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태영(金泰瑛)

역사학자(historian)이다. 전반적인 동양과 서양의 역사, 특히 동서양의 고대사(古代史)를 깊이 연구해왔다. 소설과 서정시집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의 책을 섭렵하여 읽었다. 지금까지 약 4만7백 권의 책을 읽었으며, 다방면에 걸친 독서량이 폭넓은 정보수집, 예리한 통찰력, 식견, 그리고 논리적 사고 등을 크게 향상시켜 주었다고 믿는다. 저서로는 󰡔동이배달한민족사(2013), 󰡔폴김의 영어한마디󰡕(1995), 󰡔한자는 동이배달한민족의 글자다󰡕(2016), 󰡔동이배달한민족사󰡕(개정증보)(2019)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약칭 ‘통설(通說)을 뒤집다’란 본서에 수록된 7편과 앞으로 출간할

「奉天通志의 冀州와 1次史料와의 比較 考察(봉천통지의 기주와 1차사료와의 비교 고찰)」,

「高句麗의 建國年代 比定 硏究(고구려의 건국연대 비정 연구)」,

「幽州와 營州 位置 硏究(유주와 영주 위치 연구)」,

「實學者 丁若鏞의 歷史認識 批判(실학자 정약용의 역사인식 비판)」,

「漢四郡의 虛構性과 그 位置 比定(한사군의 허구성과 그 위치 비정)」,

「高句麗의 疆域에 대한 硏究(고구려의 강역에 대한 연구)」,

「新羅의 疆域과 慶州에 대한 硏究(신라의 강역과 경주에 대한 연구)」,

「百濟의 大陸 領土 硏究(백제의 대륙 영토 연구)」,

「高句麗의 千里長城 位置 硏究(고구려의 천리장성 위치 연구)」,

「大震(발해)의 領土 硏究(대진(발해)의 영토 연구)」,

「金毓黻의 歷史認識이 韓國史學係에 끼친 影響(김육불의 역사인식이 한국사학계에 끼친 영향)」 등이 있다.

이밖에 유대인의 역사와 로마의 역사에 대한 단편적인 논문이 있으며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참역사 회복, 언제까지 방관할텐가.’

재미사학자 김태영(69 金泰瑛 미국명 폴 김) 박사가 필생의 역작 <동이배달한민족사> 개정증보판을 발행해 비상한 관심이 일고 있다.

김태영 박사는 최근 출간한 동이배달한민족사 개정증보판(세계출판사) 130권을 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을 포함, 전국 4년제 대학 도서관에 전달했다.

무려 736쪽의 방대한 분량인 동이배달한민족사는 김태영 박사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상고사를 규명하기 위해 반세기에 걸쳐 연구하고 발굴한 사서와 기록, 자료, 지도를 토대로 엮었다. 김박사는 지난 2013년 초판을 발간한 이후 보다 많은 이들이 우리 역사에 다가갈 수 있도록 어려운 어휘들을 다듬고 적잖은 자료들을 보완해 지난 5월 탈고를 마쳤다.

지난해부터 한국의 한 대학에서 동양사를 연구하고 있는 김태영 박사는 ‘글로벌웹진’ 뉴스로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몇 편의 논문을 작성하면서 동이배달한민족사의 개정증보판을 서두르게 되었다”고 말했다.

초판과 증보판의 차이점은 크게 3가지로 우선, 본문의 한자를 과감하게 삭제하였고, 원문을 각주 처리하여 읽기 편하게 하였으며, 갈석산, 패수, 압록수, 요동과 요서 등의 많은 양을 보강하였다. 이 책의 참고문헌만 해도 한국 지나(支那 중국) 일본 영국 미국 등 5개국 300종에 달한다.

김태영 박사는 “초판을 읽고 넘치는 서평을 해주신 독자도 있고 책을 읽고 나니 공중에 붕 뜨는 기분이라고 독후감을 진솔하게 알려준 독자도 있었다. 왜곡으로 점철된 한민족사의 정립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라고 희망했다.

그는 “일제가 왜곡 날조 말살한 식민사학의 노예가 된 강단사학이 해방 70년이 지나도록 바른 민족사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뜻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재야사학이라는 이름으로 동이배달한민족사를 밝히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영 박사가 우리 민족의 참역사를 규명할 수 있었던 것은 현존하는 거의 모든 역사서, 지리서들을 독파하고 교차확인하는 독특한 검증방식 덕분이다. 가령 지나와 일본의 역사서들이 그들의 시각대로 기록돼 있다 해도 동시대를 기록한 복수의 문헌들을 비교 분석하면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사실들이 나오는 것이다.

