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18, 2012

단군조선(壇君朝鮮)이 신화(神話)? 제1부

● 모계사회(母系社會)의 신화들

태호복희씨(BC 3512)의 어머니는 신모(神母)인데 무지개가 둘러싸, 무지개의 감응(感應)을 받아 잉태하여 복희씨를 낳았다고 사서에 기록되어있다. 마치 동정녀인 처녀가 애를 낳았다는것과 무엇이 다른가! 분명히 신화(神話)다.

염제신농씨(BC 3071)의 어머니는 여등인데 용(龍)과 관계하여 염제신농씨를 낳았다고한다. 요즘 같으면 유치원생들도 믿지 않을일 이다. 이것 역시 신화이다.

소호금천씨(BC 2578)의 어머니는 황아(皇娥)인데, 궁상(窮桑)이라는 들판에서 놀고있는데, 자신이 백제(白帝)의 아들이라 일컫는 신동(神童)과 교합하여 소호금천씨를 낳았다고 한다. 신동이란 재주와 슬기가 남달리 뛰어난 아이란 뜻이다. 말하자면 미성년자인 어린애하고 관계하여 소호를 낳았다는 말이다. 어린애에 대한 이상성욕자를 페더파일(pedophile)이라고 하는데 요즘같으면 징역 5년정도 받을 수 있는 대 사건이다. 이것 또한 분명한 신화인 것이다.

제곡고신의 어머니는 간적이란 여자인데, 제비알을 삼키고 임신이 되어서 제곡고신을 낳았다고 한다. 얼마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인가! 분명히 신화이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영국사람들이 ‘제비’와 ‘삼키다’라는 영어 단어를 만들때 이 제곡고신(帝곡高辛)의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듯 하다. 제비를 swallow라 하고, 삼키다란 단어도 swallow이다. 말하자면 Ganjeok swallowed an egg of swallow. ( 간적이 제비 알을 삼켰다.) 이다.

요임금은 임신한지 14개월만에 낳았다고 한다. 7개월이나 8개월에 나왔다는 칠삭둥이, 팔삭둥이란 말은 들어보았어도 14개월만에 애를 낳았다는 것은 처음이다. 신화이다. 주(周)나라를 세운 후직의 어머니는 강원이란 사람인데, 길을 걸어 가다가 거인의 발자취를 밟고 갔더니, 애를 배어서 후직을 낳았다고 기록되어있다. 분명히 신화이다.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의 어머니는 큰 연못에서 용(龍)과 교합하여 유방을 낳았다. 다시말하면 한나라 유방은 사람 자식이 아니고 용X끼인 것이다. 유방(劉邦)의 탄생 역시 신화(神話)로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지나(支那: 많은 가지의뜻으로 중국의 옛이름)인들이 자신의 조상들이라고 주장하는 태호복희, 염제신농, 소호금천, 제곡고신, 요임금, 후직, 그리고 한나라 유방의 탄생이 모두 신화이다.

동양(東洋)은 말할것도 없고 서양(西洋)의 역사도 신화로 기록된 부분이 많다. 역사(歷史)란 사실을 기록한 것이고, 신화(神話)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역사가 형이하학( physical)이라면, 신화는 형이상학( metaphysical)의 기록이다.

한 나라의 제왕(帝王)이 나타날 때는 이 제왕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점이 있다. 그런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신화를 사용 한 것이다. 지나(支那)쪽의 신화와 단군조선의 신화를 잘 비교, 검토해보면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태호복희씨, 염제신농씨, 소호금천씨, 제곡고신, 후직, 유방등의 출생 신화에서는 아버지가 없고, 어머니만 언급(言及) 되어있다. 이것이 시사(示唆)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바로 모계사회(母系社會: matrilineal society)를 뜻한다.

옛날에는 부족(部族)들을 동물의 이름으로 대신했다. 예를들면, 염제신농씨나 치우천황같은 분은 호랑이족 으로, 태호복희씨는 백사(흰뱀)족으로, 소호금천씨는 독수리족, 황제헌원은 곰족으로 표현했다.
지금의 백마부대, 청룡부대, 맹호부대 식으로 군대 사단을 지칭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백마부대에서 전역한 사람을 백마(白馬: 흰말)라고 할 사람은 없다.

● 왕검단군 출생은 부계사회

단군왕검(壇君王儉)의 출생 신화에서 곰과 호랑이가 한굴속에 살고 있었다는 말은, 곰족의 여자와 호랑이족의 여자가 한마을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은유적(隱喩的) 으로 나타낸 것이며. 쑥과 마늘을 등장시킨 것은 그 당시 사회규범(社會規範)등을 나타낸 것일 것이다.

