의 동쪽 6개의 주라는 의미입니다. 오늘날의 산서성 령무(寧武)의 동북쪽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대략적인 위치를 밝히자면 경도 112.5도와 위도 39도의 동북지역을 말하는 것이지요. 강동 6주는 한반도도 아니고 요녕성 요하의 동쪽도 아닌 전혀 다른 산서성 동북 지역입니다. 따라서 정유순 선생의 논평이 지극히 옳습니다. 한국제도권 조선 식민 반도사학계의 통설은 허구의 소설로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전혀 근거없는 헛소리 입니다. 유튜브에 나와서 이같은 망언을하기 이전에 왜곡, 날조, 조작되지 않은 역사 공부와 연구를 더하시기 바랍니다. 한자로 기록된 ‘고려사’와 ‘고려사/지리지’를 잘 읽어보시고 동양의 최초의 사서이자 지리서인 ‘상서/우공’부터 자세히 읽어 보시도록 충고 드립니다. 그리고 이같은 엉터리로 더 이상 선량한 대한민국 국민들을 우롱하는 강의는 하지 않길 바랍니다. 우선 필자의 논문들을 잘 읽어보신 후 의문사항이 있을 시는 언제든지 질문해주시고 또한 잘못된 곳이 있다고 생각되면 타당한 근거를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www.coreanhistory.com 에 논문들이 게제 되어 있으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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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Paul Kim 님께 드리는 공개질문

    필자 역시 동이배달한민족사에 지대한 관심를 가지신 한사모 Tak Kim 선생께 진심으로 감사말씀 드리는 바이다. 본문에서는 존칭은 생략하며,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1. 경도 110도를 북남방향으로 흐르는 황하를 요하라고 하셨는데 황하=요하라는 문헌적인 근거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어느 시기까지 황하가 요수였나요?

    답: 우선 필자는 황하를 요수라고 한 적도 경도 110도로 나뉘는 황하를 요하(遼河)라고 한 적이 없다. 필자의 글을 주의깊게 읽기 바란다. 필자가 이야기는 요하란 요수의 물과 황하의 물이 함께 섞이는 물로, 요수(遼水)의 요(遼)자와 황하(黃河)의 하(河)를 함께 부를 때는 요하라고 한다는 이야기이며, 1차사료나 문헌자료들을 읽어보면 산서성의 요수가 안시성이 있던 화염산 서쪽으로 흐르다가 황하로 들어가는 곳에서부터 산서성 남부 왕옥산 일대까지를 요하라고 일컬어진다는 것이다. 황하라는 명칭은 당나라 중렵이후부터 나타난 호칭이고 그 이전까지는 황하를 해(海: 바다), 하(河), 하수(河水) 등으로 불렸다.


    2. 황하 이서를 요서라고 한다면 지금 섬서성에 요서군이 있어야 하는데 문헌상 근거가 있는지요? 고구려가 쌓았다는 요서 10성을 섬서성 어디로 비정하시는지요?

    답: 요동 요서는 산서성에 있던 요(遼) 자가 들어간 지명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춘추시기(770-403BC)부터이다. 요산, 요수, 대요수, 소요수, 요현, 요주, 요양 등 요라는 이름은 모두 산서성에만 있던 지명이다. 따라서 산서성의 좌측인 섬서성은 요서이며, 이는 마치 황하를 사이에 두고 하동과 하서로 나누는 것과 같다. 요서군이란 황하 아래에 있던 왕조가 동이족의 땅인 산서성 남부를 한때 점령하면서 자신들의 행정구역을 만든 것이다. 그 후 산서성 남부지역이 북연의 땅이 되고 진시황이 북연을 멸하고 산서성 남서부 일부 지역을 요서라고 한 것이다. 요서군이란 “진(秦)나라가 설치한 곳으로 유주에 속하며 영지에 고죽성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어 요서군은 진나라가 설치한 행정구역 명칭이다. 섬서성에 요서군을 두었다는 기록은 없다. 기주(冀州)에서 유주(幽州)로 그리고 요서(遼西)로 이름이 바뀌어진다. 지나 왕조의 입장에서는 요동이지만 단군조선 말기 이 땅을 빼앗긴 적도 있기 때문에 요서라고 불린다. 고구려 제6대 태조 궁 무열제가 쌓은 10성은 요서라고도 했던 주로 산서성 남서부에 위치한다.


    3. '요'가 멀다는 뜻이라면 어디를 기준으로 멀다는 뜻인가요? 고대 중국의 중심지를 섬서성 서주(장안, 서안)로 본다면 서주에서 경도 110도 황하는 가까운 곳입니다.

    답: 요(遼)를 “멀다”라고 해설한 사람은 후한시기 ‘설문해자’를 지은 허신의 설(說)로 전혀 논리성도 설득력도 없는 말이다. 요(遼)자는 ‘큰 샘들이 있는 땅’이란 의미를 갖는 글자이다. 서주시기는 서안을 호경(鎬京)이라 했으며 후에 서안으로 불리게 되고 장안도 서안 근처이니 서안이나 장안은 거리상 별 차이가 없다. 지나의 사서(史書)를 읽을 때는 “만리장성”, “백발이 삼천장”, “서안에서 6,000리” 등 과장된 거리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4. 요하의 위치가 서하족이 동진하여 옴에 따라 시대에 따라서 변해왔는데 하북성 난하는 언제부터 요하로 불려졌는지요?(학계에서 고대 요하를 일반적으로 난하로 보고 요서,요동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답: 강(江)이나 산(맥)을 인간이 옮기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왕조가 이동한다 해도 요수는 요수요 요산은 요산으로 그곳에 원래 천연 그대로 위치해야 하는 것이다. 하북성 난하를 요하라고 불렀다는 1차사료나 문헌자료는 어디에도 없다. 난하는 원래 유수(濡水)를 뜻하며 산서성 남부에 위치한 지금의 속수를 일컫는 말이다. 유수를 한 때는 역수라고도 했고 이 하천을 난하라고 한다. 한국역사학계의 주장은 문헌사료에 전혀 근거없는 허구의 소설이다. 요수(遼水)와 요하(遼河)는 시간과 공간적으로 완전히 다른 하천이다. 지금의 요녕성 요하는 거란족이 세운 요(916-1125)나라로 인하여 생겨난 강으로 요나라 태종 회동원년(會同元年: 938)에 최초로 언급된 이름이다. 따라서 요하는 고구려가 패망하고 270년이 지난 후에 만들어진 하천임에 주목해야 한다. 때문에 요녕성의 요하는 고구려의 압록수인 요수와 전혀 다른 이름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5. ‘회남자’와 그 주석에 "요수는 갈석산에서 발원한다"고 했는데 갈석산과 요수가 고대에 연나라와 조선을 가르는 경계라는 주장에 대한 견해는 무엇인지요? *이 갈석산은 발해만이 아닌 하북성 수성현에 있는 원 갈석산(백석산)을 의미합니다.

    답: “요수가 연나라와 조선의 경계라는 주장” 역시 문헌사료에 근거없은 설(說)이다. 갈석산은 우갈석(대갈석)과 좌갈성(소갈석) 두 개의 갈석산이 있었으며 우갈석산은 산서성 남부와 하남성 사이의 황하 가운데에 있고 “요수는 갈석산에서 발원한다”는 갈석은 좌갈석산으로 압록수인 대요수의 발원지 백평산이며 지석산이었던 지금의 관잠산의 일부를 일컫는 말이다. 수성현은 산서성 임분시 남쪽으로 우갈석이 있는 황하를 뜻한다. 현대 대륙지도에 삼문협수고라는 지역이 바로 수성현이다. 연(燕)이란 북연(北燕)을 뜻하며 춘추시기 요동이라 부르던 산서성 남부와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河內)에 동서로 길게 펼쳐있던 나라이다. 하북성과 전혀 관련이 없는 나라이다.

    6. 끝으로 고구려의 경계가 서쪽 어디까지였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배움을 청하오니 꼭 답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답: 고구려는 섬서성 서안 일부와 사천성 북부 일부를 제외한 아시아 전 대륙를 강토로 다스렸던 나라이다. 에는 고구려의 영토가 1만리라 하였고 두우가 지은 ‘제도사’에는 고구려의 강토가 동서 6,000리라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의 서쪽 영토를 굳이 따진다면 감숙성 끝까지이다.

    자세한 내용은 그동안 발표한 필자의 논문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스스로 답을 얻을 것으로 본다. 제1집 ‘고구려의 요동 요서 위치에 대한 소고’, 세계출판사, 2019, 제2집 ‘고구려의 압록수 위치 연구’, 세계출판사, 2019, 제3집 ‘고죽국의 위치 연구’, 세계출판사, 2019, 제4집 ‘패수의 위치 연구’, 세계출판사, 2019, 제5집 ‘갈석산의 위치 연구’, 세계출판사, 2019, 제6집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기록된 역사내용의 문제점 고찰‘, 세계출판사, 2019, 제7집 ’고구려의 요동 위치 연구‘, 세계출판사, 2020, 제8집 ’유주와 영주의 위치 연구‘, 세계출판사, 2010, 제9집 ’한사군의 허구성과 그 위치 연구‘, 세계출판사, 2020, 제10집 ’정약용의 역사인식 비판‘, 세계출판사, 2020, 제11집 ’고구려의 압록수 위치연구‘(개정), 세계출판사, 2021.

    필자의 www.coreanhistory.com 에 모든 논문이 게제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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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 Facebook에 게제된 글에대한 논평이다
    (2021년 3월 12일)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즉 "오늘 목놓아 통곡한다."는 말은 안창호가 한 말이 아니고 황성신문 사장이던 장지연이 1905년 11월 17일 굴욕적인 을사늑약과 일제의 음모를 폭로한 논설로 그의 신문 2면에 게제한 것이며 1905년 11월 20일 월요일 새벽에 나온 말이다. 우선 시(時)자가 아니고 시(是)자로 글자도 틀렸다. 장지연이 한말을 안창호가 했다고 한 것은 역사적 사실의 큰 왜곡이다. 역사왜곡은 표절보다 더 나쁜 범죄행위임을 글을 쓴 본인은 잘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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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 필자의 댓글에 대한 이매림•박찬우 선생의 댓글에 대한 논평이다

    이매림 박찬우 선생에게 드리는 충언!

    존칭은 생략한다. 우선 학문이 무엇이고, 학자가 무엇이며, 논문이 무엇이고, 1차사료와 문헌자료가 무엇인지나 알고 있는지 묻는다.

    지금까지 어떤 종류의 책을 평생 몇권이나 읽었는지도 함께 묻는다. 책을 더 읽고 난 후에 입을 여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학자는 논문이란 매개체를 통해 자신의 이론을 발표하는 것이고 '논문이란 의견을 논술한 글이나 연구결과를 발표한 글'로써 논문은 자신의 주장이 있어야 하고, 독창성이 있어야 하며, 논리적이고, 상당한 객관성이 있고, 설득력이 있어야 하며 누구나 검증할 수 있도록 문헌사료를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는 사실로 말하는 것이고 기록으로 고증하는 것이지 근거 없는 허구의 소설로 지껄이는 것이 아니다. 1차사료나 문헌자료에 근거 없어 고증이나 실증을 할 수 없는 엉터리를 역사라고 주접떠는 사람들은, 식민사학이든 민족사학이든 천문학자든 고고학자든 모두 사이비이니 당연히 까부셔 버려야 한다.

    그들은 학자이기 때문에 필자의 비판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필자의 논문을 모두 읽어보고 난 후 잘못된 곳이 있으면 근거를 제세하면서 정식으로 논문으로 대항하기 바란다.

    세계출판사는 나의 개인 출판사가 아니고 비싼 출판비 내면서 출판하고 있으며 논문 검증은 독자들이 하는 것이지 제도권 조선 식민 반도사학자들이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그리고 필자처럼 떳떳하게 얼굴을 내놓고 활동하시기를 당부드리며 필자의 주장이 옳고 그름은 지식과 지혜를 가진 독자들이 평가할 일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2021년 3월 12일 13시 25분p.m.(뉴욕시간)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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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 필자의 논평에 대한 이강산 선생의 비판에 대한 답글이다
    2021년 3월 13일(뉴욕시간)


    이강산 선생 고증이나 실증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필자의 논문을 직접 읽어보세요. www.coreanhistory.com에 ‘한사군의 허구성과 그 위치 연구’(제9집), 세계출판사, 2020.에 1차사료와 문헌자료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니 직접 확인하세요.

    학문이란 주먹구구식 감정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하는 거랍니다. 필자의 논문을 읽어본 후 잘못된 이론이나 주장이나 고증과 실증에 상충되는 내용이 있으면 이선생께서도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따지세요. 언제든지 기꺼히 답변해 드리리다.

    앞에서 언급한 필자의 논문 제55-63쪽까지 참고자료 198종이 수록되어 있으니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고증했는지 안했는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1차사료가 무엇인지 그리고 문헌사료가 무엇인지부터 공부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선생이 주장하는 'blog.naver.com 한사군의 위치'가 얼마나 엉터리이고 허구의 소설인지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더이상 이같은 엉터리를 역사라고 주접떨지 말기 부탁드립니다. "綆短者不可以汲深(경단자불가이급십) 두레박 줄이 짧으면 깊은 우물의 물을 길을 수 없다."는 뜻이 무엇인지 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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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 댓글에 대한 논평이다

    "爲其所難者, 必得其所欲(위기소난자 필득기소욕) 시련을 이겨낸 사람은 반드시 뜻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왜곡되고 조작으로 점철되어온 동이배달한민족사를 반드시 밝힐 것입니다. 필자는 이 같은 사명을 띠고 이 세상에 왔다고 굳게 믿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2021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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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 “근대사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을 올바로 알고 대한민국을 구합시다”에 대한 논평이다.

    *박정희가 역사학자였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今始初聞)으로 역사학자로서 필자가 알고 있는 박정희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박성빈과 백남의의 막내로
    2.1917년 11월 14일 생이고
    3.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으며
    4. 만주군관학교 지원 당시 “一死以デ御奉公朴正熙(한번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라는 혈서를 쓴 사람이고
    5. 공산주의 자로 1948년 11월 11일에 체포되어
    6. 1949년 2월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이 구형된 사람이고
    7.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3등으로 졸업한 우수한 학생이며
    8.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된 사람이고
    9. 그의 첫 희생물로 언론인 조용수를 사형시킨 사람이며
    10. 외화만 벌면 성매매도 애국이라는 기상천외의 기자촌쎅스 정책을 실시한 사람이며
    11. 대•소 행사를 통하여 연예인을 포함 약 300명의 여인들을 욕보인 사람이고
    12.18년 장기집권 유신독재를 하다가 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살해당한 사람이며
    13. 일본 이름은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14. 경제발전을 시킨 사람이라 주장하는 부류도 있다.

    필자도 일부는 동의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알아보면 그렇지 않다. 월남파병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10년 동안 대한민국의 청년 50,000명이 동원되었다. 장교들의 봉급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사병 봉급은 월 $800 달러였다. 그러나 사병이 받은 실제 금액은 월 $45달러였고 나머지 $755달러는 대한민국의 국고로 들어갔다. 당시의 화폐교환은 $1불당 한화 250원이었으니 독자가 직접 계산해보면 그 금액을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는 이 돈을 경제개발과 경부고속도로와 새마을 운동에 사용했다. 월남파병 장병 7,800명이 사망했고 22,000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사망자와 부상자에 대해서도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돈을 받았다. 그 돈 역시 대부분 국고에 귀속되어 경제발전에 사용되었다.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피값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는 사실이다.

    월남파병 장병들 중 고엽제 환자가 무려 25,000명에 이른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을 집고 넘어가자. 당시 월남전쟁에 참전할 수 있는 군인은 대한민국밖에 없었으며 박정희가 아닌 누가 대통령이었어도 월남파병은 한국의 몫이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결론은 경제개발면에서도 박정희의 공(功)은 극히 적다는 것이다. 함께 살펴본 바와 같이 그의 경력이나 이력에서 역사학자였다는 사실은 찾아볼 수 없다.

    不根持論 (불근지론)이라 확실하지 않은 설을 지론으로 함은 박정희를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욕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는 바보들만 살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기 바라며, 3심으로 끝나는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판결보다 더 냉정하고 무서운 판결이 다름 아닌 4심인 역사심판이라는 진리를 되새기기 바란다. (2021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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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 송진섭: 박정희전대통령의 쿠데타와 유신 장기독재에 관련한 평가는 논외로 합니다만 그가 국가통수권자로써 기울인 노력과 결과물은 대한민국 해방이후 현대사를 뒤집어 바꾸고 발전시켜 가난과 후진적국가를 국제경쟁을 가능케하는 현대국가로 진입시킨 매우 뛰어난 대통령이었슴을 소홀히 하면 안되겠습니다(2021년 3월 31일)


    댓글에 대한 논평이다

    좋은 말씀, 선생님의 견해를 존중해드리지요 허나 "국가통수권자"라는 데는 잘못 알고 계신듯합니다. 통수권자란 자주국으로 자국의 국군을 지휘할 수 있는 사람을 통수권자라 말합니다. 대통령의 고유한 권한이 바로 국군통수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도 지금처럼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이 없었지요.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국군통수권을 미국에 넘겨주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히틀러가 1933년 3월 5일 정권을 잡고난 후 독일은 실업자가 거의없는 완전고용 사회로 중공업뿐만 아니라 기간산업 철강 모든 분야에 눈부신 성장을 하였어요. 유럽의 선진국 중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하지만 독일 국민은 히틀러를 뛰어난 지도자라고 하지않아요. 히틀러를 두둔하는 발언을 하면 오히려 형을 받는 나라가 독일 입니다. 그들은 역사의 준엄함을 잘 알고 있는 의식있는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를 평가할 때는 공(功)과 과(過)를 따져서 해야합니다. 그런데 박정희는 공보다는 과가 더크다고 봅니다. 또한 선진국이란 물질만이 풍족하고 인간성이 결여된 나라를 지칭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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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 이글은 Soonnam choi 선생의 댓글이며 끝부분에 필자의 논평이 있다

    1. 범죄(남침)한 나라에 그런 징벌은 있을 수 있지요.
    2차 대전의 일본에게 그랬듯이요! 지금 천안함이
    북한의 소행으로다 아는 입장에서, 또 다른 헛소리하는 남한정부에게도 한 방 먹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나는 듭니다!

    2. 월남파병은 어쩔 수 없었던 시대적 요구였고 한국전에 도왔던 미국을 협조한 일로 볼 수 있음. 그 일로 경제적 부흥이 있었던 것은 사실!

    3. 지도자는 나라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 어떤 고난도 감수하지요?
    누가 전쟁터에 그 많은 사람 죽을 줄 알았나요?
    전쟁은 죽음이 불가피합니다! 가난한 나라로 계속 살고 있었으연 좋았겠나요 그리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모든 것을 보면 안됩니다. 미국은 인디언들이 계속 평화롭게 살 수도 있었지만, 'Manifest Destiny' 를 저는 찬동하는 사람으로서 이 땅이 (북미) 정령과 우상숭배의 땅으로 남아있기를 원치 않지요!

    4. 역사학자라고 하셨는데, 미국의 역사는 더 공부하시길요!

    *이들 댓글에 대한 논평임*

    예정조화설을 믿는 것으로 보아 기독교인 이시군요. 말 씀 아주 잘 하셨네요. 미국 역사에도 나오지요. 청교도는 좐 캘뷘(John Calvin)의 교리를 채택한 종파이지요.

    예정조화설은 이렇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을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 것이고 오직 몇몇 소수만 천국에 갈 수 있고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은 영원히 지옥에 보내지게 된다"는 어리석은 믿음 말입니다.

