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pril 16, 2012

개천절(開天節) 제2부

● 환웅이 다스리던 배달국

환국의 말기에 거발한(居發桓) 환웅(桓雄)이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뜻)의 숭고한 사상(思想)과 함께 무리 3,000명과 천부인 3가지 (天符印 三種: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와 풍백(風伯: 입법담당), 우사 (雨師: 행정담당), 운사(雲師: 사법담당)를 거느리고 BC 3898년 음력 10월 3일 신시 (神市)에 도읍(都邑)을 정하고 국호를 배달국(倍達國)이라 하여 신시개천 (神市開天)이 시작되었다.

한자는 뜻 글자로 배달(倍達)이란 글자를 풀이하면 배(倍)는 사람 인(人)변에 설입(立)과 입구(口)가 있어 “사람의 입이 섰다는 뜻으로 사람이 이론을 세워 진리를 얻었다”이고 달(達)은 책받침(辶) 변에 행복할 행(幸)자로 된 글자로“책에서 행복을 얻다”란 뜻이다.

따라서 배달(倍達)이란“책에서 행복을 얻어 진리를 터득하다”의 뜻이며 배달민족이라 할 때는 “책에서 행복을 얻어 진리를 터득한 도(道)를 통한 민족”이란 뜻이된다. 간단히 말하면, “도(道)를 통한 민족”이란 뜻이다.

원래 도(道)는 우리 동이배달한민족의 천인지(天人地) 삼원일체(三/原一體) 오행(五行) 우주본체 사상의 실천과정으로 노자(老子)의 <도덕경> ‘이도장(夷道章)’에도, 大道甚夷民甚好 (대도심이민심호) “큰도는 동이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이다.”라는 내용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개국 당시 배달국의 도읍지(都邑地)인 신시(神市)를 현 길림성(吉林省) 장춘(長春)으로 보는 견해와 현, 내몽고 적봉(赤峰)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내몽고 적봉은 요녕성(遼寧省) 서북쪽으로 1906년 일본인 고고학자 도리이류조( 鳥居龍藏)가 요동지방 지표조사(地表調査)를 하던중 신석기 시대(新石器 時代) 유물과 적석묘(積石墓: 돌로만든 무덤)를 발견하여 동이족 (東夷族) 의 문화 (文化)인 홍산문화(紅山文化)로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선 유물임이 판명된 곳으로 필자는 이곳 내몽고 적봉(赤峰)과 길림성 장춘 모두를 배달국(倍達國)의 도읍지인 신시(神市)였던 것으로 보고싶다. 사서(史書)에 언제 도읍지를 옮겼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1,565년 동안 한곳에만 도성(都城)이 있어야 한다는 법(法)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산서성(山西省)은 치우천자가 개척한 땅

배달국의 14대 환웅인 자오지(慈烏支: 치우) 천황은 영토 (領土)를 크게 넓혔던 분이다. 대대로 환국(桓國)과 배달국(倍達國)이 있던 요동(遼東) 즉, 동북 아시아 전지역과 산동성(山東省)과 하남성(河南省)을 포함하여 치우천황이 개척한 땅인,황제헌원 과의 10년 전쟁으로 유명한 탁록(涿鹿: 현 산서성山西省 최남단으로, 운성시 아래 동서 35km 남북 7km의 운성염지運城鹽池 인 현재는 해지解池 일대이며 그곳 지명으로 해량解梁 해진解鎭등으로 부르다가 2009년 현재는 해주解州로 지명이 또 바뀐 곳이고 운성염지를 단군조선 때는 북해北海 혹은 창해蒼海라고 불렀다)이 있는 산서성(山西省)과 회대지방(淮岱地方: 강소성) 를 총 막라한 강역이였다.

이맥(李陌) 어른이 지은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의 기록에, 蚩尤天王西征涿芮 南平淮岱 披山通道 地廣萬里至 (치우천왕서정탁예 남평회대 피산통도지광만리지) “ 치우천왕이 서쪽으로 탁예를 정벌하고 남으로 회대를 평정하여 산을 뚫고 길을내어 땅의 넓이가 만리에 이르렀다.”라고 되어있다.