수 천년의 모계사회를 부계사회로 전환하는 일은 쉬운일이 아닌 대 혁명이였다. 단군왕검의 출생을 신화(神話)로 표현하므로서 부계사회(父系社會: patrilineal society)를 표방하고 나타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4,500년전이 모계사회였고, 그당시 곰족이 많이 살았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고고학적인 유물발굴이 있었다.

이름하여 홍산문화(紅山文化)라고 하는데, 1906년 일본인 도리이류조(鳥居龍藏)가 요동지방 지표조사를 하던중 요하지역 (遼河地域: 요녕성 서북 현 내몽고 자치구)에서 신석기시대 유물(遺物)과 적석묘( 積石墓: 돌로만든 무덤)를 발견했다. 1955년 이를 홍산문화라 이름하고, 계속 발굴조사중, 1982년 요녕성(遼寧省) 우하량(牛河梁)에서도 같은 유물이 많이 발굴되어 세상을 놀라게하고 있다. 세계 4대 문명 발상지로 황하, 인더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라고 한다.

황하 문명(黃河文明)이 주변 아시아의 모든 문명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배웠고 그렇게 알고있으나, 이 홍산문화의 유물 발굴로 인하여, 우리 선조였던 환웅천황의 배달국(倍達國)과 단군조선의 땅인 이곳에서 발굴된 동이족(東夷族)의 문화인 홍산문화가 황하문명 즉 앙소문화보다 1,500년이 앞선 문화임이 밝혀졌다. 이 유물들에서 볼 수있는 것처럼, 수많은 웅녀 곰조각상이 나왔고, 요녕성 우하량에서 발굴된 것은 “여왕국”이라한다. 당시의 모계사회와 곰족이라는 사람들이 살고있었다는 사실을 고고학적으로입증한 것이다.

Wednesday, March 7, 2012

중국이 아니라 지나(支那)로 불러야

경도(동경) 80도를 기준하여 오른편 동쪽인, 동북아시아라고 하는 외몽고, 내몽고 동쪽, 흑룡강성(黑龍江省), 길림성(吉林省), 연해주, 요녕성(遼寧省), 하북성 북경근처, 그리고 한반도에서 한족(桓族) 일명 고산족(高山族)들이 사냥을 하고 유목생활을 하며 농사를 짓고 살던것이 우리 조상의 시발(始發)이다. 한(桓)은 고산족을 뜻하고, 한(韓)은 유목민을 뜻하며, 동쪽에 살던 사람을 동이(東夷) 라고하고, 도(道)를 통한 것을 배달(倍達)이라하여 우리민족을 동이배달한민족 (東夷倍達韓民族)이라고 부른다.

● 신석기시대 인류의 이동
사람들이 동북아시아에서 최초로 유목생활(遊牧生活)과 사냥을 했다는 증거로 그동안 발견된 빗살무늬 토기 분포지역을 잘 관찰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빗살무늬 토기는 유목민(遊牧民)들이 사용하던 토기(土器)로 토기 밑부분이 뾰쭉하면서 둥그럽게 된 모양의 토기를 말한다. 빗살무늬 토기가 발견된 지역은 한반도인 수양개, 연해주지역, 바이칼호수 근처, 알타이산맥 근처, 연해주동쪽 일본열도인 홋가이도, 그리고 캄차카로, 북동아시아에만 한정(限定)되어있다. 황하(黃河)의 이남(以南)에서는 빗살무늬 토기가 발견된바 없다. 또한 1987년에 한반도 남해에서 약 6,000년경의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 인골(人骨)이 발견된바 있고, 하북성(河北省) 북경지역에서 약 10만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推定)되는 하토원인(河토原人)의 인골이 발견되었으며, 1988년에는 바이칼 호수 아랫쪽에서 약 7,000년 이상의 포파노바 인골이 발견되었다. 1944년에는 알타이산맥 남단에서 약 1만년 전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냥도구인 흑요석이 발견되었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아시아 북.동쪽 즉 동북 아시아에서 살았으나, 인구가 증가하자 점차 황하강 근처로 이동하게된 것이다.