    캘뷘은 아주 어리석은 사람으로 지구가 태양주위를 돈다고 주장한 코우퍼니커스를 다음과 같이 비난합니다. "성경에는 지구가 움직일 수 없다라고 씌어있다"고 하면서 코우퍼니커스를 맹렬히 비난했던 사람입니다. 이같이 어리석은 캘뷘의 예정조화설을 믿고 따르는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할 까요? 대답은 스스로 얻으시기 바랍니다.

    유대인의 역시인 구약성서에는 이직도 지구가 정지해있고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멍청한 소리를 하고 있어요. 열람 확인해보시지요. 역대기 상 제16장 30절, 시편 104:5절, 전도서 제1장 5절에 적혀 있으니 읽어 보세요.

    필자는 역사학자로서 근거 없는 헛소리는 하지 않아요. 또 최선생의 이야기는 앞뒤가 전혀 맞지않은 이야기 투성이 임을 모르시는 것 같네요. 예정조화설을 믿는다면 전쟁도, 가난도, 천안함 사건도, 죽음도, 남침도, 우상숭배도 모두 예정된(destined) 것인데 왜 그리 소란이신지요? 백귀야행(百鬼夜行)이라 어중이떠중이 들이 때를 만나 활개 치고 다닌 것처럼 무식한 사람들의 행진으로 보입니다.

    기독교를 정확하게 알고 싶으시면 필자의 저서 서울: 세계출판사, 2021.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400종이 넘는 참고 자료를 제시했으니 공부가 많이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최 선생, 미국역사 어디에서부터 시작할까요? 지금까지 어떤 종류의 책을 몇 권이나 읽으셨나요? 책좀 더 많이 읽고 공부하고 연구한 후에 주접떨기 바랍니다.

    * 저속한 우리 속담에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고 하지요. 사람마다 제각기 의견이 다르니 생각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사물을 이성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침략과 통일은 뜻이 다른 개념이고 미국이라는 나라는 청교도가 세운 나라로 그 근본이 아주 잔인함에서 시작되었지요.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 땅을 무력으로 침입하여 강탈했고 미국의 원주민 이름하여 '미국인디언'을 자그만치 800만을 죽였어요. 잘못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미국대륙에 흑인 노예를 최초로 데려온 사람도 청교도라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미국에 건의해서 남한정부에 폭탄 700,000톤으로 박살내라고 하시지요. 북한에는 635,000톤을 퍼 부었지만 그동안 물가도 많이 올랐으니 폭탄량도 더 많아져야 하지 않겠는지요. 필자 역시 500년이 넘게 사대주의에 찌든 대한민국이 보기 싫고 진저리 남니다.


    월남 파병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복숨걸고 전쟁터에 나간 젊은이들의 피의 댓가로 벌어온 돈으로 박정희가 경제개발했다는 점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경제개발하고 경부고속도로 만들고 새마을 운동할 때 소요된 비용을 박정희 개인이 미국 라스베거스(Las Vegas)에서 blackjack으로 따온 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돈이 있는데 누군들 경제개발 못하겠는지요.

    그리고 필자는 역사학자로서 6.25전쟁은 침략전쟁이라기 보다는 통일전쟁이라 봅니다. 전쟁이라는 점은 같지만 그 의의는 사뭇 다릅니다. 논평 고맙습니다. (2012년 4얼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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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 서정애의

    “종앙일보는 인포데믹 온상지 수술하면 될까?”
    추다르크 추미에에 관한 논평이다.(2021년 4월 3일)

    우선 존칭은 생략한다. 필자는 역사학자로서 정치적인 논평은 극히 싫어하지만 부패한 언론과 관련된 것이니 한마디 전하고 싶다.

    一犬吠形百犬吠聲(일견폐형백견폐성)이라 한 마리의 개가 사람이나 어떤 형상을 보고 짖으면 이 소리를 들은 여러 개들이 덩달아 짖는다는 뜻으로, 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이 말을 들은 여러 사람들이 모두 이것을 사실로 곧이듣고 남에게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생긴 모양은 사람같으나 모두 개들이니 너무 심려하지 말기 바란다. 국가와 민족과 대중의 복지를 위하여 초지일관할 것이며 항상 한 인생의 마지막 심판인 4심, 역사심판을 잊지말고 명심하기 바란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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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 정태황 선생의 댓글에 대한 논평이다.

    우선 ‘중국’ 대신 ‘중공’이라 부르는지에 의구심을 갖고 댓글을 남긴 정선생께 감사드리며 이하 존칭은 생략하고 다음과 같이 이유를 밝힌다.

    사마천은 를 지을 때 황제헌원부터 서한 무제까지 약 3,000년 간의 역사를 기록하였으나 3,000년의 동양 역사상 ‘중국(中國)’이란 국호를 가진 나라는 없었다. 요임금(당), 순임금(우), 하, 상, 은, 주, 노, 위, 정, 진(秦), 조, 체, 연, 송, 제, 진(晉), 초, 진(陳), 위, 한(漢), 수, 당, 요, 금, 원, 명, 청, 중화민국(손문), 중화인민공화국(모택동) 이들이 그들의 국호이다. 중국이란 나라는 없다.

    중국이란 이름은 단군조선 제12대 아한단군(BC1834) 시기 국태사로 있던 유위자(有爲子)로 공자의 7대손인 공빈(孔斌)이 지었다는 ‘동이열전’에 잘 나타나 있다. “有爲子以天生聖人 英名養溢乎中國 伊尹受業於門(유위자이천생성인 영명양일호중국 이윤수업어문) 유위자는 하늘이 낸 성인이며 그에게서 넓고 뛰어나게 좋은 중국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이윤이 그의 문하에서 배웠다”라고 적고 있다. 중국이란 원래 ‘사이중(中)’에 ‘땅국(國)’자로 가운데 사이의 땅이란 의미로 지어준 이름이다. 동이배달한민족의 지족인 모계로 이루어진 그들을 황하 이남 섬서성 일부 가운데 땅에 살게 해준 것이 그 어원의 시발이다.

    정초가 지은 ‘통지(通志)’와 사마광이 지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중국의 조상은 사이(四夷)에서 생겼으며 사이는 고구려, 백제, 신라, 왜의 부족에서 갈라져 나간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1912년 1월 1일 태어난 중화민국의 약칭이 ‘중국’이고 1949년 10월 1일에 건설된 중화인민공화국의 약칭은 ‘중공(中共)’이며 이들 모두를 함께 부를 때는 ‘지나(支那)’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이라 부르는 것은 역사적 오류이며 반드시 중공이라 칭해야 한다.

    이 같은 원리라면 대한민국의 약칭은 ‘한국’이 아니라 ‘대국(大國)’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저서 ‘동이배달한민족사’(개정증보판) 서울: 세계출판사, 2019. 쪽 249-252를 참고하기 바란다.

    바른 역사는 www.coreanhistory.com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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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 * 존칭은 생략하며 서울대 서의식 교수에게 공개질의 한다 *


    1.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각각 몇권 몇째 줄에 “나라가 멸망한 후 한반도 남부지역으로 이동해 온 조선유민들이 진한 땅에 6촌을 세웠으며”라고 기록되어 있는지 밝히기 바란다.

    2. 역사학자는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의거 논거를 제시하고 고증을 하는 것이지 다음과 같은 비과학적인 추측과 희망 사항 같은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치부함이 마땅할 듯 보인다”, “타당할 것이다”, “단정해도 좋을 여건이 아니다”, “∼듯 보인다”, “사실상 가능성이 크다”, “믿어도 좋을 것이다”,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대로 수용해도 좋지 않을까 여겨진다”

    역사학자는 모름지기 實事求是 無徵不信((실사구시 무징불신)이라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를 탐구하고 증거가 없는 것은 믿지 않음이 원칙임을 명심할 것이며 이 같은 엉터리를 역사라고 논(論)하지 않도록 충고드린다. 필자의 논문들을 자세히 정독하면 서교수가 알지못한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고 깨닫게 될 것이다. 숙독한 후 잘못된 곳이 있으면 논문으로 반박하기 바란다.


    www.coreanhistory.com에 필자의 논문이 게제 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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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논평 고맙습니다. 노자와 장자는 성인의 범주에 들지만 공자는 아닙니다. 공자 때문에 동양의 평화 질서가 엉망이 되었고 온 국민이 정치하겠다고 야단법석이랍니다. 유학, 주자학, 성리학이 이 나라에 끼친 폐악은 말할 수 없이 많고 그여파가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을 이모양으로 만들었어요. 공자의 인물평을 알려면 당시 '노자'와 '묵자'가 공자를 평가한 대목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121년 3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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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3. 논문을 쓸때는 그렇습니다. 공부는 이미 알고있는 내용을 배우고 기억하는 것이지만 논문이란 지금까지 알지못한 사실을 밝히는 것으로 논문주제와 관련이 있는 모든1차사료와 문헌자료들을 조사, 비교, 검토, 분석, 교차확인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논문을 쓰는 일은 아주 어려운 과제입니다. 따라서 논문은 그분야의 최고를 일컫는 것이며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게 논술해야 합니다. 논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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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 * 弘益人間(홍익인간)이란 무슨 뜻인가 *

    홍익인간이란 ‘만인에게 의식주를 해결해 준다’는 뜻이니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홍(弘)은 활인 궁(弓)과 아무개의 뜻인 모(厶)로 이루어진 글자다. 활이란 사람이 가지고 다니는 아주 작은 무기이다. 그러나 활이 앞에 있고 뒤에 아무개가 서있는 모양으로 활과 사람인 아무개를 비교한 것처럼 보이는 글자다. 활이 무척 커 보인다. 사람과 같은 크기의 활로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활이란 의미로 크다 혹은 넓다의 글자다. 만약 모(厶)가 앞에 나오고 활(弓)이 뒤에 위치 했더라면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아무개가 가지고 다니는 활 등으로 말이다. 한자는 뜻글자로 의미하는 획이나, 위, 아래, 앞, 뒤에 그 획이 붙어있는 위치에 따라 해석도 다를 수 있다.

    익(益)이란 글자를 풀어보자. 팔(八: 다수, 많음)과 천(一: 하늘, 별, 행성)과 팔(八: 다수, 많음)과 명(皿: 그릇)의 합성어이다. 하늘에 있는 행성에서 내려온 많은 사람들과 하늘 아래 땅에 살고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의 글자이다.

    따라서 홍익이라 할 때는 우주의 모든 인간들을 크게 널리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한다는 뜻이다. 동물은 두 가지의 본능이 있다. 생계유지와 종족유지가 그것이다. 생계유지가 먼저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먹어야하는 것이다.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래서 옛날에는 백성들을 굶지 않게 돌보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통치자였다. 배고파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배곯은 심정을 알 수 있으랴.

    역사를 상고해 보면, “1830과 1930년 사이에 5천만명 이상의 유럽인들이 해외로 이민을 나갔는데 인구증가로 인하여 음식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홍익인간이란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온 것이다.


    홍익인간에 대해 자질구레한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지만 필자는 오직 우주철학사상으로 한자의 뜻을 풀고 해설할 따름이다. 뜻을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공감해줄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성적인 논리와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 원리를 자연스럽게 깨닫기 때문이다.

    한자는 뜻글자로 첫째, 글자를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둘째, 글자의 의미를 알아야 하며 셋째, 글자의 우주철학사상을 알아야 한다. 弘益을 ‘홍익’이라 읽을 수 있음이 첫 과정이고 弘益이 ‘널리 이롭게 한다’가 두 번째 과정이며 弘益을 ‘우주의 모든 인간들을 크게 널리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한다는 뜻’이 바로 우주철학사상의 해석인 것이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은 인간 세상을 널리 유익하게 한다는 도(道)를 통한 배달국(倍達國)의 국시(國是)이다. ‘이롭다’를 물질적인 측면으로만 보기 때문에 해석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배달국이나 단군조선 시기에는 오늘날처럼 화폐도 자동차도 로렉스 시계도 스타인웨이 피아노도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고 엄청난 외화를 낭비하는 해외여행도 없던 시절이며 오직 의식주(衣食住)에 급급했던 시절이다.

    ‘이롭다’는 사람들이 굶지않고 살수있게 하는 이로움을 의미하는 것이다. 21세기인 지금도 선진국이라 하는 서구나 미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집이 없어 거리를 배회하고 길거리의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홍익인간의 철학사상을 알지 못한 물질만능 자본주의의 비극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동이배달한민족의 옛 통치자들은 백성들을 모두 배고프지 않게 홍익인간 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의식주를 해결해준다는 의미가 바로 홍익인간이다. 동양에서는 싱가포르가 홍익인간이 제일 잘된 나라로 보이고 서양에서는 노르웨이와 스웨덴 두 왕국이다.

    도를 통한 나라 배달국은 BC3898년 음력 10월 3일에 세워진 동이배달한민족의 자랑스런 초기 국가이다. 홍(弘)과 익(益)이란 글자는 물질만능의 20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는 글자이기도 하다.

    6,000년 동안 동이배달한민족의 국훈(國訓)이 되어온 자랑스러운 ‘홍익인간’의 네 글자를 교육이념에서 지우겠다는 정치인들이 있다 하니 그들의 불학무식(不學無識)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불학무식한 깡패들의 직업인 정치에 참여하기 이전에 제발 역사를 공부하기 바란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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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 태극을 들먹이는 것으로 보아 8괘는 알고 있는듯 하군요. 64괘를 통달하지않고 어찌 감히 한자의 우주철학사상을 논할 수 있겠소이까. 무망(无妄)의 괘가나왔으니 잘 풀어보시도록. 노자의 ‘도덕경’에 이런 말도 있어요. " 知不知上不知知病"이라 뜻을 잘 풀어보시도록 . 아무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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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 필자가 뜻풀이한 “서(西)”에 대하여 황인국 선생의 댓글에 대한 논평이다 *
    댓글: 태극으론 곤이니 ㅡㅡ 숙지심을 ㅡ 모쪼롴 ㅡ ^
    논평: 태극을 들먹이는 것으로 보아 8괘는 알고 있는듯 하군요. 64괘를 통달하지 않고 어찌 감히 한자의 우주철학사상을 논할 수 있겠소이까. 무망(无妄)의 괘가 나왔으니 잘 풀어보시도록. 노자의 ‘도덕경’에 이런 말도 있어요. "知不知上不知知病"이라 뜻을 잘 풀어보시도록 . 아무쪼록! (2021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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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7. * 이 글은 정현태님의 댓글에 대한 답이다 *

    馬牛襟裾라더니 바로 그짝이네요. 知不知上不知知病이라, 잠자코 있으면 두번째는 가는 법이외다. 쥐가 황하물을 아무리 많이 마시고 싶어도 작은 쥐 배부르면 그만 (飮河滿腹) 자신의 분수에 만족하길 바라며, 실력이나 지혜는 흉내낸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드리지요. "윤(尹)은 왜 빛날윤"인가요? 터진 가로왈로 한번 풀어 보시지요. (2021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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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 * 정현태님의 댓글에 대한 답이다 *

    정현태 이곳에도 蝸鳴蟬噪가 있네요. 百鬼夜行이라하더니 이를 두고 한말이외다. 공부좀 더하세요. (2021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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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 댓글: 궁금한게 있습니다. 畓자는 중국에서 쓰이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만 쓰인다는데 그런가요?

    답: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 모르겠으나 답(畓)은 지나인 들도 사용하는 글자입니다. 글자란 시대에 따라 새로운 글자가 생기기도 하고 소멸 되기도 하지요. 한자도 예외는 아닙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비칠조(曌)'라는 글자는 당나라 이세민의 후궁이자 아들 고종 이치의 황후가 된 무미랑(무측천)이 만든 글자라고 하지요. 하늘공(空)자에 날일(日)과 달월(月)을 합성하여 만든 글자입니다. 이 글자를 무미랑이 만들었다고해서 대한민국 사람들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듯이 일단 글자가 만들어지면 다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필자도 새로운 한자 글자를 만들 수 있어요. 한자의 원리만 알면 누구든지 새로운 글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한자는 무려 59,000자에 달합니다. 한자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은 한정된 글자만 알지만 한자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많은 글자를 아는 이치와 같이 그 사람의 한자 실력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이지 답(畓)이란 글자처럼 특정한 사람이 알지 못한다고 그 글자가 지나에서 사용된 글자가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는 무지의 소치로 보입니다. 질문 고맙습니다. (2021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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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 This comment has been removed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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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 댓글:
    천자문의 첫머리에 '천지현황'이 나오는데, 해석이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라고 한다면 맞는 것인지... 왜, 하늘이 검어야 하는지 그것이 늘 궁금했습니다
    아신다면, 부탁드립니다~~ (2021년 5월 4일)

    논평:
    우선 천(天)이란 제17항에서 이미 설명한 것처럼 별, 행성, 달을 의미합니다. 우주에는 약 87%가 검은 물질과 에너지로 구성되어 있으나 지금까지 과학자들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지요. 천자문에서 천을 검다고 한 것은 "오묘하다"는 의미에서 입니다. 보이지않고 알수없는 그런 미지의 세계라는 뜻에서 검다고 한 것이고 별도 수명이 다하여 마침내는 블랙홀(Black hole)로 들어가 소멸하면서 엄청난 우주 에너지를 방출합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谷神不死, 是謂玄牝玄牝門(곡신불사 시위현빈현빈문)"이라 이를 번역하면 '골의 신은 죽지않으며 이를 설명하자면 검은 암컷과 검은 암컷의 문이다'라고 하고 여기서의 검은 암컷이란 블랙홀(Black hole)을 의미하지요. 결론적으로 "천지현황'을 "하늘이 검고 땅은 누렇다"는 해석은 아쉬움이 있는 해석입니다. 땅이 어찌 누렇기만 한가요?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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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 * 청나라 임칙서를 소개한 글에 대한 논평이다 *

    존칭은 생략한다.

    비록 동양사를 공부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좋은 역사물의 소개이다. 한가지 문제를 제기하면서 의견을 듣고 싶다. 비판은 아니니 오해 없도록 바란다.

    짧은 역사 스크륖(Scrip)에서 청(淸), 중국(中國), 중화(中華)란 세 단어가 서로 교체 태환하여 사용된 점에 문제를 제기하며 시대구분(Periodization)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첫째, 청이란 청나라의 국명으로 1644에서 1911년까지 268년 동안 사용되었던 용어이고

    둘째, 중국이란 단군조선 제12대 아한단군 때인 BC1805년경에 국태사 유위자가 ‘가운데 사이의 땅’이란 의미로 지어준 이름으로 청나라가 망한 때까지는 무려 3,716년이란 큰 연대 차이가 나는 단어이며

    셋째, 중화란 ‘중국’의 중(中)과 ‘화하’의 화(華)자를 합성하여 만든 단어로 “화(華)란 단어는 ‘과(夸)’라는 음에서 나온 것”으로 단군조선의 백성인 동이족이 살던 산동성 사람들이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하던 말로 ‘과’란 ‘자랑하다’라는 의미이다. 지나인들이 자신들을 ‘화인(華人)’이라 한 것은 ‘과인’ 즉 ‘자랑스러운 사람’, 또는 ‘자랑할 만한 사람’에서 비롯된 글자이며 ‘화’란 글자는 최소한 춘추전국시기(770-403BC)에 만들어진 단어로 대략 2,497년 전에 나타난 것이다.