탁예(涿芮)는 탁록에 있던 지명(地名)으로 “탁예”의 ‘예(芮)’자는 ‘풀싹이 작고 연할예’, ‘물가예’, 혹은 ‘방패끈예’자인데 현 지나대륙(支那大陸) 지도의 산서성(山西省) 최남단 황하강(黃河江)이 꺾이는 지점에 “예성(芮城)”이란 지명이 아직도 선명 (鮮明)하게 남아있다.

치우천자 (蚩尤天子)때는 산동성(山東省) 광요(廣饒)와 하남성(河南省) 진류(陳留)에 도성(都城)를 두었으며 단군조선은 말할것도 없고 고구려, 백제, 신라, 대진(발해), 고려때까지도 우리 동이족(東夷 族)의 영토였던 산서성 (山西省)은 치우천자가 개척(開拓)한 땅인 것이다.

● 배달국18대 환웅(桓雄)의 재위(在位)연대

1세 거발한(居發桓: BC3898-BC3804;재위 94년), 2세 거불리(居佛理:BC3804-BC3718;재위 86), 3세 우야고(右耶古: BC3718-BC3619; 재위 99), 4세 모사라 (慕士羅:BC3619-BC3512; 재위 107), 5세 태우의(太虞儀: BC3512-BC3419; 재위 93), 6세 다의발(多儀發: BC3419-BC3321; 재위 98), 7세 거련(居連: BC3321-BC3225; 재위 96), 8세 안부련(安夫連: BC3225-BC3152; 재위 73), 9세 양운(養雲: BC3152-BC3056; 재위 96), 10세 갈고(葛古) 혹은 독로한 (瀆盧韓: BC3056-BC2967; 재위 89), 11세 거야발(居耶發: BC2967-BC2875; 재위 92), 12세 주무신(州武愼: BC2875-BC2794; 재위 81), 13세 사와라(斯瓦羅: BC2794-BC2727; 재위 67), 14세 자오지 (慈烏支) 혹은 치우천황(蚩尤天皇: BC2727-BC2618: 재위109년 151세까지 삼), 15세 치액특(蚩額特: BC2618-BC2529; 재위89), 16세 축다리(祝多利: BC2529-BC2473;재위 56), 17세 혁다세(赫多世: BC2473-BC2401; 재위72), 18세 거불단 (居弗檀: BC2401-BC2333;재위68) 환웅으로 모두 18대 1,565년간 존속했던 어느 누구도 부정(否定)할 수 없는 나라이다.

Tuesday, April 10, 2012

개천절(開天節) 제1부

개천절(開天節)의 시작은 배달국(倍達國)때 부터

우리 민족사(民族史)는 금년(2011)이 5,909년이다. 오는 10월 29일(음력 10월 3일)이 5,909년째 맞는 개천절(開天節)인 것이다.

● 도(道)를 통한 안함로

안함로(安含老) 어른이 쓴 <삼성기전 三聖記全 > ‘상편’의 서두(書頭)에 이런 기록이있다. “ 吾桓建國最古 有一神在斯白力之 天爲獨化之神 光明照宇宙 權化 生萬物(오환건국최고 유일신재사백력지 천위독화지신 광명조우주 권화생만물) 우리 환국(桓國)이 세상에서 최초의 국가이고 유일한 신(神)인 흰힘(白力)이있어 이 신(神)이 광명을 우주에 비춰 권능으로 만물을 낳았다.”

우주만물(宇宙萬物)의 본체(本體)는 희다(白)는 뜻에서 흰힘(白力)을 유일신으로 본 것이다. 흰것(白)은 금(金)이며, 금(金)은 만유만물의 생명체의 본질이며 근원이기 때문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 ‘상원장象源章’에,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 “인간의 법은 땅에있고 땅의 법은 하늘에있으며 하늘의 법은 도(道)에있고 도(道)의법은 자연에 있다”라고 씌어있다.