김태영 박사는 “우리 역사의 가장 큰 문제는 단군조선을 비롯, 고구려, 백제, 신라, 대진, 그리고 고려의 자랑스런 옛 민족사가 한반도에 존재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는 점이다. 중원대륙의 산서성(山西省)에 우리 민족의 모든 자연지형과 지리지명들은 지나의 문헌들에 명명백백하게 있는 사실이다. 왜 있는 것도 믿지 않고, 찾으려하지 않을까”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하(夏)나라 우공이 9주를 나눌 때 기주(冀州)가 산서성이고, 황하의 동쪽인 하동(河東)이 산서성이고, 고죽국이 산서성에 있었다. 고죽국의 두왕자 백이숙제가 고사리를 캐먹다 죽었다는 수양산이 오늘날의 중조산으로 산서성에 있고, 고구려의 땅이 고죽국이었다고 <수서>, <구당서>, <신당서>를 찾아보니 압록수(마자수, 대요수, 소요수, 염난수)가 산서성에 있더라. 그뿐인가. 요수(압록수)가 발원하는 요산(遼山)은 산서성에 있고, 국내성, 평양성, 안시성이 모두 산서성에 있으며, 고구려가 요동이요, 요동이 산서성이며, 패수가 산서성에 있고, 갈석산이 산서성에 있다”고 강조했다.

김태영 박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진실을 모르는 것은 우선 방대한 1차사료와 문헌자료들을 읽지도 않고 선입관과 고정관념, 왜곡 날조된 일제식민사학에 세뇌되어 부화뇌동한 얼빠진 사학자들 때문이고 역사 문제의식이 부족한 언론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태영 박사는 “왜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들은 역사적 사실과 진리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면서 취한 사람처럼 정신을 못 차리는가. 참된 민족사를 집필하지 않더라도 왜곡으로 점철된 동이배달한민족사의 진실은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참된 학자라면 말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까지 약 3만7천권의 책을 연구했다는 김 박사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독서는 계속될 것이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이라면 역사학이 모든 학문의 근간(根幹)임에 동의할 것이다. 다방면의 독서로 인한 정보수집 뿐만 아니라 예리한 통찰력, 직관 그리고 식견의 향상이 왜곡으로 점철된 동이배달한민족사(東夷倍達韓民族史)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에 ‘폴김의 한민족 참역사’를 연재하는 김태영 박사는 저서로 <동이배달한민족사>, <폴김의 영어 한마디>, <한자는 동이배달한민족의 글자다>가 있다. 논문으로 「高句麗의 遼東 遼西 位置에 대한 小考」, 「高句麗의 鴨綠水 位置 硏究」, 「浿水의 位置 硏究」. 「碣石山의 位置 硏究」, 「奉天通志의 冀州와 1次史料와의 比較 考察」, 「高句麗의 遼東 位置 硏究」, 「孤竹國 位置 硏究」, 「高句麗의 建國年代 比定 硏究」, 「幽州와 營州 位置 硏究」 등이 있다. 이밖에 유태인의 역사와 로마의 역사에 대한 단편적인 논문이 있다.

김태영박사는 올해말까지 본국에서 연구 활동을 마치고 내년초 자택이 있는 뉴욕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동이배달한민족사’ 집필 후기
“민족사를 집필할 자격이 있는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야하고 노다지를 캐려면 금광을 찾아 금광산으로 가야하는 법이거늘, 단군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대진, 그리고 고려의 자랑스런 옛 민족사의 중원이었던 지금의 산서성(山西省)에 모든 자연지형과 지리지명들이 있는데도 왜 믿지 못하고 찾으려하지 않을까. 우선 방대한 1차사료와 문헌자료들을 읽지도 않을뿐더러 선입관과 고정관념 그리고 왜곡 날조된 일제식민사학에 쇠뇌되어 부화뇌동한 얼빠진 사학자들 때문일 것이다.

하(夏)나라 우공이 9주를 나눌 때 기주(冀州)가 산서성이고, 황하의 동쪽인 하동(河東)이 산서성이고, 고죽국이 산서성에 있었고, 고죽국의 두왕자 백이숙제가 고사리를 캐먹다 죽었다는 수양산이 오늘날의 중조산으로 산서성에 있고, 고구려의 땅이 고죽국이었다고 수서, 구당서, 신당서가 외치고 있어 찾아보니 그 땅이 산서성이요, 압록수(마자수, 대요수, 소요수, 염난수)가 산서성에 있으며, 요수(압록수)가 발원하는 요산(遼山)이 산서성에 있고, 국내성, 평양성, 안시성이 모두 산서성에 있으며, 고구려가 요동이요, 요동이 산서성이며, 패수가 산서성에 있고, 갈석산이 산서성에 있는데, 왜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들은 역사적 사실과 진리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면서 취한 사람처럼 정신을 못 차리는가. 참된 민족사를 집필하지 않더라도 왜곡으로 점철된 동이배달한민족사의 진실은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참된 학자라면 말이다.