    지금까지 함께 살펴본 바와 같이 근세의 왕조인 청나라의 정치인 임칙서(林則徐)를 언급하면서 3,716년에서 2,497년 사이에 사용된 단어들을 함께 병행하고 혼용한다는 것은 역사 서술방법에 문제가 있음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마치 근대의 대한제국(1897-1910)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한인(桓人)’이나 ‘배달(倍達)’이나, ‘동이배달한민족(東夷倍達韓民族)’ 등의 어휘를 함께 무질서하게 혼합해도 좋다는 점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임칙서의 소개는 청조(淸朝)의 통칭인 ‘청’으로만 소개됨이 타당하다고 여긴다. 한가지 더 염려되는 일은 중화라고 자칭한 ‘한족’들은 청나라는 북방의 야만족이 세운 나라라 하여 멸시하였고 끝내는 손문을 위시한 자칭 한족들이 이민족의 청나라 멸망에 앞장섰는데, 야만족이 만들어낸 단어인 ‘중국’이나 ‘중화’를 아무런 비판 없이 사용하는 것은 모순(矛盾)이자 자가당착(自家撞着)임을 부인할 수 없다. (2021년 5월 5일 8:40a.m.)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아래 그림은 본문과 관련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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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 역사적 사실을 주장할 때는 반드시 사건이 발생한 그 당시의 기록인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의해 고증(考證)해야 합니다. 따라서 고증에는 '추정', '비정', '추측', '생각', '-인것 같다', '- 듯 싶다' 등등의 비과학적인 표현이 필요 없어요. 그래서 현대 지도위에 당시의 지리지명을 표시하면서 '여기다'라고 확정하는 것입니다. 지리지명은 천연지형물인 강, 하천, 산, 산맥에 의해 유래된 것으로 강과 산은 수 천년, 수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않고 그자리에 그대로 존재합니다. 우선 역사학도가 되려면 역사학도가 되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길이 있어요. 역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역사를 논하려 하기때문에 허구의 소설들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학자는 역사학자가 아니고, 고고학자는 역사학자가 아니며, 천문학자도 역사학자가 아니듯이 정차학자도 역사학자는 아닙니다.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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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4. * 제41주기를 맞은 김재규 의사를 추모하며 *
    대한민국의 민주회복을 위해 김재규는 독재자 박정희를 저격한 사람이다. 18년도 모자라 영구적 총통제 군사독재를 유지하려던 유신의 물줄기를 돌린 역사적 인물로 그의 추모일을 맞이하여 김재규의 소년 시절과 인품을 요약해 본다.
    김재규(金載圭)는 1925년 10월 4일(음) 경북 선산군 선산면에서 부친 김형철(金炯哲)과 모친 권유금의 3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녕김씨이다. 지주로서 자수성가한 사람이며 천성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피던 부친 김형철씨를 닮아서 김재규는 어린 시절부터 인정이 많았고 의협심과 정의감이 특별했으나 고집이 매우 강했다.
    그는 한번 마음먹은 일은 꼭 했다고 전하는 한 친족의 회고에 “재규가 특히 말썽을 부리거나 속을 썩이지는 않았지만 고집은 대단했어요. 한번은 재규의 모친이 사용하는 배틀의 작대기를 빼서 팽이채를 만들려고 한 모양이예요. 모친이 못하게 혼을 내니까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니 죽어버리겠다고 허리끈을 풀어 살짝 대문에 목을 맸대요. 키가커서 목이 졸리지는 않았는데 그런 꼴로 서 있는 것을 본 할머니가 대경실색, 기절했다고 하더군요.”
    재규는 초등학교 4학년(당시 12세) 때 책보를 메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일본인 순사(경찰)가 나무꾼에게 발길질을 하면서 당시 15전 하던 나무를 5전에 팔도록 강제로 빼앗아 순사의 집까지 갔다 달라는 요구에 나무꾼이 거절하여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어린 재규는 순사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도둑놈 자식”이라 소리치니 그 순사는 나무꾼을 제처두고 소년 재규를 주재소로 끌고 가 유치장에 가두어버린 일이 있다. 김천강 제방사업 기여와 학원 사업을 비롯하여 각종 사회사업에 참여한 활동을 인정받아 한때 선산군 치안대장을 지낸 부친 형철씨의 수습으로 간신히 풀려나왔다.
    어린 재규는 집안의 물건들을 가지런히 정리정돈하고 품행이 단정한 학생이었으며 초등학교 1학년에서 3학년까지 다리미로 잘 손질된 두루마기를 입고 학교에 다녀 자신의 품위에 신경을 썼던 품행이 방정하고 명석한 소년으로 당시 주위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4살 손위인 김재규는 소심한 성격의 동생 항규를 자주 혼내곤 했는데 하루는 항규에게 “사나이는 간이 커야 한다”면서 항규에게 메모지를 주면서 귀신이 나온다고 해서 어린이들이 근처에 가기도 무서워하던 상여집 문앞에 갖다 놓고 그 메모지 위에 돌을 얹어놓고 오라고 지시했다.
    항규는 무서워서 그렇게 하지 못해 재규로부터 많이 혼났다. 김재규는 어린 시절 체구는 작았으나 육상, 높이뛰기 등 운동을 잘했다. 재규 소년이 좋아했던 놀이는 병정놀이로 항상 자기편의 대장을 맡아 했다고 동료들은 회상하기도 한다. 재규는 병정놀이에서 붙잡아온 포로들 중 큰 애들만 혼내고 작은 애들은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의협심과 정의감이 강한 일면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인 6세 때 재규는 동네 서당에서 천자문을 공부했는데 너무나 잘하여 “천재”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재규 소년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열심히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은 철저히 무시하는 성격을 그의 초등학교 학업 성취에서 엿볼 수 있었다. 음악과 체육에는 우수한 성적이지만 다른 과목은 중상에 불과했다.
    김재규 학생은 일본 식민지의 폐쇄적이고 경직된 형식적 규범에 반항적으로 몹시 싫어했던 일면을 읽을 수 있는 일들이 많다. 그의 졸업앨범을 보면 바지 끝부분을 약 20cm 정도 잘라서 속 내의가 훤히 보이도록 입고 다녔고 모자도 똑바로 쓰지 않고 비스듬하게 쓰고 다녔다고 그를 기억하던 동창생들의 증언이다.
    재규는 구두 뒤축을 접어 신고 배낭의 끈을 한쪽 어깨에만 걸치고 등교하곤 하였다. 김재규의 9회 동기생인 김근은 ‘재규는 항일정신으로 일제식 교육에 대한 불만을 흐트러진 복장으로 표현하여 학교에서 낙인이 찍혔다’고 전한다. 당시 일제 치하의 엄격한 제복규율의 기존 질서에서 해방하려는 그의 혁명적 성격을 읽을 수 있음에 틀림없다.
    김재규는 지나가는 일본 순사에게 “일본이 망하면 너도 망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당시 유행하던 노래 가사의 일부인 “양복 입고 칼 찼다고 유세 말아라. 우리 나라 독립되면 너도 당한다” 등의 구절등을 일본 순사에게 손가락질 하면서 말하곤 했다.
    재규는 15세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무선학교에 다니게 되었는데 어릴적부터 고구마, 김, 인절미 등을 좋아하여 유학 생활에서는 이같은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어 식사때면 항시 짜증을 내곤 했다. 어느날 재규는 같이 유학갔던 임명수를 찾아가 “야, 난 더러워서 학교 못 다니겠다”며 홀연히 귀국해 버렸다.
    사실은 일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평이 심했는데 하루는 일본학생과 싸워서 공부를 포기했다고 전한다. 김재규는 초등학교 시절에도 반일감정이 대단했지만 소년기로 성장하면서 보다 적극적인 반일사상이 싹튼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귀국하여 안동농림학교를 들어가게 되었는데 면접시험관이 재규에게 일본 갔다 온 감상을 얘기해 보라고 하자 재규는 “일본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을 조센징이라고 불러서 듣기가 싫었다”고 대답했다. 이같은 불온한 대답을 들은 면접시험관으로서 재규는 당연히 불합격 되었으나 부친이 안동농림중학교의 교사를 하는 사위를 둔 선산 우체국장인 소림에게 부탁하여 그의 사위 히구찌 선생이 보증서를 쓰고 겨우 입학할 수 있었다.
    면접시험 사건으로 김재규는 민족정신이 강한 요시찰 인물로 지목받고, 농림중학교 3년을 감시하에서 어렵게 보내다가 4학년 초에 특별(을종)간부 후보생으로 강제 차출되어 일본에 가서 항공기 조종사 양성소인 하사관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돌아오지 않은 용사란 의미의 ’가미가제‘ 특공대원의 훈련을 받게 된 것이다.
    김재규의 일생을 조사해보면 그는 청렴결백한 삶을 산 사람이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의 제2인자인 중앙정보부장을 지냈지만 부정축재를 하지 않았던 유일한 인물이다. 김재규 부장은 단종복위를 주도한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공조판서겸 삼군도진무였던 김문기의 후손이기도 하다. 10.26거사 후 육군교도소에서 강신옥 변호사에게 밝힌 것처럼 “나는 명예욕은 있을지 모르나 지위욕은 없다. 사나이 대장부로서 죽을 명분을 잘 찾았다”고 말한 사람으로 불의에 저항하고 정의에 솔선한 명예를 목숨과 같이 중시하던 인물이다.
    김재규는 1979년 10월 26일 19시 40분부터 20시 5분 사이 유신의 핵 박정희를 사살했다. 당시 소수의견을 냈던 대법원 판사 민문기, 양병호, 임항준, 김윤행, 정태원, 서윤홍 등의 판결문 중 특히 양병호 대법관의 장문의 판결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김재규는 “민주회복을 위해 대통령직에 있는 자연인 박정희를 살해한 것”이라고 하였다. 10.26으로 인하여 유신독재가 철폐되고 민주주의가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며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이 다름 아닌 김재규였음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김재규의 10.26 총성이 아니였다면 어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민주회복의 혜택을 가장 많이 입은 정권이 바로 이들이지만 42년이 지난 지금, 강산이 네 번이나 변했는데도 김재규의사를 복권시키지 못한 졸장부들에게 심한 배신감과 정책수행의 무능함을 질타한다. 그러나 김재규의 숭고한 사상과 민주회복혁명 정신은 4심인 역사속에 분명하게 기록될 것이고 그렇게 기록되어야 한다.
    김재규 의사 추모회 회장 김폴
    (718) 886-0886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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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6. 논평 고맙습니다.하지만 저승은 영(靈)의 세계로 육신이 없으니 날려버릴 수가 없어 아쉽습니다. 다른 이야기 입니다만 전두환은 민족정기(民族精氣)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사형시켜야 합니다. 지금까지 필자는 한 가지 의구심이 남아 있는데, 5.18 광주 민주항쟁의 유족들이 돌맹이 한개씩만 들고 전두환의 집에 던져도 죽일 수 있는데 40년이 지나도록 그렇게 하지못한 유족들이 바보처럼 보입니다. 생명은 모두 중요함을 모르지 않으나 이 사람은 필히 민족과 조국과 조상의 이름으로 자연사(自然死)하지 않게 물리적인 힘을 가해 사형시키든지 아니면 죽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역사가 바로 세워집니다. 이승만 제명, 박정희 부관참시및 제명 전재산 몰수, 전두환 사형및 제명 전재산 몰수, 이명박 종신및 제명 전재산 몰수 , 박근혜 제명 그리고 전재산 몰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화해와 용서는 죄를 지은 사람이 스스로 죄를 뉘우치고 7천만 민족에게 천번 만번 사죄한 후에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입니다. 발포명령을 내린자가 하지않았다고 생떼를 쓰는 이런 자를 어찌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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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 *제41주기를 맞은 김재규 의사를 추모하며*에 대한
    최치원 선생의 댓글에 대한 논평이자 공개사과 요구이다.

    댓글: 하하 본문 내용 만을 보면 저는 그렇게 보인다는 거구요 김재규씨 관한 책은 기회되면 볼께요 다만 박정희 군부쿠데타에 핵식 가담 인물임은 변하지 않아요 아무리 마지막에 박정희를 제거했다해서 정당화 되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답글: 책을 읽는 것이 먼저입니다. 김재규는 5.16군사혁명에 가담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으니 먼저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5.16 당시 김재규는 국방부 총무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로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국방부 장성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김재규 준장도 ‘군사혁명사령부’에 연행되어 엄중한 조사를 받았으나 그의 경력에 부정사실이 없어 석방되었지요.

    핵심이라니 가당치 않아요. 不根持論(불근지론)이라 확실하지 않은 설(說)을 지론으로 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도 있어요.

    주장을 할 때는 반드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법, 率九而發(솔구이발)이라 앞뒤를 가리지 않고 되는대로 지껄이면 고인에게 누가 됨을 왜 모르시는지.

    Pennsylvania 대학 정치학 이정식 교수가 지은 ‘인간 김재규’ 쪽20을 확인하시기 바라며 고인에게 그리고 이 댓글을 읽은 독자들에게 정중히 공개 사과하시길 김재규 의사 추모회 회장의 이름으로 요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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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8. 댓글: 패수를 강단사학자들은 한반도에 있다고 하지요. (2021년 5월 26일 8:50 p.m.)

    논평; 패수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실학자들로 한백겸, 이익, 신경준, 안정복, 박지원, 정약용 등입니다. 지나인들도 아니고 일본이들도 아닌 이씨조선의 실학자들이라는 사실에 분노합니다. 이들은 문헌사료들을 읽지않은 아주 무식한 사람들입니다.

    댓글: 조선시대에 실학이라고 하는 명칭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봅니다. 역사를 제대로 서술 못하는 자들이 실학이라고 하면 우습지요. 성리학도 불교 즉 선교의 아류일 뿐이지요. 실학이라면 양명학이라면 좀 더 가까우리라고 봅니다.

    논평: 물론 입니다. 실학이라는 이름은 후대에 지어진 이름입니다. 주자학이니 성리학이니 하는 것들도 모두 불교와 도교(선교)를 조합해서 만든 것으로 순수한 유학이 아닙니다. 불교를 타도하기위해 만든 학문이라하나 태극도설 자체가 도교에서 나온 것이며 근본취지와 이율배반되는 것으로 참다운 학문이 아닙니다. 필자는 성리학, 주자학, 유학(유교)를 학문으로 보지 않습니다. 물론 역학도 학문으로 보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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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9. 논리적인 사고(思考)를 하려면 우선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데 한국의 재도권 식민 반도 사학자라는, 대학 교수라는 친구들은 책을 읽지않아요. 1차사료가 뭔지 2차사료가 뭔지도 모르는 어중이 떠중이가 교수라고 자리를 꿰차고 있으니 한심하지요. 이들이 쓴 논문을 읽어보면 가관이지요. 논문이라는 것이 모두 기행문, 수필, 허구의 소설이지요. 이들의 무식이 하늘을 찌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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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 유주와 영주의 위치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들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기 때문에 단군조선을 비롯하여 진한, 마한, 변한, 고구려, 백제, 신라, 대진, 고려, 이성계의 고향 화령, 이성계가 회군했다는 위화도 등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하여,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 없는 허구의 소설로 고구려가 망한 때로부터 1,353년간 이어지고 있어요. 동이배달한민족사의 강역을 밝히는 첫 단추가 바로 기주, 유주, 요서, 영주 입니다. 서선생께서 이해하려 하는 영주A와 영주B의 위치와는 약간 다릅니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논문을 직접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www.coreanhistory.com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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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 흉노(匈奴)는 한(漢)나라 사람들이 북방족을 멸시하여 지은 이름이며 한자의 뜻과는 전혀 다른 '인간', '사람'이란 의미이며, 흉노에 뿌리를 두지 않은 아시아 사람은 없습니다. 위도 35도로 나뉘는 황하 이북은 모두 북방계로 흉노라고 불렸지요. 필자 역시 흉노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지나 왕조들도 모두 흉노이지요. 진시황도 마한 사람으로 흉노의 후손이고 주나라 무왕도 흉노 지역에서 살았으니 흉노이지요. 자신들과 이념이나 정치적인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를 폄훼(貶毁)하여 일컫는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말하자면 고향이 똑 같은데 한사람은 민주당원이고 다른 한쪽은 국힘당이라 서로 헐뜯는 이치와 똑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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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2. 엄격하게 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동이족은 고구려, 백제, 신라, 왜를 뜻하며 지나(支那)는 동이족의 지류인 것은 사실이나 그들의 역사는 그들의 것으로 동이족의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마천의 를 포함하여 25사라고 하는 역사는 지나의 역사이며 그들의 역사 속에 동이족의 역사 일부가 '조선열전'이니 '동이전'이니 하는 식으로 전하고 있을 뿐이지요. 동이배달한민족의 역사서가 거의 소실되어 전하지 않고 오직 김부식이 지은 와 김견명이 지은 정도 이고 이씨조선에서 편찬한 는 많은 내용이 왜곡되어 있어 신빙성이 대단히 약하지요. 이런 이유 때문에 지나사에 기록된(비록 왜곡 날조된 것일지라도) 내용 중에서 하나씩 골라, 마치 모래속에서 금모래를 찾는 심정으로 우리의 역사를 재구성하려하니 어려움이 많습니다. 논평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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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3. 약 1만년 전 우리의 조상은 석제 한인(桓因)으로 한인은 감숙성 돈황에서 처음 나라를 세운 사람으로 감숙성을 포함하여 북방의 모든 땅에 거주한 사람들 즉 북방족을 하나라 때는 훈육이라하고, 상나라 시기에는 귀방이라 하고, 주(周)나라 시기는 험윤이라 부르고, 춘추시기에는 적인이라하고, 한(漢)나라 때는 흉노라고 했으며, 위(魏)나라 시기는 돌궐이라 하고, 송나라 때는 거란이라 부르고, 혹은 달단이라고도 불리지요. 같은 족속을 호칭만 달리 한 것 뿐이랍니다. 동흉노에서 선비족이 나오고 이들이 한족을 정복하고 5호 16국과 수와 당을 세우지요. 그래서 수의 문제나 당의 이연을 선비족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수와 당도 흉노이긴 마찬 가지 이지요. 서주시기 그들은 단군조선을 견융(犬戎)이라고도 칭했어요. 한때는 모두를 융(戎)이라고도 합니다. 김창암, 김창수, 원종, 장진구, 김구 모두 백범 김구 한사람을 달리 부르는 이름과 같은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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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4. 댓글: 갈석산 수양산 창려 난하 등이 오늘날의 하북성인 북경의 우측으로 옮긴 시기와 리유 등을 밝혀내는 론문을 따로 구상하고 계신가요? 6월 6일 2012년 (이기홍)

    논평: 그동안 필자가 발표한 제1집에서 14집까지의 논문들 속에 이들 지리지명들이 옮겨진 시기가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이유는 역사를 왜곡하기 위함 입니다. 역사를 조작, 날조, 왜곡한 당사자들이 그들의 문헌사료에 이유를 밝히지는 않지요. 지리지명이 가장 왜곡된 시기는 명나라 때이고 직이성이던 지역을 하북성이라고 고친 것은 중화민국 때입니다.

    댓글: 명초 연왕 주체 시기에 옮겼다고 선생님의 론문에 나와 있지요...이성계와 주체의 합작품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봤어요...