대자연의 이치(理致)를 깨달아 만유만물(萬有萬物)의 본체를 흰힘(白力) 으로 본 안함로 (安含老) 어른은 도(道)를 통했던 분으로 보인다. 그리스의 철학자 탈래스(Thales: BC640-BC546)는 “만물의 근원은 물(水)이다.”라고 주장했지만, 오행(五行: 목, 화, 토, 금, 수) 법칙에 의하면 물(水)은 금(金)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탈래스의 이론(理論)은 옳지않다고 보아진다.

물을 생성하는 이 금(金)이 바로 우주만물 (宇宙萬物)의 본체인 ‘흰(白)것’인 것이다. 한가지 예를들자면 금광을 캐는 사람들은 산에서 샘물이 솟는곳을 찿는데 그 이유는 금(金) 즉, 광물이 물을 생성(生成)하기 때문인 것이다.

● 한임(환인)이 세운 환국(桓國)

우리 동이배달한민족(東夷倍達韓民族) 조상(祖上)이 세운 최초의 나라는 환국(桓國: 桓을 한으로도 읽음)으로 계연수(桂延壽) 선생이 편찬하고 임승국 (林承國) 박사가 번역하고 주해한 <한단고기桓壇古記>에의하면, “BC 7199년에 나라를 세워 한임(桓因), 혁서(赫胥), 고시리(古是利), 주우양(朱于襄), 석제임 (釋提壬), 구을리(邱乙利), 지위리(智爲利) 7세에 걸쳐 역년 3,301년 혹은 63,182년이라고 하는데 어느 연대(年代)가 맞는지 알 수가 없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3,300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단지 일곱분이 나라를 통치했다는 말은 일반 상식(常識)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글자가 없던 당시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전해오는 과정에서 환인(桓仁)들의 이름이 누락(漏落)되었거나 오직 위대한 환인(桓因)들만의 이름을 기록했거나 아니면 적통(嫡統)의 계보(系譜)만을 기록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한자와 한글이 없던 먼 옛날에는 오행(五行: 금, 수, 목, 화, 토)과 간지(幹枝: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 :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해)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오행과 간지법에 의하면, 환국(桓國)은 상원갑자년(上元甲子年) 인 BC 8936년에 환인(桓仁)이 흑수(黑水: 흑룡강을 뜻함)와 태백 (太白: 백두산을 뜻함) 사이 즉, 현 흑룡강성(黑龍江省) 하알빈밑 완달산(完達山) 아래 도읍(都邑)을 정하면서 시작된다.

환국은 5,038년 동안 존속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환기(桓期)로 따지면 금년(2011년)이 10,947년이다. 그러나 환국 (桓國)에 대한 역사(歷史) 기록이 많지 않아 환국의 개국해(開國年)인BC8936 년 부터 민족사(民族史)를 계산하는 것은 무리 (無理)라고 보아진다. 더 연구해야 할 부분이라 본다.

Sunday, April 1, 2012

단군조선(壇君朝鮮)이 신화(神話) ? 제2부

● 현 요하(遼河)는 916년부터 만들어진 지명

거란족 야율아보기가 현재의 내몽고 자치구에 있는 파림좌기(巴林左旗)에 도읍을 정하고 요(遼: 916-1125)나라를 세움으로서 이곳의 하천을 요하(遼河)라고 부르게 된다. 요나라를 세우기 이전의 요하는 하남성과 산서성 혹은 섬서성과 산서성 사이의 황하(黃河)를 요하나 요수(遼水)로 불렀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 할 때의 요수, 요하는 위에서 언급한 황하를 지칭함을 분명히 밝힌다. 고구려가 망하고 248년후에 요나라에 의해 새로 생긴 요하(遼河) 때문에 한국의 재야사학자들도 이에 속아 수(隋)와 당(唐)이 마치 이곳 요녕성까지 처들어 온 것으로 잘못 알고있는 것이다.