2018년 10월 20일(금) 단군학회에 高句麗의 遼東 遼西 位置에 대한 小考란 논문을 발표하고 학회지에 게재를 부탁하였으나 필자의 주장은 “논증을 위해 중요한 자료에 대해 왜곡하거나 축소하여 제시하고 있다”는 이유로 학회지에 실어줄 수 없다고 거절을 당하였다. 당시 필자가 제시한 1차사료와 문헌자료는 33종류였고 역사학자의 양심에서 왜곡하거나 축소한 점이 없었다. 이들의 심사평은 가소롭기 그지없다. 역사학의 기초사료인 사마천의 사기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으면서 “사료를 왜곡하였다”느니, “기존학설을 비판하지 않고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였다”느니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반도에 요동, 요서, 압록수, 패수, 갈석산, 한사군이 있다고 주장하는 엉터리를 학계의 통설이라 하고, 1차사료와 문헌 자료에 의해 밝힌 역사의 진실은 ‘재탕’이 아니기 때문에 게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저자의 생각으로는 한반도에 있지도 않았던 지명들을 마치 한반도에 있었던 것처럼 날조한 것이 사료의 왜곡이고 축소라 주장한다.

한국의 현대사로 박사학위논문을 써 학위를 받은 사람이 한자로 기록된 4,022권의 방대한 25사를 어떻게 읽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지혜가 있는 것도 아닐진대. 논문이란 ‘의견을 논술하는 글’이고 ‘연구 결과를 발표한 글’로써 논자의 주장이 있어야하고, 독창성이 있어야하며, 설득력이 있고, 검증이 가능해야 하는바 남의 논문을 모아 짜깁기한 주장도 없고 독창성도 없는 다른 사람과 똑같은 소리를 하는 논문은 논문이고, 수많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새로운 역사적 사실인 진리를 밝히는 것은 학술적이지 못하다니 어불성설이 아니고 무엇인가. 논문을 쓸 때는 반드시 1차사료나 문헌자료에 근거하여야 하고 남의 논문이나 단행본은 2차자료로 참고해야 함은 논문을 쓰는 학자라면 다 아는 기본이다. 자신이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틀렸다고 평하는 것은 학자의 기본자세가 아니다. 자신이 연구한 분야가 아니면 함부로 비평하는 것이 아니라는 평범한 예의는 갖추어야 할 것이다.

동이배달한민족의 국조라 하는 단군왕검에서 유래된 단군을 취하여 이름붙인 ‘단군학회’가 분명할진대 단군도 식민반도사학의 철의 장막에는 별 수 없는 모양이다. 고구려가 망한지 1,351년이 지난 지금에도 역사학자란 사람들은 역사의 진실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일신의 안위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민족과 국가에 반역행위를 하고 있다. “사물의 이치가 드러나고 감추어지는 데는 때가 있으나 끝까지 숨겨지는 것은 없다.(時有顯晦理無終秘)”라 했다. 산서성에 단군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대진, 고려가 위치했었다는 역사적 진실이 반드시 밝혀지리라 믿는다. 수많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가 그렇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궁형을 당하면서도 <사기>를 섰고, 좌구는 실명된 후 <국어>를 지었으며, 손빈은 발이 잘린 뒤에 <병법>을 썼고, 굴원은 추방당한 후 이소를, 한비는 감옥에 갇힌 후 <설난>과 <고분>을 지었는데 이들은 모두 울분과 분노 때문에 불후의 명작을 남긴 사람들이다. 망해가는 조국 초나라를 구하고자 홀로 외쳤건만 듣는 사람들이 없어 굴원은 “衆醉獨醒(사람들은 취해있는데 홀로 깨어있다)”라고 울부짖다가 결국 멱라강에 투신한 조국을 사랑했던 애국자 영웅... 언제쯤 이 땅에도 많은 굴원이 나타날까.

동이배달한민족사의 노다지와 잡아야할 호랑이가 바로 산서성에 있음을 만천하에 밝히면서, 지나와 일제의 역사 왜곡, 날조, 조작에 울분을 토하고 이 땅의 귀막고 입막고 눈가린 식민반도 역사학자들에게 분노를 느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