    논평: 정확하게 보았습니다. 이성계는 1만년 동이배달한민족사에 가장 수치스러운 사람이라고 필자는 평가합니다. ‘조선왕조실록’를 잘 읽어보세요. 이성계, 이방원, 이도, 이향인 세종 때까지 명나라에 33,000필의 말을 바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어떤 때는 6,000필, 어떤때는 5,430필, 어떤 때는 21,549필 등을 바쳤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한반도에는 그렇게 많은 말을 사육할 땅도 없고 한반도에 그렇게 많은 말이 있었다는 문헌사료는 없어요. 넓은 고려 대륙의 영토를 말(馬)로 계산해서 명나라에 땅을 빼앗긴 것이지요.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 바로 "교부(交付)"나 "교할(交割)"이란 글자가 그 비밀을 밝히게 하는 단어이지요. '주고 받고 쪼갠 것'입니다. 수치스런 이씨조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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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5. 비정이나, 추정이나, 추측은 역사적 사실이 아닙니다. 필자는 필자의 연구논문에서 비정, 추정, 추측을 하지않고 오직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의해 고증과 실증만 합니다. 그러니 '확정'이 되겠지요. 적절한 단어가 아니니 수정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백제는 해안에 있지않았고 내륙에 위치 했어요. 처음에는 산서성 남부에서 고구려와 함께 있다가 고구려에 패하여 황하를 건너 섬서성 동부와 산동성 에 위치하다가 산동성 제령의 한성이 고구려에 다시 함락되고 호북성, 안휘성, 절강성, 광동성, 호남성 등을 점거한 대제국이었지요. 한반도에는 신라도 백제도 위치하지 않았어요. 필자의 논문들을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www.coreanhistory.com 에 게제되어 있어요. 그리고 친일파를 탓하기 전에 누가 역사를 처음에 왜곡했즌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동이배달한민족사의 지리지명을 왜곡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이씨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입니다. 실학자들의 엉터리 주장을 일제가 따른 것이고 제도권 식민반도 사학자들이 그대로 답습한 것이예요. 정약용, 박지원, 한백겸, 안정복 등의 글부터 차근차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들 실학자들에게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 순서이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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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6.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용어(用語)의 구별이 필 수 적입니다. 고조선(古朝鮮)은 역사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이씨조선과 편의상 구별하기 위한 것이며 왕검조선을 신화로 폄훼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사용된 것으로 적절하지 못한 표현입니다. 조선이라고 할때는 "왕검조선(단군조선)', '위만조선', '이씨조선', '김씨조선(북조선)' 등을 모두 조선이라 부르기 때문에 그 시기에 맞는 명칭을 써야 합니다. '기자조선'은 허구임으로 언급하지 않았구요. 한나라 무제와 관련된 조선은 위만조선을 뜻하지요. 반듯이 구분해서 언급해야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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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 지리지명의 오류를 지적한다. 오늘날의 하북성 북경(北京)은 명나라 3대왕인 주체가 강소성 남경에서 1421년경에 북경으로 도읍지를 옮긴 후에 만들어진 지명으로 금(金)이나 원(元)의 도읍지가 아니였다. 1차사료와 문헌자료들 그리고 각종 지명사전들을 자세히 읽고 반드시 교차확인 하도록 당부한다. 원나라의 도읍지는 상도(商都)로 내몽고에 있는 지역으로 대략 경도 114도와 위도 42도 부근에 위치한다. 지금의 하북성 북경에는 원이나 금이 도읍지를 정한 적이 없다. 주장을 하려면 반드시 근거를 제시하여 고증(考證)해주기 바란다. 왜곡된 역사 내용을 사실인냥 게시하는 것은 천만번 위험한 일이니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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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 기득권 수호나 집단 이기주의 이권에 여념이 없는 무식한 정치인들이기에 올바른 교육정책을 채택하지 못하여 한자교육을 시키지 않은 이유로 봅니다. 구태여 역사를 모르게 할 필요성이 뭐가 있겠어요. 이조 500년의 역사가 한자로 기록되어 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터이고 한자로 기록되어 있는 지나의 역사를 앵무새 처럼 잘들 지껄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요. 주인의식이나 주체의식이나 자존심이 없는 사대주의 노예근성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요.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편안하게 잘먹고 잘 살다가 가면 그만이지 무었때문에 골치아픈 일을 사서하겠는냐 하는 극단적인 자기중심주의와 쾌락주의에서 비롯된 퇴폐적인 인식도 한목할 것이고. 결론은 골치아프게 어려운 한자 공부는 하지않겠다는 나태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녀 노소 전 국민이 정치에 미쳐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라는 사실을 힘주어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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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 상대방이 어떤 주장을 하면 문헌사료로 근거를 제시하도록 요구하세요. 몇년도에 누가 지은 어떤 문헌에 그 같은 기록이 있는지를 먼저 밝히라고 하세요. 그 사람이 근거를 제시하면 신중하게 읽어보시고 확인하세요. 그런후에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蛙鳴蟬噪(와명선조)라 속물(俗物)들이 시끄럽게 지껄이는 데는 신경쓰지 마세요. 百鬼夜行(백귀야행)이라 어중이 떠중이 들이 때를 만나 활개치는 꼴이요. 馬牛襟裾(마우금거)라 무식함이 하늘을 찌르니 그들에게 대꾸하지 마세요. 책이나 많이 읽으라고 충고하세요. 시와 소설이 아닌 책으로, 250쪽 분량의 책을 최소한 4만권 이상 읽은 자들 이라면 설득시키세요. 역사가 무엇인지, 1차사료가 무엇인지, 문헌자료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이야기 해줘도 이해를 못합니다. 역사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대학강단에서 교수라고 하는 사람들도 잘 이해를 못하는데, 어찌 속물이나 어중이 떠중이들 그리고 무식한 자들을 이해시키려 하는지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대로 무식해서 그럼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꾸준히 실력을 쌓으면서 지금처럼 하세요. 아주 잘하고 있어 마음이 흐믓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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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 660년 라당연합군에의해 백제가 패망하고 그땅을 신라가 경영하였으며 신라를 이어받은 나라가 고려이니 광서성의 전주(全州)가 고려 초기의 전주였다는 개연성을 부정하기 어렵지요. 전현(全縣)은 한(漢)나라가 령륙현(零陸縣)이라 했다가 오대시기 진(晉)나라가 '청상(淸湘)'이라 했다가 나중에 '전주'를 둔 곳이며 원나라가 전주를 전주로(全州路)라고 한 곳입니다. 가락국이 있던 절강성에 '신라산'이 있었고 '김해'가 있었으며 호북성 신주(新州)가 고려의 남경유수관이 있었으니 이 지역은 고려가 신라로부터 이어받은 강토임을 어렵지않게 이해할 수 있어요. 광동, 광서, 호북, 호남, 대만, 해남성이 한때는 백제의 영토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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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 한국 대학교 동양사 전공하는 사람들은 24사를 거의 가지고 있고 '백도백과'나 '구글'에 들어가 한자로 '漢書'라고 치면 나올 것입니다만, 지금 나오는 문헌사료들에는 지나인들에게 약간이라도 불리한 내용은 모두 삭제한 것들입니다. 옛 원본을 구하려면 아마 대만에서 구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세계에 깔려있는 '공자학원'이라는 애들이 첩자역할을 하며 특히 역사 지우는 작업을 합니다. 다시말하자면 필자가 어떤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면 공자학원 끄나풀들이 본국에 연락하여 그 내용을 지우거나 바꿔버리는 짓을 합니다. 심각합니다. 공자학원을 몰아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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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 지나 사서를 보면 고구려의 명칭을 13가지로 표기했다. 北扶餘(북부여), 櫜離(고리), 高麗, 櫜麗, 高驪, 句驪, 下句驪, 高句麗, 高句驪, 溝凄(구처), 句余(구여), 貊耳(맥이) 등으로 불렸으며 춘추전국시기를 거치면서 단군조선 제44대 구물단군(425BC) 시기에 단군조선의 국호가 대부여라고 바뀌면서 이때부터 대부여, 북부여, 동부여, 남동부여, 졸본부여, 연나, 환나, 계루, 비류 등 여러 국호가 난립하는 시기에 들어간다. 따라서 국호 변천사 측면에서 볼 때 단군조선 → 대부여 → 북부여로 이어지며 따라서 북부여에 밀려 해부루가 동남쪽으로 내려와 동부여를 세운 것으로 해석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 13가지 명칭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북부여 대신 고구려라 해도 무방하다. 북부여가 고구려의 전신이고 대부여가 북부여의 전신이며 단군조선이 대부여의 전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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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 김현구 선생께 한 말씀 남김니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킨 김재규 의사는 박근혜나 윤석열 같은 정치인들과는 비교될 수 없는 인물로 "닭 도리 탕"이란 패뤼디(Parody) 풍자에서 삭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김재규의사 추모회 회장직을 맏고 있는 사람으로 회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정중히 드리는 말씀임을 양지하시라 믿습니다.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에서 확인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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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 청해성에 있는 천연호수를 청해(靑海)라고도 하고 서해(西海)라고도 하지요. '서쪽의 바다'란 말입니다. 바이칼호는 천해(天海)라고 불렸지요. '하늘의 바다'인가요? 하남성과 산동성 사이의 천연호수를 동해(東海)와 발해(渤海)라고 2,000년 동안 불렸어요. 천연호수인 동해도 도 '동쪽의 바다'이고 '발의 바다' 이네요. 재도권 강단사학자들은 물론 재야사학자란 사람들도 문헌사료들을 읽지않기 때문에 'X인지 됀장인지' 구분 못하지요. 한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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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6. 하하하 4천권이나 5천 정도의 독서로는 아직 요원하지요. 최소한 12만권은 읽어야 합니다. 물론 소설과 서정시집은 제외하구요. 똑같은 종류의 책을 수십만권 읽어도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 반드시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섭렵해야 합니다. 우선 약 3만권 이상을 열심히 읽고 나면 속독하는 기술이 점차 생길 것입니다. 7만권 정도가 넘어가면 속독의 속도가 대단히 빨라지고 10만권을 넘으면 10분 이내에 평균 250쪽짜리 책 한권은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13만권이 넘으면 책표지만 봐도 무슨 소리가 적혀 있는지 알게됩니다. 천리길도 한걸음 부터라고 했어요. 절대 겁먹지 마시고 꾸준히 하세요. 거북이처럼 느리게 해도 좋아요. 필자가 그토록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었던 것은 오직 책읽는 것이 취미였기 때문이지요. 자화자찬같이 들리시겠지만 아마 인류의 역사이래 필자가 책을 제일 많이 읽은 것으로 보입니다. 10만권 읽었다는 사람이 있었어요. 끝으로 책읽기에 취미를 가지게되면 사긴이 단축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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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7. 역사는 사료검토로부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수만권의 책을 읽었으나 한반도에 신라나 백제가 있었다는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보지못했어요. 허구의 소설입니다.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지구가 편편하다"고 믿고 있는 무식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믿음(belief)과 진실(truth)은 다름니다. 믿음은 종교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진실은 과학입니다. 진실인 진리는 하나밖에 없어요. 둘일 수 없습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것은 진실이며 진리이지만 태양이 지구를 공전한다는 주장은 허구이며 믿음이지요. 이와같이 한반도에 신라와 백제가 있었다는 생각은 허구의 믿음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망하고 그 유민들이 한반도에 정착하면서 옛 추억을 못잊어 만들어낸 소설입니다. 역사와 소설은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혼동하면 안됩니다. 따라서 비록 실제 역사적인 인물이나 지리지명이 거론된 역사소설같은 곳에서 이야기한 내용은 절대 인용하면 안됩니다. 반드시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찾아 고증해야 합니다. 역사학자가 지켜야할 법칙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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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8. 미국 대학에 개설되어있는 전공학과는 약 18,000개에 이릅니다. 전공마다 그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분류하고 있어요. 고고학은 역사가 아닙니다. 고고학은 인류학의 한 분야로 영국의 고고학자 데이뷛 호가쓰(David G. Hogarth: 1862-1927)는 "인류의 과거의 물질적 유물을 취급하는 과학"이라고 정의했어요. 그런데 이병도의 제자인 김원룡(1922-1993)이 기발한 고고학의 정의를 했어요 "인류가 생활의 증거로 남긴 일체의 유적, 유물을 발굴, 수집, 관찰하여 그것을 통해서 인류의 역사, 문화, 생활방법 등을 연구, 복원, 해석하는 학문"이라고 비약을 했어요. "인류의 역사"란 말을 함부로 그의 고고학 정의 속에 포함시키는 큰 우를 범했어요. 지나친 논리의 비약입니다. 김원룡의 고고학 정의는 잘못된 것이지요.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기록된 장소에서 발굴된 유물과 유적이라면 당연히 역사적 사실을 확인시켜줄 수 있는 보조 역할을 하겠지요. 그러나 문헌사료에 기술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한 두가자 발견된 유물은 설들력이 없지요. 그런 이유로 필자는 고고학은 인류의 이동사라고 말합니다. 기회가 되면 고고학과 역사학의 차이점을 게제할 것입니다. 고분이 어느 시대 어느 왕조인지는 고고학 좋아하는 학도들이 연대측정하면 밝혀지겠지요. 과학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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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 그렇습니다. 정확한 고구려의 위치를 밝히면 백제 신라의 위치도 확인될 수 있어요. 고구려 남쪽에 백제와 신라가 있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되지만 문헌사료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각각의 위치를 밝힐 수 있는 천연적인 지리지명들이 나옵니다. 지리지명을 추적할 때는 항상 강, 하천, 산, 산맥에 중점을 두고 찾아야 합니다. 강이나 산을 옮기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도깨비에서 빨리 탈피하세요. 제(濟)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반도에 마한이 있었다고 처음 주장한 사람은 이조후기 한백겸입니다. 이같은 엉터리는 안정복을 거쳐 정약용 등 실학자들로 이어 지지요. 지나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고 강단사학자도 아니예요. 이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천하를 통일(?)했다는 진시황이 마한 사람이라면 믿으시겠나요? 그리고 진시황이 김씨였다면 역시 믿으실 건가요? 역사의 대가가 되려면 오직 여러 종류의 책을 읽고 교차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멈춤없이 많은 책을 읽어야 합니다. 책을 읽지않은 사학자들은 별볼일 없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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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 한민족이 모르는 역사
    우리는 "국가를 나라라고 불렀고"
    나라는 "조선"이다.
    한조선, 주조선으로 표기했다. 한조. 주조......
    이것이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 한민족의 역사인것이다.

    답:한조선이니 주조선이니 하는 단어들은 역사적인 용어가 아닌것 같네요. 조선(朝鮮)의 이름은 다음과 같아요. 왕검이 세운 단군조선(일명 예맥조선), 위만이 세운 위만조선, 이성계가 세운 이씨조선, 김일성이 세운 북조선 등이지요. 기자조선은 역사적 사실이 아님으로 적지않았구요. 조선이란 국호가 다양하기 때문에 반드시 조선 앞에 나라를 세운 사람이 이름을 명시하는 것이 분명하게 조선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따라서 고조선(古朝鮮)이란 명칭도 크게 잘못된 것이지요.

    같은 의미로 환웅조선 환인조선 이라 이름해도 될까요?
    혹시 朝代名을 다시 해석해주시겠어요?

    답: 한인과 한웅에 조선이라 절대 안됩니다. 조선이란 단어는 BC2333년 왕검 이후에 만들어진 단어로 왕검 이전에는 사용하면 논리성이 없어요. 필자가 가끔 대답을 피하는 이유는 고인이된 분을 욕되게 하고싶은 생각이 없어서 입니다. 대답을 하다보면 비평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만 알려드리지요. 朝代란 '왕조의 년(연)대'를 뜻합니다. 그리고 역사상 조선을 지칭할 때는 '朝鮮'이라 하며 '朝'라고 한글자로 표현하지 않아요. "조선왕 위민이"등으로 말하지 '朝왕 위만이'라고 하지않아요. 이중재의 주장대로 "조선을 대신한 이름"이 아닙니다. 그런 논리라면 지나의 모든 왕조는 조선이 됩니다. 그들에게 물어보세요 한, 당 수, 송, 명이 단군조선을 대신한 왕조인지를요.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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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 식민반도 강단사학자들이나 재야사학을 한다는 사람들 모두 문헌사료들을 읽지않고 왜곡되어 전해 내려온 허구를 마치 가보(家寶)인냥 앵무세처럼 재잘거리고, 공부도 하지않으며 연구를 하지않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평생을 연구하여 역사적 사실을 고증한 필자의 연구성과를 '황당하다니', '견강부회하다니', '너무나 서쪽으로 내려 갔다'느니 지껄이는 무식한 사람들의 주접에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낌니다. 자격 미달인 자들의 논평의 황당함에 더욱 황당하군요. 어떻게 알았는지 필자의 이메일로 '모 학회학술지'에서 논문을 소개해 달라고 하여 필자는 다음과 같은 대답으로 일갈한바 있어요. "한국의 7천만 아니 세계 70억 인구 중에서 필자의 논문을 심사할 수있는 실력이나 능력이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으니 필자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이같은 수고는 하지 않길 바람니다"라고 했지요. 그런데도 자꾸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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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 질문:
    현 산서성 남부 하남성 북부(河內)가 史書에 단군조선 기주 유주 영주 고죽국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4군 고구려 였다면 堯나 舜은 단군조선(BC 2333년~BC238년)의 제후국이었다는 거지요? 요나 순이 다스리던 시절을 태평성대라 격양가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곳이 하남성 어디일까요? 대청광여도에는 산서성 남부에 있다하던데요....

    답:
    단군조선은 동이 9족을 모두 통합한 제국이었으니 당연히 왕검이 세운 단군조선의 제후국들이었지요. 태평성대는 왜곡이고 요,순,우의 선양도 왜곡입니다. 문헌사료들을 많이 읽어보면 자연스럽게 답이 나옵니다. 대청광여도도 여러곳이 왜곡되어 있어요. 그대로 모두 믿으면 안됩니다. 교차확인 하세요. 하남성 어디이냐? 요임금을 이은 왕조가 순임금이고 순임금을 이은 사람이 우(禹)로 우가 홍수로 근심 걱정하다가 단군조선(예맥조선)의 태자 부루에게서 치수법을 배워 치수에 성공하여 하(夏)를 세웠으니 하나라 도읍지를 찾으면 모든 해답은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하를 세운 우임금의 도읍지는 하남성 개봉(開封))이지요. 현대지도를 보면 개봉이란 지명이 두곳에 나타난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큰 글씨로 표시된 개봉(좌측)과 작은 글씨로 표기된 개봉(우측 남쪽)이 있어요. 필자는 작은 글씨로 표시된 개봉이 요, 순, 우의 도읍지라고 믿습니다. 지나인들은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요, 순, 우의 도읍지를 모두 산서성에 표시하였으나 이같은 왜곡은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고증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량이 결정합니다. 계속 중단없이 모든 책을 읽으세요. 이같은 주장의 근거는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제1단, 쪽689; 제3단, 쪽654; 제2단, 쪽654를 참고하세요. (2021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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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 질문:
    중국 사람들은 상투를 틀지 않았잖아요. 구당사나 신당사에는 동이족은 쌍그풀이 없고 며느리발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는데...제가 직접 그 책을 읽은 것은 아니고요....
    진시황릉이라고 주장하는 병마용이 모두 상투를 틀고 있고 쌍끄풀이 없습니다. 이건 중국 책에서도 나오는 말입니다. 서안엘 안가봐서 모르겠지만 병마용에 쌍끄풀이 있는 사진은 본적이 없습니다. 있다면 어느 호텔 로비에 세워진 가짜 병마용은 쌍끄풀이 있는데 중국잡지에선 진짜 병마용은 쌍끄풀이 없다면서 그 호텔은 모방을 해도 완전 고증을 안하고 모방을 했다고 기사화한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래서 인지 요즘 중국의 일각에서 진시황릉이 진나라 시 황제의 것이 아닐 것이란 주장도 있다고 합니다. 저는 조그 다른 생각입니다. 진나라 자체가 우리 동이의 나라이기 때문에 모두 상투를 틀고 있었던건 아닐까요? 황릉도 진시황의 릉이고요. 선생님은 떠 다른 생각을 가지신 듯하여 여쭈어 봅니다.