현재의 요하는 요녕성 서북부 내몽고 자치구의 노합하(老哈河)와 서랍륜하(西拉倫河)를 뜻한다. 홍산문화가 발견된 지역은 노합하의 상류에 있는 적봉시(赤峰市)의 동북에 위치한 홍산(紅山: 붉은 산을 의미)으로 단군조선(壇君朝鮮: BC2333-BC237)의 5경(五京: 다섯 곳의 도읍지)의 한 곳으로 <삼국유사>에서 말한 무엽산(無葉山)으로 보이는 곳이다.

요(遼)나라의 도읍지인 파림좌기 남쪽 약 441리에 위치한 산이다. 홍산은 붉은 산으로 철 성분이 많은 바위 산이기 때문에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나무가 자라지 않으니 나무 잎은 존재 할 수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무엽산(無葉山: 나무 잎이 없는 산)이라 했던 것으로 보인다.

● 역사 말살이 곧 그 민족의 말살

지나의 역사에도 신화가 있고, 단군조선의 기록에도 신화가 있는데, 왜 지나의 신화는 문제가 되지않고 단군왕검의 출생(出生) 신화만이 문제가 되어, 단군조선(壇君朝鮮)의 역사가 송두리째 부정되고, 매도되고, 말살되어야 한단 말인가?

역사학자 토인비는 “ 한 민족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그 민족의 역사를 말살(抹殺)하는 것이 식민제국주의자들의 철학이다.”라고 했다. 일본X들이 우리민족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2,096년의 찬란한, 실존(實存)했던 단군조선을 신화로 둔갑시켜 매장(埋藏)시켰다.

특히 일본인 이마니 시류(今西龍: 1875-1932)가 식민사학을 주도했고, 그의 제자였던 반민족 사학자 이병도와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의 대학 강단에서 식민사학(植民史學)을 가르치고있는 민족반역자들이 공범자들이며, 단군조선의 역사의 실체를 두려워하는 일부 기독교인들 때문에 단군조선의 역사가 신화(神話)로 된 것이다.

● 단군조선은 실존했던 나라

단군조선은 신화가 아닌 실존했던 나라이다. 단군왕검( 왕검은 이두어이고, 왕검을 환검桓儉이라고도함)은 BC 2370년 5월 2일 인시( 새벽 3시 - 5시사이)에 태어났으며,아버지는 배달국 (倍達國)의 18대 거불단환웅(居弗檀桓雄)이다. 왕검은 14세때 비왕( 왕을 보좌하는 왕)이 되어 24년간 있다가, 무진년인 BC 2333년에 아사달(阿斯達: 이두어로 새로운 땅 혹은 새로운 산이란 뜻으로, 필자는 현 산서성山西省 태원太原으로 비정한다.)에 도읍(都邑)을 정하고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비왕으로 24년간, 단군으로 93년간, 130세까지 살았다. 단군조선(壇君朝鮮)은 지나의 왕조인 요(堯), 순(舜), 하(夏), 은(殷), 주(周)의 상국(上國)으로 조공을 받았으며 왕조가 바귈때마다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음을 여러 사서에서 볼 수 있다. 단군조선(壇君朝鮮)은 1대 왕검(일명 환검)부터 47대 고열가 단군까지 2,096년간의 장구(長久)한 역사를 누린 어느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실존(實存)했던 국가이다.

암울한 시대를 만나 식민사학자(植民史學者)란 오명(汚名)을 갖게 되었던 이병도 선생도 작고(作故)하기 전에는 “ 단군(壇君)은 신화(神話)가 아닌 우리 국조(國祖)다.” 라고 했다하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단군(壇君)이 국조가 아니라 왕검(王儉: 환검桓儉)이 국조라 했더라면 더 휼륭했었을 것이다. 단군이란 고천제(告天祭: 하늘에 제사지냄)를 지낼 때 주인(主人)이자 천자(天子)란 직책이지 사람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단군조선 때의 단군(壇君)은 한분이 아니고 모두 47분이였다. 현재의 대통령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