    답:
    황하이북의 북방계는 쌍꺼풀이 없고 장강이남 사람들은 남방계로 쌍꺼풀이 있어요. 상투는 북방계의 특징입니다. 진(秦)나라는 마한(馬韓) 지역에 있었던 나라이니 당연히 마한의 한개의 나라였고 진시황은 마한 사람입니다. 진시황의 성은 김씨(金氏)입니다. 따라서 병마용은 북방계의 마한 사람들 즉 漢나라 시기 흉노라고 부르던 사람들의 모양일터이니 당연히 쌍꺼풀이 있으면 안되고 머리를 뒤로묶어 상투를 틀어야 합니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진실(眞實)은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동이배달한민족의 한 지류이지요. 논평 고맙습니다. (2021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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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4.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며 설득력 있는 사고(思考)를 해야 하는데 대한민국의 교육은 학교에서 그러한 논리적인 사고를 가르치지 않아요. 미국에서는 심지어 중학교 입학시험에 논리적인 판단력(Logical Reasoning)을 출제합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법대를 가려면 LSAT라는 시험을 치루는데 이 시험에 상당한 부분이 논리적인 판단력을 시험하는 것이지요. 미국에서는 변호사가 되려면 최소한 7년을 공부합니다. 그리고 판사가 되려면 오랜 경험과 추천에 의해 임명되는 것이 일반이지요. 그런데 한국의 경우(법전문대학원이 생기기 전 지금의 판, 검사들)는 4년제 법대만 나오면 판사, 검사를 했어요.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학교에서 논리학도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말입니다. 그러니 판검사의 판결과 검사의 수사 기소등이 한마디로 x판 오분전입니다. 이성(理性)이 없이 전적인 감정(感情)으로 법을 다룹니다. 무식하게 말하자면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자들이 판검사를 한다는 뜻입니다. 필자는 40년전에 한국의 법대제도가 잘못되었으며 반드시 미국식으로 최소한 7년을 공부시킨 다음에 법조인을 배출해야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결국 현실화 되었어요. 허허허, 40년을 앞서 본 선각인 셈이지요. 그만 자화자찬처럼 되고 말았네요. 대한민국 대학에서 동양사나 한국사를 가르치는 교수라는 친구들 실력이 없어요. 모두 xx정도 수준입니다. 한반도에 백제가 있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없는 허구이며, 한반도 충청도에서 대륙 섬서성 서안까지의 거리와 수많은 강과 산을 고려하여 조금만 생각하면 그같은 어리석은 주장은 나올 수가 없어요. 그러나 논리학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논리적인 생각보다는 '손오공이 하늘을 날으는' 따위의 소설에 더 감동을 받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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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 율곤도 역사학자는 아니였어요. "꿈틀거리면" 되요. 자신을 가지세요. 필자와 율곤은 서로 직접 대면한 적은 없었으나 4-5년 동안 수차례 국제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였고 그는 훌륭한 분이였어요. 아마도 당시 율곤에게 '기자조선의 허구'를 혹독하게 비판한 사람은 유일하게 필자였을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한국에서 공부한 전공이라면 차라리 비전공자가 더 나을 수도 있어요. 필자가 미국에서 한국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한국에서 영문과를 전공한 사람과 영어교육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가르쳐 보았는데, 영문학과가 더 인기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영문과 출신이 영어교육과 출신보다 영어실력은 훨씬 뒤진 것을 알았어요. 전공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해야겠다는 의지가 더 중요합니다. 얼마든지 하실 수 있으니 중단하지 마세요. ‘사근경-역사는 모든 학문의 뿌리’를 처음부터 또박또박 읽으세요. 여러분야의 학문과 동서양의 중요한 역사기록을 모은 진리의 글인 경(經)이 될 것입니다. 도(道)를 얻는 일은 반드시 학문에 있어요. 책을 많이 읽어 박학다식해야 합니다. ‘사근경’에 다양한 분야의 내용 들을 적어두었으니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역사, 건강, 우주의 비밀, 정치, 철학, 주역, 사주보는 법, 고사성어까지 모아 두었으니 좋은 참고서가 될 것입니다. 완전하게 이해하고 깨달을 때까지 외우면서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노자는 진리의 글 1만권의 책을 읽고 도를 얻었다고 하지요. 도를 얻으면 반드시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렇지 않을 시는 아직 도를 즉 학문을 다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음식에 대한 식탐이 사라집니다. 하루 한 두끼만 먹어도 배부름을 느끼게 되고. 둘째, 성생활이 지저분한 행위임을 깨닫게 되고 셋째, 재물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며 넷재, 명예를 얻고 싶은 마음에서 초연해지고 다섯째, 자신의 몸에 나타나는 모든 질병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지요. 물론 기능적인 것 즉 이빨에 대한 문제나 심장 판막에 관한 문제는 기계적인 것이라 고칠 수 없으니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빨과 심장 판막 문제 이외의 어떤 질병도 스스로 고칠 수 있는 경지에 이릅니다. 이것을 도통이라 하며 도를 통하고 나면 삶에 두려움이 없고 언제나 당당하며 절대 비굴하지 않아요. 어떤 권력앞에서도 당당하게 됩니다. 우주의 법칙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자연과 벗하며 유유자적하게 됩니다. 필자는 거의 다 이루었는데 한가지 아쉬운 점은 지금까지 제자(弟子)를 얻지 못한 점입니다. 한인(桓因) 역시 제자를 길렀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네요.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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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6. 김현익 ‘이승만 평가’에 대한 김선생의 댓글에 대한 논평으로 존칭은 생략한다.

    댓글: 그래도 김일성 보다는 훌륭하신듯합니다.
    주체탑 인사드리는 것은
    사람으로 못하실 일인듯합니다.
    참고로
    오스트리아는 10년 4국 점령후
    자유총선으로 칼레너 수상을 선출
    독립민족국가 수립하였습니다.
    부럽지요.

    논평: 우선 필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 개인을 평가한 것으로 김일성과 이승만을 비교한 것이 아니다. 또한 오스트리아와 대한민국의 사정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비교할 때는 똑같은 사물과 사건을 비교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사과는 사과와 비교해야 하고’ ‘귤은 귤과 비교해야’ 한다. 사과와 귤을 비교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1945년 4월 27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오스트리아는 미국, 영국, 소련, 그리고 영국의 통치하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10년 후인 1955년 5월 15일 독립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가지 중대한 사실을 간과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오스트리아는 전쟁에 참전한 책임이 있었고 독일의 히틀러 편을 들었던 나라(Austria had a responsibility for participation in the war and the side of Hitlerite Germany)”라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즉시 독립을 시키지 않고 10년간 공동으로 관리한 것이다. 바로 적국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대한제국은 36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로 오스트리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고 오스트리아처럼 대한제국은 영국, 프랑스, 미국, 그리고 소련에 대항하여 전쟁에 참가한 적국도 아니다.

    오스트리아 대통령인 칼 레너(Karl Renner(1870-1950)는 1945년 12월 20일에 대통령이 되어 1950년 12월 31일에 직을 물러난 사람이며 1955년 독립 후에 대통령이 된 사람이 아니다. 칼 레너는 이승만의 과(過)와 같은 요소들을 가진 사람이 아니므로 전혀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승만을 옹호하려다 보니 이같은 앞뒤가 상충되는 댓글이 나온 것으로 추측되지만 역사적 사실은 변명한다고 해서 진실이 소멸되지 않는다. 역사의 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질곡의 역사로부터 값진 교훈을 얻어 다시는 그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후세들의 투철한 자세가 역사를 기록하고 배워야 하는 큰 의의가 되는 것이다. (2021년 7월 18일)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dmf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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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7.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모든 사건을 기록하는 것"으로 물론 장점과 단점이 병존하지요. 장점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장점이 아닙니다. 장점도 경중(輕重)이 있지요, 즉 중요한 장점이 있고 하찮은 장점이 있습니다. 단점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과 중요치 않은 단점이 있어요. 중요한 장단점을 비교해서 평가하는 것이 역사학자의 사명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드리지요. 김삿갓으로 잘 알려진 김병연이란 당시의 천제로 알려진 인물이 있었어요. 수많은 풍자시와 생육신으로도 알려져 주인없는 시신들도 장사지내준 사람입니다. 신안동김씨의 김삿갓이 왜 그런 방랑생활을 하지않으면 안되었던가가 역사학자의 예리한 평가입니다. 그는 바로 가족의 역사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홍경래난이 일어나자 선천부사겸 방어사라는 엄청난 직책을 맡은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임을 알지못한 불행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825년 강원도 영월군 동헌인 관풍헌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김익순을 반역자로 신랄하게 비판하며 조롱한 글을 지어 장원을 했지요. 이같은 장원은 장점이 아니예요. 김병연은 어머니로부터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임을 알게됩니다. 그의 불행은 이렇게 시작되었지요. 김삿갓이 남긴 생육신이라는 명칭이나 수많은 시나, 천재라는 칭호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점이며 자신의 족보를 알지 못해 평생을 방랑하면서 세상을 등진 사건이 역사학자에게는 커다란 단점으로 부각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김대중은 장점도 많았지만 그 장점은 하찮은 장점이며 단점이 더 크게 나타난 사람이 되고 말았어요. 노벨평화상은 그의 단점을 상쇄시킬만큼 큰 장점도 못되구요. 진솔한 논평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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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8. 훌륭한 논평입니다. 필자보다 더 잘 알고 있겠지만 용서는 잘못을 시인하는 절차가 먼저이고 화합은 동화(同化)를 할 의지가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 영어 어휘는 약 2백만 개 입니다. 그런데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Reason이예요. 이유, 동기, 도리, 이성, 지성, 추리력, 판단력, 본정신, 지각, 분별, 상식, 논거, 전제의 뜻을 같는 단어이지요. Reason이란 말이 곧 문예부흥을 일으켰어요. 그리고 깨닮음도 Reason을 통해서만 가능하지요. 대한민국의 정치하는 친구들이 제발 Reason를 갖추는 사람이 되었으면 바랍니다. 동물적인 감정을 벗어나 인간적인 이성(Reason)이 곧 세상을 바꾸는 길이며 적폐를 청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예요. 지나친 욕심에서 한걸음씩 물러나 남을 고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빈손으로 홀로와서 홀로 살다가 빈손으로 홀로 가는 것이 인생인데 왜 이토록 시끄러운 대한민국인지! 한평생 친구들 아무리 많고 정당 동지들 아무리 많아도 돌아갈 때는 홀로 쓸쓸히 간다는 진리를 깨달았으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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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 하나의 젖은 낙엽이 팔만대장경 보다 더 큰 영향을 발휘할 때도 있습니다. 배호의 "마지막 잎새"는 덫없는 인생살이에서 발버둥치다 결국 대단한 것처럼 여겨온 인간능력의 한계를 느끼면서, 우주의 법칙에 순응해야 하는 좋은 교훈을 줍니다. 댓글 멋있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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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 Hyungjoon Park의 댓글에 대한 논평이다.
    댓글:
    한민족 역사에 무지한 자를 뽑지말라면서, 이조 라는 일제가 만든 식민잔재 용어를 쓰는 모순적인 글.
    조선 왕조를 두둔하고 싶지 않지만 스스로 왜놈들이 만들어 놓은 침략의 당위성에 동조하는 것 아닌가?
    조선 후기, 조선이 망한 가장 큰 이유중 하나가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에 의한 외척들 세도 정치로 인하여,
    정조와 효명세자에의한 개혁정치가 무산 되었으니, 전주 이씨 제외 논리라면 그 두 가문도 제외해야 하나?
    연좌제가 폐지 된지가 언제인데 무슨 해괴한 논리인지? 국민을 섬기고 받들 수 있는자! 국익을 위해서라면 나와 의견이 달라도 경청하며, 머리도 숙일줄 아는 대통령이 필요할뿐.
    논평:
    하나는 알지만 그 다음은 모르는군요. 역사상 조선(朝鮮)이란 이름은 수없이 많아요. 열거해보지요; 왕검조선, 단군조선, 진조선, 막조선, 변조선, 기자조선(기자조선은 없었음), 위만조선, 이씨조선, 북조선 등등이지요.
    이들 조선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국이나 시작했던 사람의 이름을 붙여야 구분이 되는 법. 왕검이 세운 조선이니 왕검조선이고, 기자가 세웠다 하니 기자조선이며, 위만이 시작한 것이니 위만조선,
    이성계가 세운 조선이니 이씨조선(혹은 이성계 조선), 김일성이 세운 나라이니 김씨조선(혹은 김일성 조선)으로 명칭해야 명확하게 조선이 구분되는 것임을 알지 못한, 아직은 한참 역사의 기본부터 공부해야되겠군요.
    필자의 논문을 읽고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무료로 읽을 수 있게 www.coreanhistory.com 에 게제 해 두었으니 참고하시길.
    대한민국의 역사학회라는 곳에서 교수니 박사니 하는 무식한 친구들의 엉터리 논문들은 상당한 돈을 지불해야만 볼 수 있어요. 적게는 3천원에서 7-8천원까지 지불해야 볼수 있지요. 필자는 누구든지 읽을 수 있게 공짜로 게제했으니 읽어보시고 의문 사항이 있을 때는 질문하세요.
    연좌제가 폐지되기는 하였으나 유전인자(DNA)는 유전이 된다는 생물학에는 조예가 없으시네요. 속된 말로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 하는데 이는 곧 한번 역적은 영원한 역적이다라는 논리와 일맥상통하지요. 그래서 옛날에는 3족을 멸했음.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경청하며 머리도 숙일 줄 아는 대통령" 이었나요? 안동김씨와 풍양조씨는 이씨조선의 왕이 아니였음도 함께 지적함. (2021년 7월 25일 8:4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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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 이정길씨의 댓글에 대한 논평:

    학문(學問)이란 실사구시(實社求是)로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말하며 비록 타인의 연구라 하나 진리가 아닌 연구는 쓰레기이니 존중할 필요가 없지요. 쓰레기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활용이 가능한 쓰레기(wastes)와 부엌쓰레기 같은 쓰레기(trash)가 있으나 쓰레기인 것은 마찬가지. 시시껄렁한 건국이니 임시정부니 이념논쟁 따위는 시간낭비이며 상일련지일확지미(嘗一臠知一鑊之味)라 가마솥 속의 고기 한 점을 맛보면 그 속의 것의 맛 전체를 알 수 있듯이 곧 한 부분으로 미루어 전체를 알 수 있으니 이상으로 이선생에 대한 논평을 끝냅니다. 건승을 빕니다. (2021년 7월 27일 7:2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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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 새로운 세계질서(new world order)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이 바로 독일의 히틀러였어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식민제국주의 자들은 새로운 질서의 패권을 잡기위해 혈안이 되어 있지요. 미국이 바로 그렇지요. 곧 닥아올 세계질서는 전체사회주의로 수정공산주의가 됩니다. 즉 일정한 범위로 사유재산을 통제하는 그런 형태이지요. 지금같은 통제없는 사유재산제도하에서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이룩할 수 없어요. 어느정도 세계 인구를 통제할 수 있게되면 화폐는 사라집니다. 빨갱이니 종북이니 지껄이는 자들은 x인지 된장인지를 구분 못해요. 자유 자본 민주주의 국가라는 정부에서 국민들에게 각종 사회복지해택을 주는 것이 바로 사회주의 원리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때 빨갱이 아닌 나라가 없어요. 사회보장제도가 잘된 서구의 모든 나라들이 빨갱이 인것은 마찬가지이니. 별애 때문에 검찰, 판사, 대기업 같은 집단이기주의자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가식과 위선이 바로 별애의 속성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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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3. 김양희의 댓글에 대한 논평이다.

    실례지만 문헌사료를 몇권이나 읽으셨나요? 조선왕조실록이 1,893권이고 25사가 4,022권이며, 청나라 건륭시기 만들어진 ‘사고전서’에 80,000권의 문헌이 기록되어 있어요. 어느책을 몇권 읽었는지를 먼저 밝히면 25사가 전부 날조가 이니고 ‘고려사’가 모두 왜곡이 아니라는 것을 조목조목 낱낱이 근거로 제시하리다. 물론 한사군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필자가 지금 왜곡된 한사군을 밝히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한사군 대신 한오군(漢五郡)이 실존했지요. 1차사료와 문헌자료들을 읽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렇다 저렇다 단정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입니다. 한반도로 모든 고대사의 지리지명을 끌여들인 사람은 일제식민도 아니고 이병도도 아니예요. 바로 이씨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이라는 사실을 아시는지? 실학자 한백겸, 안정복, 정극후, 유형원, 허목, 정약용, 박지원, 이익, 신경준, 한진서, 성해응, 한치윤, 한진서, 홍석주, 홍경모, 홍여하, 임상덕, 이원익 등이니 먼저 이들의 역사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21년 7월 27일 7:1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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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4. 역사학을 공부하고 연구할 때 가장 중요한 기본 원칙이 있어요. 시대구분(periodization)에 따라 사료를 분석해야합니다. 다시말하자면 ‘청사’나 ‘명사’가 ‘사기’나 ‘한서’를 뒤집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는 마치 손자(孫子)가 조부(祖父)를 부정할 수 없는 이치와 같아요. 따라서 항시 사건이 발생한 연대부터 추적해 아래로 내려오는 방법으로 고찰해야 합니다. 신라가 진(秦)의 후예가 아니라 진나라의 왕 정(政)이 마한 사람이고 마한지역이 섬서성, 감숙성 지역이었지요. 산서성에 있던 단군조선의 진한이 망하자 단군조선의 유민들이 '천축'이란 이름으로 황하를 건너 요서인 섬서성, 감숙성, 청해성 등지로 피난한 것이지요. 물론 단군조선 이전에도 감숙성, 섬서성에 흉노라고 알려진 소호김천의 후예들이 살고 있었지요. 단군조선 유민이야기는 ‘산해경’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동이배달한민족사’개정증보‘ 2019, 쪽519 참고. 거란은 요(916-1125)나라를 세운 야율아보기에 의해서 생긴 명칭으로 송나라(960-1279) 시기에 부르던 이름이며 신라 시기에는 거란(글안)이란 족속 구분은 없었어요. 신라의 금성(金城)은 처음에 감숙성 난주에 있었고 두번째는 산서성 임분시 평양에 있었고 세번째는 강소성에 있었는데 연수현일 수도 있으나 연수현에는 금성이란 지명이 없어요. 강소성에 있는 원래 금성은 금릉(金陵)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곳이며 지금의 강령현(江寧縣)이고 동진(317-420) 때 이곳을 금성(金城)이라 했으니 이곳이 신라의 금성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필자는 강소성 금성을 이곳 금릉의 금성이라 주장합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4째 아들에게 금령김씨(김녕김씨)를 세웠는데, 금성(금릉)의 동북쪽에 있는 오늘날의 단도현(丹徒縣)이 옛 금릉으로 현대 대륙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요. 당나라 시기에 단도현을 금릉이라 했다하니 전후맥락이 잘 맞춰지는 군요.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제3단, 쪽 544 참고. 신라가 산서성 임분 평양의 금성에서 강소성 금성으로 옮긴 것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으나 필자가 여러 문헌사료들을 교차확인해본 결과 신라 4대 탈해이사금 시기로 보입니다. 신라는 백제와 달리 245년까지 고구려와 전쟁을 하지 않았어요. 참고로 신라라는 국호는 22대 지증왕 4년(503) 입니다. 신라와 당이 연합하여 백제나 고구려를 침공할 때의 신라는 당연히 강소성과 절강성이 핵심영토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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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5. 댓글:
    조심하겠습니다...^^
    율곤님의 새고려사를 보다가 의문점 하나 있어서요. 전촉이 후당에게 망했다는데 (당 숙종의 아들이고 전촉과 동시대 사람이라서) 전촉의 왕건이 그 후광으로 서안에 도읍해서 지나를 통일헸다고 합니다. 전에 선생님이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왕망이 大說하여 고구려를 하구려 제후라고 칭했다는 구절에서 說을 기쁠열로 해석하는게 기존 식민사학자의 해석인데 율곤님은 설명하다로 해석....어느 쪽이 바른 해석일까요?

    논평:
    후당은 923년에서 936년 13년동안 하남성 낙양에 도읍한 나라로 이존욱(李存勖)이 세운 나라이며 왕씨도 아니고 후당때는 오대시기로 후량, 하당, 후진, 후한, 후주가 할거할 때이며 후당이후에는 십국(十國)으로 접어들었는데 어떻게 통일이 되나요. 10국 와중에 조광윤이 통일을하여 하남성 개봉에 북송을 세움니다. 서안은 당나라의 도성으로 907년 당이 망하면서 그 이후로는 서안에 도읍지를 정한 지나의 나라는 없어요. 이중재의 책을 읽을 때는 그대로 믿으시면 안되요. 자주 엉뚱한 소리를 하면서 논리의 비약이 너무 심해요. 이런 책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하세요.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전혀 근거없는 소리입니다. 촉의 왕건과 고려의 왕건은 전혀 다른 동명이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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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6. 박완규 선생의 댓글에 대한 논평

    댓글: 존 로크가 했다는 말의 원천이 알고 싶어요? 칸트는 로크가 죽고 이십년 후에 탄생한 사람인데, 로크가 어찌 칸트를 알아 얘기를 할까 의심이 나서요

    논평: 금년 연세가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왕검, 석가, 노자, 장자, 맹자, 예수 등을 직접보지 못하였으니 알지 못하시겠군요. 인간이 아는 방법은 1, 직관지, 2, 추리지, 3, 비교지, 4, 성언지, 5, 지혜지를 통해서 아는 것이며 기록인 역사를 통해서 아는 것임을 어찌 모르시는 지요. 의심하는 것은 나쁘지 않으나 그 의심의 저의가 진리(眞理)를 탐구하려는 의도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군요. 출처를 알려드리지요. Vere Chappell,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Locke,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p.29. 에 적혀 있으니 직접 읽어보시고 의심을 푸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대한민국의 어리석은 학자들과는 달라 근거없는 헛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2021년 8월 11일(수) 6:3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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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7. 우리의 역사에 대한 훌륭한 접근입니다.
    동이배달한민족사는 어디서 구입할 수 있나요 ? 인터넷서점에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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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 논평: 만약 무식한 윤석열이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 대한민국의 정계뿐만 아니라 학계와 재계는 완전히 무당과 점쟁이 그리고 돌팔이 땡중들의 소굴이 될 것이다.

    윤석열은 파평윤씨로 시조는 윤신달(尹莘達)이며 고려조 사람이라 한다. 신라 51대 진성여왕 7년(893) 파평산(坡平山) 아래 큰 연못에서 윤온(尹媼)이란 노파가 옥함이 있어 열어보니 기이한 사내가 있어 자신의 성씨인 윤(尹)을 붙여 파평산 밑의 못에서 나왔다 하여 본관을 파평으로 했다.

    시조의 묘소가 경북 영일군에 있다고 하나 이는 잘못이다. 신라는 대륙 강소성에서 망한 나라로 한반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파산(坡山)이 호북성에 있다. 호북성은 신라의 영토였으므로 필자는 이 파산이 파평산이 아닌가 한다.

    윤석열의 생년월일은 1960년 12월 18일(60)로 알고 있다. 경자(庚子) 생이다. 그의 운명은 벽상토(壁上土)로 “벽위에 있는 흙”이라는 의미이다. 흙은 땅에 있어야지 벽에 있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래서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철저한 이기주의란 뜻이 내포되어 있다.

    독선적이며 이기적인 성격으로 인하여 대인관계는 항시 충돌을 피할 수 없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며 성실하지 못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신뢰감을 주지 못한다. 오직 지나친 이기심과 배신(背信)과 역심(逆心)의 성정을 지닌 사람으로 1910년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경술구적(庚戌九賊)의 한 사람인 제2의 윤덕영이 될까 염려된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다면 1만년 동이배달한민족사의 가장 큰 비극이 될 것이다. 그러나 3천 5백만에 가까운 한국에 살고있는 일본인들이 그를 지지한다면 그의 당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윤석열의 운은 소과둔(小過屯)이다. 하고 싶지만 능력이 안되고 힘에 벅차다. 큰일은 무리이니 이쯤에서 그만 멈춰라.

    한편 이재명(李在明)에 대해 알아보자. 이재명은 경주이씨다. 신라초기 알천(閼川) 양산촌의 촌장인 알평(謁平)을 시조로 하고 진골 출신인 소판공 이거명(李居明)을 중시조로 한다. 경주이씨 중시조의 이거명과 이재명이 비슷한 이름을 가져 특이하다.

    문헌사료에 기록된 경주(慶州)는 섬서성의 경주, 고려의 개경(開京)으로 황하북부 하남성의 복양(濮陽)의 경주, 그리고 요녕성 지금의 요양(遼陽)의 경주 3곳으로 당시의 경주는 복양이다. 한반도 경상도의 경주가 아니다.

    이재명은 1964년 12월 22일 출생으로 알고 있다. 갑진(甲辰) 생이다. 그의 운명은 복등화(覆燈火)로 엎어진 불이다. 실패와 좌절이 매우 심하여 인생의 비애를 느끼는 숙명을 지녔으며 성격이 격하기는 하지만 이미 57년 동안 뼈아픈 시련을 겪은 사람이다.

    환항임(渙恒任)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즉 얽히고설킨 문제들이 눈 녹듯 풀리니 서둘지 말고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임하면 된다. 믿을만한 경호원들이나 잘 관리하기 바라며 대통령이 되거든 동이배달한민족사에 애정어린 관심을 갖고 제도권식민반도사학을 깨끗이 청소하기 바란다. 출처: 김태영, 『史根經 II』 2022년 여름 출판 예정. 제2020항.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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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9. 이 일을 어쩌지요? 정치하는 자들은 모두 불학무식한 사람들이라서 모두 싫지만 그래도 조금 덜 "불학무식한 사람"이 나왔으면 합니다. 페뤄클리스(Pericles)는 "정치가는 해야할 일을 알아야 하고 그 일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자기 나라를 사랑하고 타락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어요. 여기서의 타락이란 사기쳐서 돈먹지말라는 의미입니다. 페러클리스는 평생 어떤 사적인 재산도 없는 청렴결백한 사람이었지요. 아마도 그리스가 자랑하는 가장 위대한 정치가이며, 필자도 페뤄클리스의 행위를 아주 높이 평가합니다. 그런데 이번 두 대통령 후보가 서로 극명하게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어요. 하여 필자는 페뤄클리스의 사상과 같은 생각으로 살아온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며 대세는 그렇게 진행되고 있어요. 너무 개의치 마세요 예쁜 역사학도님!
    11/20/2012(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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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0. 논평: 윤석열 대 이재명
    이 일을 어쩌지요? 정치하는 자들은 모두 불학무식한 사람들이라서 모두 싫지만 그래도 조금 덜 "불학무식한 사람"이 나왔으면 합니다. 페뤄클리스(Pericles)는 "정치가는 해야할 일을 알아야 하고 그 일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자기 나라를 사랑하고 타락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어요. 여기서의 타락이란 사기쳐서 돈먹지말라는 의미입니다. 페러클리스는 평생 어떤 사적인 재산도 없는 청렴결백한 사람이었지요. 아마도 그리스가 자랑하는 가장 위대한 정치가이며, 필자도 페뤄클리스의 행위를 아주 높이 평가합니다. 그런데 이번 두 대통령 후보가 서로 극명하게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어요. 하여 필자는 페뤄클리스의 사상과 같은 생각으로 살아온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며 대세는 그렇게 진행되고 있어요. 너무 개의치 마세요 예쁜 역사학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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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 한창목 선생의 댓글에 대한 논평:
    대한민국에는 최소한 2천만명에서 줄잡아 3천5백만명의 토착일본인(土着日本人)들이 살고 있다. 의 기록을 보면 1594년 8월 2일에 벌써 조선군[이씨조선군]에 항복한 왜군이 “수백명”이라고 적고 있다. 당시 왜군 1,000명이 항복했다고 전한다. 가등청정(加籐淸正: 가토기오마사)이 이끌고 온 군사가 모두 22,000명이었으며 그의 우선봉장 사야카(沙也可: 1571-1642)가 항복 귀화하여 김해김씨의 성을 하사받아 자손을 크게 번성하여 살고 있다. 이들 일본인들은 성씨로써는 구분할 수 없다. “열매로써 나무를 식별할 수 있듯이” 그들의 말과 사상과 행동으로 식별이 가능하다. 필자는 김녕김씨 종손(宗孫)이다. 그런데 김녕김씨 중에서 xxx파의 자손이라고 하는 자들의 약 97%는 가짜로 일본 토착인들이다. 조상이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으니 환부역조(換父易祖)라, 즉 자손이 없는 양반의 집을 이어 자기의 조상을 만들어 바꾼 것이다. 따라서 김씨, 이씨, 박씨, 나씨, 곽씨, 윤씨, 여씨, 장씨, 방씨, 홍씨 등등의 성씨로는 구별이 불가능하다. 이들 토착일본들의 본거지 그리고 역사적 근거 등 자세한 내용은 다음 저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김태영, 『사근경: 역사는 모든 학문의 뿌리』 서울: 세계출판사, 2021. pp.216-218. 제393항.; 김태영, 『史根經 II』 2022년 여름출판 예정. 제2079항. 11/23/201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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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 This comment has been removed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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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3. 한창목 선생 댓글에 대한 2차 논평;

    말장난 할 그런 여유가 없이 할일이 많은 사람입니다. 모르면 가르쳐 드리지요. 학문이란 지식을 배우고 익히며 체계화하는 과정으로, 학문이란 실사구시(實事求是), 즉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眞理)를 탐구하는 것을 뜻하며, 학문에 전념하는 사람을 학자(學者)라고 하는 것이예요. 따라서 학자는 수많은 문헌사료와 다방면의 책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언어를 많이 할 수록 유익한 법이지요. "닉넴"이 아니라 'Nickname' 으로 한글식 발음은 '닠네임'이라고 표기해야 옳아요. 영어 닠네임을 사용하지 않아도 필자는 아주 유식한 사람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될줄 압니다. 알려면 똑바로 아시기 바라며, '3천5백만이 일본인'이란 말에 흥분과 역정을 내는 것으로 보아 혹시 토착일본인의 범주에 들어간 것은 아니신지? 선생께서 일본인이 아니라면 게의치 마세요. 우선 ‘조선왕조실록/선조실록’
    부터 차근차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상 논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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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4. 동이배달한민족의 중원은 산서성과 하내이고 지나의 중원은 섬서성이다.

    하남성은 은(상)나라 땅이고 모계사회로 이루어진 주(周)나라는 섬서성 기산부근에서 시작되었다. 관중(關中)이란 섬서성 일대 특히 서안 지역을 일컫는 말이고, 당시의 산동(山東)이란 전국시, 진(秦), 한(漢)나라 때까지 통용된 말로 효산(崤山)의 동쪽을 의미한다. 효산은 섬서성과 하남성 경계에 위치하며 정확하게 하남성 낙녕현 북쪽이다. 이 지역은 산세가 험하여 하남성이나 섬서성에서 서로 쉽게 넘나들 수 없는 지형이다. 다시말하면 산동이란 섬서성과 하남성 사이에 있는 효산을 벗어나면 산동이라 했다. 오늘날의 산동성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다. 주나라 무왕이 부계사회인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하남성에 있던 은(상)을 멸하고 그곳에 동생 주공단에게 노(盧), 동생 소공석에게 북연(北燕), 숙선에게 관, 숙도에게 채, 그리고 강태공에게 제를 봉지로 주었으며 이들 모든 제후국들은 하남성이다. 하남성을 산동이라 했다는 대목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나의 중원은 하남성이 아니라 섬서성이다. "山東: 戰國, 秦, 漢時通稱華山(今屬陝西) 或崤山(今屬河南)以東爲山東." ‘중국역사지명대사전’ 魏嵩山 主編, 廣東敎育出版社, 1995.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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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5. 단군조선의 태자 부루가 우(禹)에게 오행치수법을 가르쳐주었다.

    물(水)은 높은 곳에서 발원하여 낮은 지대로 흐르는 것이 속성이다. 제수(濟水)는 패수(浿水)의 다른 이름으로 단군조선이 있던 왕옥산(王屋山)에서 발원하여 제원시를 거쳐 남동쪽으로 흐르다가 황하로 진입하는 하천이고 회수(淮水)는 하남성 동백산(桐柏山)에서 발원하여 안휘성과 강소성을 경유하여 황하로 들어가는 하천이다. 당시의 치수란 오늘날 처럼 대규모공사를 할 수도 없었다. 우(禹)는 처음에 물길을 막는 방법으로 치수를 하였으나 부루단군으로부터 '오행치수법'을 배운 후로는 물길을 터서 물이 흘러내리게 하는 방법으로 성공한다. 산동반도가 섬처럼 된 적도 없었으며 하남성 정주로부터 산동성과 하북성 사이는 지대가 비교적 낮아 홍수가 나면 물길이 쉽게 바뀔 수 있는 지형이다. 동해, 발해, 거야택, 대야택은 같은 이름이며 "거야택은 발해의 다른 이름으로 한(漢)나라 초기까지 1,000여년 동안 '발해'라고 불렸다." 해(海)자가 들러가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광대한 물'만을 연상하기 때문에 실수를 하게 되는데, 옛날에는 황하를 비롯하여 천연 호수를 '바다(海)'라고 했다. 청해성에 있는 천연호수를 옛날에는 청해(靑海) 또는 서해(西海)라고 칭했음을 상기하면 이해가 용이하리라 믿는다. 자세한 내용은 김태영, 패수의 위치를 밝히는 최초의 학술논문, ‘패수의 위치연구’(제 4집) 서울: 세계출판사, 2019.를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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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6. 역사는 사실로, 철학은 논리로, 정치는 권모술수로, 그리고 종교는 맹신으로 말한다.

    역사는 사실로 말하고 철학은 논리로 말하며 정치는 술수로 말하고 종교는 맹신으로 말한다. 사실로 말하는 역사는 반드시 기록인 문헌사료를 살피는 것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1차사료나 문헌자료에 의거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이야기는 잡설(雜說)로 역사가 아니다. 주장을 할 때는 반드시 고증할 수 있도록 문헌사료를 제시해야 한다. 이중재는 조대명(朝代名)을 "조선"이라고 번역하는 크나큰 오류를 범했다. 조대명이란 '왕조의 이름'이란 뜻이다. '朝代名漢'이란 '한나라 왕조'란 의미이다. 어찌 한(漢)나라가 조선(朝鮮: 구체적으로 무슨 조선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고, 하(夏)나라가 조선이고 은(殷)나라가 조선이며 주(周)나라가 조선이 될 수 있겠는가? 4,022권의 < 25사>에 이들을 조선이라 했다는 기록은 없으며, 80,000권이 수록되어 있는 에도 이들이 조선이라고 기록된 곳은 보지를 못했다. 더불어 '짐작한다', '추론하다'는 개인 의견으로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사실(事實: facts)과 의견(意見: opinion)을 구별할 수 있는 식견이 먼저이다. 누구든지 검증할 수 없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출판물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25사를 차근 차근 읽어보는 것이 역사를 연구하는 정도임을 인식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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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 댓글에 대한 논평이다.
    (12/09/2021)

    질문:
    遼東이 山西省 汾水 以東이어야 하는데 甘肅省이라는 증거로 중국고금지명대사전 728쪽
    '涇原道'를 들고 있는걸 봤어요. 在甘肅省治東 淸平凉慶陽二府 涇州固原二州 及化平川廳地 民國置涇原道 屬甘肅省 治平凉縣 轄平凉 華亭 靜寧 隆德 莊浪 慶陽 寧 正寧 合水 環 涇州 崇信 鎭原 靈臺 固原 海原 化平 十七縣 이 문구를 증거로 삼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고금지도대사전에 위와 같은 것 있는지요?
    한서지리지 遼東郡縣에서 險瀆이 지금의 平凉이고 海原은 遼陽의 남쪽에 있는데 涇原道 소속이라 遼東은 甘肅省이라 하네요. 論評 해주세요.

    논평:
    요동이 감숙성에 있다고 주장한 사람이 근거로 제시한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제728쪽의 “逕原道(경원도)”란 인용글에는 ‘요(遼)’나 ‘요동(遼東)’이란 단어조차도 없을 뿐만 아니라 遼나 遼東의 지리지명을 설명한 내용도 아닌 “경원도”를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이는 마치 ‘제주도 서귀포를 이야기하는데 강원도 춘천’을 들먹이는 것과 같은 동문서답으로 논평의 가치가 없다. 인용글에는 “경원도: 감숙성에 있으며 동쪽을 다스렸는데 청(淸)의 평량(平凉)과 경양(慶陽) 두 부(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평량과 경양은 감숙성에 위치한 지명으로 오늘날의 감숙성 지도에도 뚜렷하게 나오는 곳이니 아래 지도를 참고하기 바란다. 逕原道가 遼東이란 설명이 어디에 있는가 묻는다!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제728쪽 제2단에도 “경원도”가 나오니 같은 책인 것만은 사실 같다.

    ‘한서/지리지’에는 요동군은 진(秦)나라 때 설치했으며 요서(遼西)에 속한다고 했다. 요동군에는 양평현, 신창현, 무려현, 망평현, 방현, 후성현 요수현, 요양현, 험독현, 거취현, 고현현, 안시현, 무차현, 평곽현, 서안평현, 문현, 반한현, 답씨현이다.

    험독현에 대해서 응소는 “조선왕 만(滿)의 도읍지라고 했다. 물길이 험한 곳에 의지하므로 험독이라 했다”라고 했다. 신찬은 “왕검성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는데, 이곳을 험독이라고 한다”고 했다. 안사고는 “신찬의 말이 옳다”고 했다.

    ‘한서/지리지’에는 “遼東郡縣에서 險瀆이 지금의 平凉이고 海原은 遼陽의 남쪽에 있는데 涇原道 소속이라 遼東은 甘肅省”이라는 기록이 없다. 반고가 지은 ‘한서/지리지’는 25사이자 지나의 정사이다. ‘한서’에 있지도 않은 내용을 마치 있는 것처럼 왜곡한 것은 뚜렷한 문헌사료의 날조로 중대한 범죄행위이다.

    “遼東이 山西省 汾水 以東”이 아니라 요(遼)가 있는 땅이란 의미이며 요산, 요수, 대요수, 소요수, 요산현, 요주, 요양 등은 모두 산서성에 있는 지리지명들로 요동이란 광의로는 경도 110도로 나뉘는 황하 동쪽인 산서성을 일컫는 말이고 협의로는 산서성 남부 임분시 일대를 뜻한다. 감숙성에는 요산, 요주, 요산현, 요양, 요수, 대요수, 소요수 등이 없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학술논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김태영, ‘고구려의 요동 요서 위치에 대한 소고’(제1집) 서울: 세계출판사, 2019.: 김태영, ‘고구려의 요동 위치 연구’(제7집), 서울: 세계출판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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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8. “감숙성에서 산서성으로 [요동이란 지명이] 옮겼을 가능성도 있지않을까”에 대한 논평이다.
    (12/10/2021)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지명이 옮긴다’는 것은 그 지명이 스스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 살고있던 사람들이 처음에 위치했던 천연적(天然的)인 원래의 지리지명(地理地名)을 사용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원래의 지명은 반드시 맨 처음에 나타난 지역에 있어야 하고 그렇다는 기록(記錄)으로 전해져야 한다.

    이는 마치 대한민국 서울에도 ‘명동’이 있고 강원도 춘천에도 ‘명동’이 있는 이치(理致)와 같다. 서울에 있던 원래의 명동이 강원도로 옮아간 것이 아니라 강원도 주민들이 그곳 춘천에다 서울의 명동과 똑같은 ‘명동’이라는 이름을 지어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

    최초의 명동이 어딘가를 고증(考證)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필요충분조건(必要充分條件)이 요구된다. 첫째, 명동은 반드시 남산이라는 천연지형물(天然地形物) 아래 위치해야 하고 둘째, 명동의 지형은 약간 비탈길에 있으며 그 비탈길 위에는 ‘명동성당’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하며. 셋째, 명동 입구는 반드시 남대문시장과 연결되어있는 지리여야 하고 셋째, 명동은 반드시 서울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강원도 춘천에는 남산도 없고, 비탈길도 아니며, 명동성당도 없고, 명동입구에 남대문 시장도 없으며, 서울이 아닌 강원도에 위치한다. 원래의 명동을 고증하고 실증하고 확증하기위한 필요충분조건을 충족(充足)하지 못한 한계를 지닌다. 결론은 처음의 명동은 서을의 명동이며 강원도 춘천의 명동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약 감숙성에 있던 “요동(遼東)”이란 지명이 산서성으로 옮겨졌다면 감숙성에 요동이란 지리지명이 위치했었다는 필요충분조건으로 요산(遼山), 소요수(小遼水), 대요소(大遼水), 압록수(鴨綠水), 말갈백산(靺鞨白山), 요주(遼州), 요현(遼縣), 요양(遼陽), 평양성(平壤城), 국내성(國內城), 안시성(安市城) 등의 지리지명이 반드시 위치해야 하고 이들 지명들이 위치했었다고 문헌사료가 명백히 기술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80,000권의 ‘사고전서’, 4,022권의 ‘25사’, 1,893권의 ‘조선왕조실록’, 139권의 ‘고려사’, 50권의 ‘삼국사기’,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중국역사지명대사전’, ‘중국고대지명대사전’, ‘상서/우공’, ‘여씨춘추/유시람’, ‘회남자/지형훈’ 이들 문헌사료 어디에도 감숙성(甘肅省)에 요동을 비롯한 그 밖의 지리지명이 위치했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왜냐? 이 같은 엉터리 주장을 하고있는 자들의 근거없는 설(說)들이 바로 견강부회(牽强附會: 가당치도 않는 말을 억지로 끌여다 붙여 조건이나 이치에 맞추려고 함)하고, 백귀야행(百鬼夜行: 어중이떠중이 등이 때를 만나 활개치고 다님)과 같으며, 설병지지(挈缾之知: 손으로 가지고 다닐만한 작은 병에 들어갈 정도의 작은 지식)과 같고, 맹인기할마야반임심지(盲人騎瞎馬夜半臨深池: 소경이 한쪽 눈이 먼 말을 타고 캄캄한 밤에 연못에 간다는 의미로 대단히 위험함을 비유)와 같기 때문이다.

    제도권 강단사학자뿐만 아니라 재야사학자(?)에게 충고한다. 책을 많이 읽도록! 책은 지식의 보고이고 지식에서 얻은 역사는 지혜의 관문이다. 모든 해답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있음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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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 “한4군에 관하여 ‘사기’를 지은 사마천이 왜곡했을까”에 대한 논평이다.
    (12/11/2021)

    사마천은 ‘사기의 저술 목적이 “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구천인지제, 통고금지변, 성일가지언)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규명하고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관통하며 일가의 말을 이루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공자의 유가(儒家), 노·장자의 도가(道家), 묵자의 묵가(墨家), 한비자의 법가(法家)들처럼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 ’사기‘를 저술했다. 말하자면 사마천은 사가(史家)로써 권위자로 남고 싶었던 사람이다.

    한4군에 관하여 사마천은 단지 “한무제가 BC108년에 위만조선을 멸하고 그 땅에 4군를 두었다”고만 적었으나 그로부터 약 180년 후에 반고가 ’한서‘를 지으면서 “마침내 조선을 평정하고 진번, 임둔, 낙랑, 현도 4군을 두었다”고 왜곡하였다. 따라서 한4군에 관한 한 사마천의 왜곡이 아니라 반고가 왜곡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마천도 인간인지라 일부의 곡필(曲筆)은 있겠으나 ’사기‘를 크게 왜곡하거나 조작했다고 믿지 않는다. 그런데 동양사 전체의 흐름을 보아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비교, 분석, 검토, 교차확인해 볼 때 ’사기‘는 당(唐)나라가 고구려를 패망시킨 668년 이후부터 약간씩 왜곡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사마천의 ’사기‘는 당나라 때부터 첨삭되었다고 단정한다.

    사마천이 언급하지 않은 낙랑, 진번, 임둔, 현도 한4군의 역사 왜곡은 후한(後漢)을 세운 유수, 유흠, 그리고 반고에 의해 왜곡된 것으로 의심된다. 후한을 일으킨 광무제 유수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그의 족보를 밝히면 이 같은 수수께끼는 아주 쉽게 풀린다.

    고려의 도읍지는 개경(開京)으로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河內)에 있는 지금의 복양(濮陽)이며 이곳을 부소갑, 송악군, 개주, 개경, 황도, 개성부 등으로 칭했으나 개성이라고 부른 적은 없다. 다시 말하면 한반도의 개성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 개경은 1361년 11월 주원장이 이끈 홍건적에 의해 함락된다. 주의할 점은 개경과 개성과, 개성부는 그 의미가 다르며 고려는 개경이나 개성부라고 명칭했지만 개성이라고 부른적은 없다는 점이다.

    정약용의 ’아방강역고‘를 중간하면서 첨삭하지는 않았다. 첨삭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한쪽 편을 든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김태영, ’사근경: 역사는 모든 학문의 뿌리‘ 서울: 세계출판사, 2021. pp.61-62, 114, 579-582.를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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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 공자(孔子)는 한국인에 가까운가에 대한 논평이다.
    (12/12/2012)

    우선 단어와 시대구분이 잘 정리되지 않은 질문으로 설명이 쉽지 않음을 밝힌다. 먼저 두 가지 명제를 제시하면서 논평한다. 1)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자는 약 98%가 같다. 2) 왜(倭: 일본인)는 동이족이다.

    인간의 유전자는 약 30,000개라 한다. 그런데 이 유전인자 한 개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침팬지의 유전자가 인간의 유전자와 약 98%가 같다고 하지만 겨우 2% 차이의 유전인자가 원숭이와 사람이라는 굉장한 차이를 나타내준다는 말이다. 역시 같은 동이족이지만 왜(倭)와 한국인은 유전적인 참모습이 사뭇 다르다.

    공자(孔子)는 은(상)나라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공(孔)씨의 유래는 크게 다섯 곳에서 나온 것으로 기술되고 있는데, 첫째, 강(姜: 요순시기 공공씨의 일족)씨성에서 둘째, 자(子: 상나라 시기)씨성에서 셋째, 희(姬: 춘추시기 정대부로 주나라 왕과 동족)씨성에서 넷째, 규(嬀: 춘추시기 진대부)씨성에서 다섯째, 길(姞: 황제헌원)씨성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공씨는 이렇게 다섯 곳의 성씨 원류(原流)가 있는 것으로 보아 신빙성이 약하지만 여러 가지 문헌사료들을 종합해볼 때 세 번째의 희(姬)씨 성에서 유래된 것으로 믿는다. 그 이유는 이렇다. 왕검단군의 본래의 고향은 단향(壇鄕)으로 산서성 남부 왕옥산과 하내의 패수(浿水) 지역이라고 나필이 지은 ‘路史(로사)’가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도 35도로 나뉘는 황하 이북은 단군조선의 고유한 동이배달한민족의 요람이자 역사적 중원이다.

    부계사회인 단군조선의 방계인 모계사회로 이루어진 주(周)나라는 섬서성 기산 부근에서 시작된 왕조이고, 요, 순, 하, 은(상)은 모두 하남성에 있던 왕조들이다. 주나라 무왕이 하남성에 있던 은나라를 멸하고 그곳에 동생 주공단(周公旦)에게 봉지를 준 노(魯)나라는 하남성에 있었다. 산동성 곡부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하남성이며 전국시대가 끝나면서 노나라가 마치 산동성에 위치했던 것처럼 왜곡되었다.

    산동성은 고구려, 백제, 대진, 신라의 강역이었음은 문헌사료를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공자는 한국인에 가깝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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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 뜻글자와 소리글자에 대한 논평이다.
    (12/13/20210

    한자는 뜻글자로 만들어졌고 한글은 소리글자다. 따라서 뜻글자와 소리글자의 특성은 변하지 않는다. 단지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작은 문제일 뿐이다.

    요사이 대한민국의 한 여인이
    “멤버 유지”의 유지를 영어로 Yuji라고 번역하여 세간의 웃음을 사고 있다.
    영어로는 Maintenance로 번역했어야 했다.
    한자로는 維持라고 적어야 할 것이다. 한자로 역시 ‘有地’나 ‘蹂支’ 등으로 적었다면 웃음거리임은 마찬가지이다.

    역사(歷史)를 알지 못해 한평생 삿갓을 쓰고 방황하며 살다가 생을 마감한 천재 김삿갓(김병연)의 조롱시를 소개한다. “書堂來早知, 房中皆尊物, 生徒諸未十(서당내조지, 방중개존물, 생도제미십) 서당은 내좆이요, 방안은 온통 개 좆물, 선생은 내 불알이다.”

    김삿갓의 조롱시는 뜻글자인 한자를 빌려 적었지만 이는 한자가 아니다. 이와같이 뜻글자의 기능을 상실한 한자 표기는 한자라고 볼 수 없다.

    자세한 내용은 김태영, ‘사근경: 역사는 모든 학문의 뿌리’ 서울: 세계출판사, 2021. pp.174-175.를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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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 기황후와 김건희에 대한 글의 논평이다.
    (12/24/2021)

    기(奇)씨의 중시조는 고려 인종 때(1122∼1146) 문하평장사를 지낸 기순우(奇純祐)를 시작으로 내려오다가 고려 고종 때(1213∼1259) 대장군을 거쳐 문하평장사를 지낸 기윤숙(奇允肅)의 증손인 기자오(奇子敖)의 딸이 원(元)나라에 궁녀(宮女)로 발탁되어가 원의 마지막 황제인 순제(順帝)의 제2황후가 된 사람이 바로 기황후이다.

    그녀의 족보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황후는 “미천한 공녀”가 아니다. 궁녀가 되려면 숫처녀의 신분으로 행실이 바른 규수집의 소녀여야 한다. 원나라 황실이 궁(宮)에서 일할 여자를 술집작부나 창부(娼婦)를 발탁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김건희의 거짓, 위선, 사기, 협잡, 공갈 등은 “인생역전 성취(成就)”가 아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면은 최소한의 윤리와 도덕을 지닌다는 점이다. 거짓, 위선, 사기, 협잡, 공갈은 윤리나 도덕과 병존할 수 없는 타락의 극치가 된다. 따라서 기황후를 김건희에 비교하는 것은 역사를 알지못한 견강부회(牽强附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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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3. 한자와 소리글에 대한 논평이다.
    (12/25/2021)

    한자는 뜻글자이지만 한자의 3요소라 하여 성(聲), 음(音), 의(義)가 있다. 聲은 소리, 음성, 말, 언어를 뜻하고 音이란 귀에 들리는 자극으로 음악이나 성악을 의미하며 義는 뜻을 말한다. 따라서 소리를 표기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1443년에 창제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세종은 한글을 창제하지 않았다. 고구려, 백제, 신라, 대진, 고려 시대에도 한글의 전신인 가림토글자가 있었다. 고려 시기 해동공자라고 불리던 최충의 12대손인 최만리(?-1445)가 1444년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반대상소를 올렸는데 그 상소문은 다음과 같다. “此斯諺文前朝有之 諺文皆本文字 非新字也(차사어문전조유지 언문개본문자 비신자야) 이 언문은 전조(고려조)부터 있었던 것이며, 언문 모두로 되어있는 본 글자는 새로운 글자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세종이 창제했다고 주장한 언문(한글)은 세종이 창제한 것이 아니라 고려 때에도 있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요녕성과 길림성은 뜻글자라 하고 흑룡강성, 신강성, 서장성, 내몽고 등은 소리글이라고 주장하는지 필자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만약 “말죽거리”를 ‘末竹居里’로 “모래내”를 ‘冐來奶’로 적었다면 소리나는 대로 적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김태영, ‘동이배달한민족사’ 서울: 소호출판사, 2013. pp.541-545.; 김태영, ‘사근경’ 서울: 세계출판사, 2021. p153.을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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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4. 고려 개경에서 한반도 이씨조선 한양에 대한 논평이다.
    (12/26/2021)

    1392년에 이성계가 역성쿠데타로 고려를 빼앗은 다음 명나라와 결탁하여 광활한 대륙의 영토를 포기하고 한반도로 쫓겨옵니다. 따라서 한양은 당연히 한반도 지금의 서울 한양을 뜻하지요.

    이 같은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조선왕조실록’이 기록하고 있는 이씨조선이 명나라에 바친 약 33,000필의 말(馬)이예요. 한반도에서는 말이 산출되지 않아요. 제주도에서 겨우 말이 나오지만 조랑말로 이 같이 많은 말을 공급할 수도 없어요.

    대륙의 강토를 말 두수로 환산하여 땅을 헌납한 것이지요. 이성계, 이방원, 이도, 이향에 걸쳐 이루어진 참담한 비극의 역사입니다. ‘태조실록’(1392-1398)에는 6,000필의 말을 명나라에 바쳤다고 적고 있어요.

    주원장은 1398년 6월 24일 사망하고 이성계는 1408년 6월 18일에 사망합니다. 1392년에서 1397년 사이에 한반도로 들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명나라 주원장의 詩에 "압록강을 경계로 봉토를 나누었다고"고 했어요. 물론 이 압록강은 산서성에 위치한 요수(遼水)인 압록수가 아니라 지금의 한반도 압록강을 뜻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김태영, ‘사근경’ 서울: 세계출판사, 2021. pp. 559-562.을 참고하세요. 이성계가 죽기 훨씬 이전에 이미 한반도 한양으로 좌천(?) 되었으니 하내(河內)의 개경(開京)에는 미련을 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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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 동이배달한민족사 간단한 연대 개요.
    (12/30/2021)

    한국(桓國: 8936∼3898BC) → 배달국(倍達國: 3898∼2333BC) → 단군조선(壇君朝鮮: 2333∼295BC): 단군조선 초기부터 삼한(三韓)인 진한(진조선), 마한(막조선), 변한(변조선 혹은 번조선)으로 나뉘며 진한은 산서성 임분, 마한은 산서성 남서부 지금의 조양진, 변한은 산서성 남동부 원곡이다. 단군조선 제 44대 구물단군(BC425)에 국호가 대부여(북부여로 바뀜)로 바뀌면서 남부여, 동부여, 졸본부여, 연나, 환나 등으로 난립한다.

    진한인 북부여는 단군조선의 백성인 흉노 모돈에게 망하고 그 자리를 고구려가 차지하며, 마한은 54개국으로 조양진으로부터 서쪽 섬서성를 포함하여 감숙성까지 걸친 큰 영토로 진시황의 진(秦)은 마한 땅에서 생긴 나라이니 마한이 옳다. 변한(번조선)왕 기준(箕準: 243-194BC)이 연나라 위만에게 망하며 위만이 조선이란 국호를 그대로 사용한다. 준은 마한 땅에 들어가 백제에 흡수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나라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하고 한5군을 둔 곳이 바로 동부여인 갈사국으로 하남성, 하북성 남부, 그리고 산동성 서쪽에 해당된다. 한무제는 단군조선의 핵심 강역인 산서성을 경영한 것이 아니다. 한나라 무제시기는 고구려 제6대 태조궁 무열제와 같은 때다.

    진한에서 고구려와 신라가 발생하지만 신라는 고구려에 밀려 변한이 되었고 마한에서 제일 큰 나라가 백제이다. 그러나 고구려는 옛 단군조선의 황하북부 강역을 나당 연합군에게 패망할 때까지 지키지만 신라는 강소성, 절강성, 안휘성, 복건성으로 백제는 요서인 섬서성과 산동성에 있다가 다시 남하하여 절강성, 안휘성, 호북성, 호남성, 광동성 등 남쪽과 대만과 월남등의 영토를 관할하게 된다.

    차츰 동이배달한민족사의 연대가 정리될 것이니 너무 조급하지 말기 바라며 자세한 내용은 김태영, ‘동이배달한민족사’(개정증보) 서울: 세계출판사, 2019.를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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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 그럼 이성계 생전에 한반도로 좌천되었다면 방원이와 갈등할 때 있었다는 함흥차사의 함흥은 대륙이 아니고 반도의 함흥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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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 ☆ 이영배씨의 댓글에 대한 논평이다. ☆

    댓글: 북부여 6대 고무서단군과 신라 박혁거세 모친 파소와는 오누이간, 그렇기에 북부여의 종료시점은 사위 고주몽의 고구려 건국시기와 같고, 북부여 5세 고두막한단군 딸 파소 아들 박혁거세가 신라를 건국한 것은 다음이요, 박혁거세와 소서노는 사촌지간이니 고소서노의 아들 온조가 성장하여 백제를 건국한 것은 당연히 한참 지난 시기였음이라.

    논평: 범장이 지었다는 ‘북부여기’ 하(下)의 ‘제6세 고무서’에 의하면, “임술원년(BC59)에 졸본천에서 즉위(壬戌元年帝卽位于卒本川)”라고 하였고, “계해 2년(BC58) 제가 영고탑을 순시하다가 흰 노루를 얻었다. 겨울 10월에 제가 붕어하고 고주몽이 유언에 따라 대통을 이었다. (癸亥二年帝巡到寧古塔得白獐冬十月帝崩高朱蒙以遺命入大統)”라 적고 있다.

    또 이맥이 지은 ‘태백일사/고구려 본기’ 제6에, “옛날 부여제실의 딸 파소가 있었는데 남편없이 아이를 배어 사람들의 의심을 받았다. 눈수로부터 도망쳐 동옥저에 이르렀다. 또 배를 타고 남하하여 진한의 나을촌에 와 닿았다. 그 때 소벌도리라는 사람이 있어 그 소식을 듣고 가서 집으로 데려와 거두어 길렀다. 나이 13세에 이르자 재주가 빼어나고 성장하면서 성덕이 있어 진한 6부의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여 거세간이 되니 도읍을 서라벌에 세우고 나라를 진한으로 하고 또는 사로라고도 하였다. (昔有夫餘帝室之女婆蘇不夫而孕爲人所疑自嫩水逃至東沃沮又泛舟而南下抵至辰韓奈乙村時有蘇伐都利者聞之往收養於家而及年十三岐嶷夙成有聖德於是辰韓六部共尊爲居世干立都徐羅伐稱國辰韓亦曰斯盧)”라고 기술하고 있다.

    에 의하면 북부여는 6세 고무서가 마지막으로 BC58년에 끝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는 BC232년에 건국되었음을 ‘신당서’, ‘삼국사기’, ‘상서’, ‘상서정의’, ‘일주서’, ‘한서’, ‘광개토호태왕 비문’ 등의 문헌사료에 근거하여 필자의 논문 ‘고구려의 압록수 위치 연구’(2019)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따라서 BC232년과 BC58년은 174년의 연대차이가 나 “북부여의 종료시점은 사위 고주몽의 고구려 건국시기와 같다”는 이영배씨의 주장은 오류임을 지적한다.

    함께 살펴본 바와 같이 “북부여 6대 고무서단군과 신라 박혁거세 모친 파소와는 오누이간, ... 북부여 5세 고두막한단군 딸 파소 아들 박혁거세가... 박혁거세와 소서노는 사촌지간이니...” 란 말은 ‘북부여기’와 ‘태백일사’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영배씨는 허구의 소설을 쓰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영배씨에게 충고한다. 우선 역사(歷史: iσtopia; historia; history; geschict)가 무었인지부터 정확하게 공부하기 바란다. “‘삼성기/상·하’, ‘단군세기’, ‘북부여사[기]’, ‘태백일사’ 원서(原書: 한자로 기록된 내용으로 이해됨) 13권을 5번 정독하고, 관련 글을 1년 이상 연재하며 역사컬럼(column: 칼럼이 옳은 발음임)을 게재한다”고 해서 역사가 아니며 역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 다음은 ‘공부(工夫: learn)’와 ‘연구(硏究: study; inquire)’가 어떻게 서로 다른지를 이해하고 깨닫기 바란다. 역사를 논할 때는 자신이 주장하는 근거를 누구든지 고증(考證)하고 검증(檢證)할 수 있도록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문헌사료에 근거없는 주장을 하는 자는 곧 주접떠는 만담가(漫談家)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논문(論文: dissertation; treatise; thesis; paper)이 무엇이며 논문은 어떤 특징을 갖고 어떤 것을 표절(剽竊)이라 하며 표절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공부하기 바란다. 신문에 글을 연재하거나 역사칼럼을 싣는 것은 논문이 아님을 스스로 알게될 것이다.

    앞으로는 이 같은 엉터리를 동이배달한민족사의 진실을 밝히려고 애쓰는 필자의 Facebook이나 Group facebook에 댓글하거나 엉터리 지도(地圖)들을 게재하지 말기 바라며, 필자의 연구논문들을 잘 읽어보기 바란다. 지금까지 14편의 학술논문들을 www.coreanhistory.com 에 게재해 두었으니 누구든지 무료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비록 허구의 소설로 작성된 논문일지라도 역사논문들을 읽어보려면 상당한 돈을 지불하고 볼 수 있지만 필자는 누구든지 공짜로 읽고 복사도 할 수 있으며 잘못된 곳이 발견될 때는 문헌사료에 근거하여 논문(論文)으로 반박(反駁)할 수 있게 활짝 열어두었으니 널리 활용하기 바란다.

    끝으로 百鬼夜行(백귀야행)이라 ‘어중이 떠중이 등이 때를 만나 활개치고 다님’의 격이 된 동이배달한민족(東夷倍達韓民族) 고대사에 관한 근거없는 잡설(雜說)들에 역사학자로서 환멸을 느낀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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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 이병환 선생의 댓글에 대해 논평한다.
    (1/23/2022)

    과학(science)이란 자연현상을 설명한 학문으로 지식의 결정체이며 객관성과 신뢰성을 갖습니다. 따라서 합의에 의한 것은 과학이 아닙니다.

    이산화탄소(Co₂)는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요인(要因)들 중의 하나입니다. 단지 경중(輕重)은 있을 수 있으나 “합의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요.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전적으로 개인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이는 마치 “지구가 편편하다”고 주장을 한 애뤼스타를(Aristotle: 384-322BC)로부터 약 2,375년이 지난 21세기인 이 시간까지도 지구가 둥글지 않고 편편하다고 믿는 일부 종교인들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주의 법칙에 따른 온실효과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만약 지구에 온실효과가 없다면 지구는 너무 추워서 인간이 살 수 없게 됩니다. 균형유지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김태영, ‘사근경: 역사는 모든학문의 뿌리’ 서울: 세계출판사, 2021. pp.309, 317, 347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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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 개고기를 먹느냐 먹지않으냐는 당연히 개인 각자의 의사에 달려 있습니다. 필자도 보신탕을 먹은 적이 있어요. 그러나 깨달은 바가 있어 오래전부터 절대로 금합니다. 상황에 따라 서구인도 개를 잡아먹었어요. 마젤란은 빙토(冰土)의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썰매를 끌던 개들을 잡아먹었지요. 징기스칸 시기 적군에 포위되었을 때 살아남기위해 동료들인 사람를 잡아먹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도로 진화된 령(靈)을 가진 인간이라면 개를 잡아먹는 식생활은 금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개는 령물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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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 게시물에 대한 논평이다.
    (1/11/2022)

    게시물: 윤석열 대선후보께서 북에 선제타격을 입에 담네요. 북에 선제타격하면 남의 핵발전소 27기 온전할 수 있나? 핵발전이 친환경이고 저렴하고 팬텀기가 추돌해도 끄떡없다고 세뇌되었으니 한심. 미사일 대비없다. 장사정포 한발이면 남은 끝장

    논평: 선제공격(先制攻擊)이란 상대방의 화력이 나의 화력에 비해 크게 열세(劣勢)일 때 가능한 병법이다. 원자폭탄 더욱이 수소폭탄을 가지고 있는 북한을 선제타격한다는 윤석렬은 분명 저능아(低能兒) 수준급이다. 미국도 두려워하는 핵을 가진 북한을 선제공격한다고? 원자폭탄인 ‘뉴클리어 밤(Nuclear bomb)’을 윤석렬은 아마도 ‘먹는 밤’으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하기야 무식해서 책 한권 제대로 읽지 않았을 것이니 핵융합(fusion)이 무었인지 핵분열fission)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원자력발전소는 첫째, 친환경의 발전소가 아니다. 지구 온난화를 야기시키는 요인은 크게 다섯 가지로 ⑴ 이산화 탄소(Co₂) ⑵ 메탄개스(CH₄) ⑶ 수증기 ⑷ 오조운(O₃) ⑸ 아산화 질소(NO₂)이며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로 인한 대류현상으로 온난화를 일으킨다. 핵발전소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둘째, 원자력발전소는 저렴하지 않다. 원자력발전 기술은 지금까지 4단계를 거쳐오고 있다. Generation I → generation II → generation III → generation IV로 4세대의 원자로는 1999년부터 시작된 새로운 방식이다. 그러나 한국의 원자로는 약 30년이 넘는 구식으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이 대단히 높다. 즉 경제학의 용어를 빌리자면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 너무 크다는 말이다.

    3) 팬텀기가 추돌해도 안전하다는 것은 제국주의 자본가들의 허위선전이다.
    일본 후쿠시마(Fukushima) 원전처럼 지진으로 핵발적소가 붕괴될 수 도 있고, 핵폭탄은 말할 것도 없이 북한이 가지고 있는 장사포면 핵발전소가 폭발하여 한반도의 인구는 전멸될 수도 있다.

    독일의 여자 수상 메르켈(Angela Merkel)이 왜 독일 국민으로부터 추앙받고 있는지 아는가. 그는 일본의 원전 사고가 난 직후 수일만에 독일의 가장 오래된 원자로를 정지하였고, 2011년 5월까지 모든 17개 원자로의 가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원전사고를 염려해서였다.

    원자력을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이지만 전 세계적인 추세로 보아 원자력발전소는 더 이상 선망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원자력발전소 대신 바람(風), 태양(光), 지열(地熱) 같은 녹색에너지 연구에 혈안이 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은 하루빨리 한반도의 모든 원자로를 중단해야 할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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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 논평한다.
    1/23/2022

    사마천의 ‘사기’는 관찬사로 볼 수 없다. ‘사기’를 지은 사마천의 목적을 보면, “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구천인지제, 통고금지변, 성일가지언)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연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꿰뚫어 알며, 일가(一家)의 말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마천은 제자백가들처럼 자신이 사가(史家)의 권위자로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 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으로 극히 사적이라는 점이다.

    아버지 사마담이 중병으로 사망하자 아버지의 직책인 태사령이 되었는데 태사령의 직분은 천문과 역법을 기록한 일이다. 사마천이 ‘사기’를 짓게된 것은 아버지 유언 때문이었지 나라의 명을 받고 지은 것이 아니다. 때문에 비록 나라에서 태사령이란 직책으로 인하여 녹을 받았다하더라도 ‘사기’의 저술 목적과는 달라 관찬사로 볼 수 없다.

    두 번째 이유는 한무제가 ‘사기’의 기록을 보고 아버지 경제(景帝)의 잘 잘 못을 기록한 점을 들어 노발대발하여 아버지의 기록인 효경본기(孝景本紀)와 자신의 기록인 무제본기를 찢어버린 점이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으로 살아있는 무제라 하더라도 자신의 행적을 볼 수 없고 살아있는 무제의 업적을 사마천은 기록해서도 안되는 일이다. 역사 서술 윈칙에 크게 위배되는 사항이다. 따라서 ‘사기’가 관찬사가 될 수 없음으로 ‘사기’를 관찬사로 보는 것이 무방하다고 볼 수 없다.

    “환배달 단군조선”은 별개의 독립된 나라가 아닌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정확하게 한국, 배달국, 단군조선으로 적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언급한 것이니 오해 없기 바란다. 자세한 내용은 ‘사근경’(2021) pp.61, 141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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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 존칭은 생략한다.
    시(詩)란 사람의 정서, 감흥, 상상 등을 표현하는 문학의 한 장르로 역사는 아니다. 물론 그 시가 역사적 사실을 담고있다면 역사적인 시가 될 수 있지만 역사적인 사실이 아닐때는 시는 시일뿐 역사는 아니라는 뜻이다. 역수와 요수는 완전히 다른 하천이다. 요수(遼水)는 대요수와 소요수가 있으며 대요수는 말갈백산에서 출원하는데 마자수라고도 한다. 소요수는 요산에서 발원하며, 두하천이 합류한 것을 압록수라하고 압록수는 남하하다가 서쪽의 황하로 들어가는 강이다. 요수나 역수나 갈석산은 모두 산서성에 위치한다. 요수는 오늘날의 분수(汾水)를 일컫는 말이다. 역수는 요수 즉 지금의 분수 아래 위치한 강으로 유수(濡水)라고 도 했는데 지금의 속수이며 이 속수가 현수와 만나 황하로 진입한다. 이 물이 서로 만나는 곳이 바로 노룡새이다. 미안하지만 대한민국의 역사교수라는 친구들은 99.99999999%가 엉터리임을 그들에게 주지시켜주기 바란다. 역사학자가 역사적 사실을 주장할 때는 반드시 1차사료와 문헌자료를 제시하여 고증할 수 있어야한다. 문헌사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형가의 시가 그렇다더라 하는 것은 스스로 무식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역사학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요수는 압록수이고 유수가 역수이고 난하이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학술논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www.coreanhistory.com 에 모두 게제되어 있어 누구든지 무료로 읽어볼수 있고 복사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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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 그렇지 않습니다. 조선 후기(1637-1897)의 실학자인 정약용(1762-1836)이 왜곡된 ‘아방강역고’를 지을 때 청나에는 약 80,000권(79,337권)의 문헌 사료를 소장한 ‘사고전서’가 1788년에 완성되었을 시기로 문헌사료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어요. 문제는 충분한 책을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민족사를 '잘 아는체한 점'입니다. 일종의 만용이나 교만이라 할까요. 고구려가 668년에 망했지요. ‘사고전서’ 훨씬 이전에 구양수가 지은 ‘신당서’도 있었어요. 마음만 먹으면 넘치는 문헌들을 구해 읽을 수가 있었다고 봅니다. 사마천의 ‘사기’와 ‘신당서’만 주밀하게 읽었어도 헛소리를 하지 않아요. 정약용은 "패수가 한반도의 '압록강'이리고 주장한 위인이지요. 21세기인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야사학을 한다는 친구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제도권 식민 반도사학자라는 친구들 모두 1차사료나 문헌자료들을 읽지 않아요. 한자로 기록된 문헌들을 읽지도 못합니다. 비록 읽었다 해도 옳바른 해석을 못하지요. 지금까지 한국에서 발표된 역사논문만 약 12,735편을 읽어보았으나 제대로 된 논문은 민두기(閔斗基: 1932-2000)란 분이 작성한 논문을 제외하고는 단 한편도 없어요. 자료확보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민두기는 서울대 동양학과 교수를 지낸 사람으로 그의 논문은 훌륭합니다. 기회가 되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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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 중국이란 말이 최초로 나온 것은 BC1805년경으로 지금의 중국이란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며 당시의 중국은 섬서성 일부 지역을 뜻합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관중이란 단어가 나오면서 섬서성을 가르치지요. 섬서성을 관중이라 하면서 처음에는 동쪽함관(函關)에서 서쪽 롱관隴關)까지라고 했은데 함관은 하남성과의 경계를 말하고 롱관은 감숙성 공창부 일대를 의미합니다. 당시에는 남관이나 북관이 없었어요. 그 후 또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각색되어 남무관, 북숙관이 나옵니다. 산서성 남부와 산동성 서북부 일부 하북성 남부 일부를 '직이'라고 했다가 그 후에 '직례'라고 개명했다가 지금의 하북성을 직례성이라 했다가 중화민국 때에 비로소 하북성이라 합니다. 중원 역시 민족사의 중심이 되는 곳을 뜻하는 것으로 섬서성만을 중원이라 하지않아요. 단군조선의 중원은 산서성과 하내이고 고구려의 중원은 산서성과 같은 맥락입니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시대구분이 뒤죽박죽 되면 고손자가 고조가되고 증손자가 증조부가 되는 식이 되어 함부로 해석하면 안되지요. 그런 뜻에서 논리의 비약이라 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같은 헛소리를 하는지 궁금하군요. 자세한 내용은 (개정증보) 서울: 세계출판사, 2019. pp.249-252를 참고하시고 필자의 논문들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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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 논평한다.
    2/19/2022

    왜곡된 민족사를 밝히기 위해 여러권의 저서를 남긴 분이 큰 아버님이시라니 축하드립니다. 사람은 저마다 공(功)과 과(過)가 있기 마련 공이크면 칭찬하고 과가크면 비판함이 당연한 사회규범일 것입니다. 이유림, 안호상, 유봉영, 임승국, 박창암, 박시인 등과 국사찾기협의회를 만들어 국사정립운동을 한 그의 투철한 정신은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봅니다. 남평문씨의 시조는 문다성(文多省)으로 고려조의 인물이니 한반도 전남 나주군 남평면이 출생지가 될 수없어요.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에 고려의 도읍지 개경(開京)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고려가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홍건적에게 망했으니 문다성의 출생지는 당연 대륙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밝힐 필자의 학술논문 ‘고려의 강역 연구’가 나오면 참고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목화씨로 유명한 문익점 선생은 고려왕조를 빼앗은 이성계가 친히 불렀으나 이성계의 청을 거절하고 고려조에 충절을 지켰던 분으로 청사에 길이 빛나고 있어요. 자신의 족보를 남에게 알리는 일은 그리 쉽지않는데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모진 고문으로 돌아기신 조부님의 명복을 빌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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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 안국진 역사를 이야기 할 때는 반드시 지켜할 윈칙이 있습니다. 바로 허구의 소설에 나온 이야기를 인용해서는 안된다는 원칙 입니다. 아무리 멋있고 아름다운 미사여귀로 장식해도 소설은 소설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선 '마읍산'은 마두산이니 마미산이니 등으로 불리던 오늘날의 산서성 남부에 위치한 여량산맥의 남쪽끝에 위치한 화염산을 뜻합니다. 이 곳 화염산에 고구려의 환도성과 안시성이 함께 있었어요. 그런 이유로 화염산이라고도 불립니다. 삭주는 산서성 북부에 있는 지명으로 평양성, 안시성, 환도성들과는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진 지역입니다. 삭주(朔州)는 녕무(寧武) 북쪽에 있으며 고구려의 고유 영토로 진시왕 정(政)이 장성을 쌓을 수 없는 적국의 영토입니다. 패강은 패수(浿水)를 일컫는 말로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河內)에 있는 지금의 망하이고, 마읍산은 화염산(안시성/환도성 위치)이며, 평양성은 안시성에서 압록수만 건너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로 안시성에서 약 190리 정도에 위치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학술논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www.coreanhistory.com 에서.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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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 * 앞 게시물 오기 정정 *

    “그런 이유로 화염산이라고 불립니다”를 그런 이유로 “환도산”이라고 불립니다로
    정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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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 댓글에대해 논평한다.
    (2/24/2022)

    댓글; 다산은 정말 훌륭한 학자이지만, 전지전능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학자에 대하여 종교적 신념 같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퇴계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논평: 학문이란 실사구시(實事求是), 즉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眞理)를 탐구한 것을 말하고 학문에 전념한 사람을 학자(學者)라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학자는 어떤 형태의 정치에도 관여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다산도 퇴계도 정치에 참여한 곡학아세(曲學阿世) 하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정약용은 ‘아방강역고’를 찬(撰)하지 않은 편이 나았고, 퇴계는 유학(儒學)이나 주역(周易)을 공부하지 않았음이 더 좋았을 것이다.

    퇴계가 주역에 매달린 이유는 공자(孔子) 때문이며 오늘날과 같이 점쟁이와 무당들이 들끓은 타락된 사회현상은 바로 주역이라는 점괘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세상천지에 어찌 64괘로 우주의 변화무쌍을 알 수 있단 말이던가. 사단칠정을 살펴보자. 퇴계는 이발이기수(理發而氣隨) 기발이기승(氣發而理乘)라 했고, 율곡은 기발이리지(氣發而理乘)라 주장한 것으로 둘 다 틀렸다.

    머리 좋은 사람이면 40분이면 알 수 있는 것을 400년 동안 유학을 두 갈래로 나눠 학술논쟁에서 당파 정치이해관계로 갈등을 조장한 사람이 바로 퇴계와 율곡이다. 불행하게도 퇴계와 율곡이 뿌린 망국의 당파싸움이 21세기인 오늘까지도 대한민국의 학계, 정계, 재계, 종교계, 사회계 곳곳에 만연하고 있음을 통탄한다. 이 같은 책임은 공자와 맹자의 몫이다.

    묵자는 공자를 가식적이고 위선적이며 비열한 인간이라 평했고, 노자는 교만하고 욕심이 많고 가식적이며 방존한 사람이라고 공자를 그의 면전에서 평한 성인(聖人)이다.

    필자도 노자, 묵자, 이지, 홍수전, 강유위, 오우, 임표 등 같은 선각자들처럼 유교와 공자를 엄중 비판한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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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 댓글에대해 논평한다.
    (2/24/2022)

    댓글; 다산은 정말 훌륭한 학자이지만, 전지전능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학자에 대하여 종교적 신념 같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퇴계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논평: 학문이란 실사구시(實事求是), 즉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眞理)를 탐구한 것을 말하고 학문에 전념한 사람을 학자(學者)라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학자는 어떤 형태의 정치에도 관여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다산도 퇴계도 정치에 참여한 곡학아세(曲學阿世) 하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정약용은 ‘아방강역고’를 찬(撰)하지 않은 편이 나았고, 퇴계는 유학(儒學)이나 주역(周易)을 공부하지 않았음이 더 좋았을 것이다.

    퇴계가 주역에 매달린 이유는 공자(孔子) 때문이며 오늘날과 같이 점쟁이와 무당들이 들끓은 타락된 사회현상은 바로 주역이라는 점괘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세상천지에 어찌 64괘로 우주의 변화무쌍을 알 수 있단 말이던가. 사단칠정을 살펴보자. 퇴계는 이발이기수(理發而氣隨) 기발이기승(氣發而理乘)라 했고, 율곡은 기발이리지(氣發而理乘)라 주장한 것으로 둘 다 틀렸다.

    머리 좋은 사람이면 40분이면 알 수 있는 것을 400년 동안 유학을 두 갈래로 나눠 학술논쟁에서 당파 정치이해관계로 갈등을 조장한 사람이 바로 퇴계와 율곡이다. 불행하게도 퇴계와 율곡이 뿌린 망국의 당파싸움이 21세기인 오늘까지도 대한민국의 학계, 정계, 재계, 종교계, 사회계 곳곳에 만연하고 있음을 통탄한다. 이 같은 책임은 공자와 맹자의 몫이다.

    묵자는 공자를 가식적이고 위선적이며 비열한 인간이라 평했고, 노자는 교만하고 욕심이 많고 가식적이며 방존한 사람이라고 공자를 그의 면전에서 평한 성인(聖人)이다.

    필자도 노자, 묵자, 이지, 홍수전, 강유위, 오우, 임표 등 같은 선각자들처럼 유교와 공자를 엄중 비판한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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