● 지나와 한민족의 관계
지나인(支那人)들은 자신들의 조상을 3황(皇)( 태호복희, 염제신농, 황제헌원) 5제(帝)( 소호금천, 전욱고양, 제곡고신, 요, 순)에서 찿는다. 그들은 8명의 조상에서 갈라져나간 계보를 가지고있다. 우리 동이배달한민족은 한국(桓國: BC 8936), 배달국(倍達國: BC 3898), 단군조선 (壇君朝鮮: BC 2333)으로 이어진 장자(長子), 장손으로 부계(父系)인 적자(嫡子)로 이어진 민족사(民族史)를 가지고 있는 반면, 지나는 우리의 방계(傍系: 직계에서 갈라져나간 계통)나 서출(庶出: 첩의 소생)로 모계(母系)로 이어진 나라이다. <산해경>의 기록을 보면, 大荒之中有山名曰不咸 肅愼之國在白民國 北有樹曰 雄常先八代帝 於此取之(대황지중유산명왈불함 숙신지국재백민국 북유수왈웅상 선8대제 어차취지) “ 크게 거친땅(만주) 가운데 산이있으니 이름하여 불함산 (백두산)이다. 숙신국(단군조선)에있다. 백민국( 백의민족으로 장자이고 동이족중 제일 으뜸임)의 나라에 있으며, 북쪽에 나무가 있는데, 이름하여 웅상이라한다.
팔대제(3황5제)가 여기서 이 웅상의 나무를 취하였다.” 웅상(雄常)의 나무를 취하였다는 말은 제도(制度)나 문물(文物)뿐만 아니라 민족의 뿌리가 동이배달 한민족에게서 비롯됐다는 뜻이다.
지나의 왕조는 모두 외자로 되어있다. 요, 순, 하, 은(상), 주, 노, 위, 정, 진(秦), 조, 체, 연, 송, 제, 진(晉), 초, 진(陳),한, 수, 당, 송, 요, 금, 원, 명, 청 모두 한 글자로된 이름이다. 반면에 우리는 한국(정통국), 배달국, 단군조선, 진한, 변한, 마한, 북부여, 동부여, 남부여, 졸본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대진국(발해), 고려로 반드시 2글자 이상으로 되어있다. 외자인 국호(國號)는 우리 동이배달한민족의 제후국임을 암시한다. 사실상 요, 순, 은(상), 주는 단군조선(壇君朝鮮)의 제후국으로 단군조선에 조공(朝貢: 종주국에게 속국이 예물을 바침)한 기록이 사서에 있다.

● ‘중국’이란 이름의 등장
중국(中國)이란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단군조선 제 12대 아한단군(阿漢壇君: BC 1834)때 국태사(國太師)로 있던 유위자(有爲子)이다. 공자(孔子)의 7대손인 공빈(孔斌)이 쓴 <동이열전>의 기록을 인용하면, 有爲子以天生聖人 英名洋溢乎中國 伊尹受業於門(유위자 이천생성인 영명양일호중국 이윤수업어문) “ 유위자는 하늘이 낸 성인이며 그에게서 넓고 뛰어나게 좋은 중국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이윤이 그의 문하에서 배웠다.” 라고 되었있다. 여기서 이윤(伊尹)이란 상(商:은)나라 탕(湯)왕이 상나라를 세울때 지대한 공(功)을 한 재상(宰相)을지낸 개국공신 이윤을 말한다.
중국(中國)은 원래 ‘사이중(中)’에 ‘땅국(國)’자로 “가운데 사이의 땅”이란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다. 아한단군이 유위자를 국태사(國太師)로 삼은때는 병진 30년인 BC1805년으로, 하(夏)나라가 몰락하고 상(은)나라가 시작될 무렵이다. 지나의 25사나 우리의 역사 어디에도 중국(中國)이라는 천자국(天子國)은 없다. 원래 “가운데 사이의 땅의 뜻인 중국(中國)”에있던 나라들은 ‘가운데 사이의땅’ 이 상징하듯이, 너무나 작은 소국(小國)들이였다. <맹자盟子>의 기록에, 은(상)땅은 70리였고, 주(周)나라 땅은 100리였다라고 기록되어있다. 또한 夏后殷周之盛 地未有過千里者也(하후은주지성 지미유과천리자야) “ 하의 뒤를이은 은나라 주나라때의 흥성할때의 땅(국토)은 천리를 넘지못했다.”라고 <맹자>에 기록되어있다. 옛날 지나의 나라들은 모두 황하(黃河)아래 하남성(河南省)에만 국한(局限)되어 있는 아주 작은 나라들이였다. 그래서 ‘가운데 사이의 땅’이란 뜻으로 중국(中國)인 것이다.
<통지通志: 정초>와 <자치통감資治通鑑: 사마광>의 기록을 보면, “중국(中國)의 조상은 사이(四夷)에서 생겼으며 사이는 고구려, 백제, 신라, 왜의 부족(部族) 일부에서 갈라져 나간 것이다.”라고 되어있다. 그들에게는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엄격하게 따지면 중국(中國)은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의 지족(支族)인 것이다.

● ‘중국’은 1912년에 나온 신생어
지금 우리가 부르는 ‘국호國號’로서의 중국은 ‘중화민국’의 약칭(略稱)으로, 1911년 손문(孫文)이 호북성(湖北省) 무창(武昌)에서 3민주의(三民主義), 즉 민족, 민권, 민생을 부르짖으며 북경에 있던 청(淸)나라를 타도하자는 신해혁명 (辛亥革命)을 성공한 다음해인 1912년 1월 1일 이후부터이다.
1949년 10월1일 모택동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하여 지금의 ‘중공’이 된것이며, 손문의 ‘중화민국’의 약칭이 ‘중국’인 것이다. 말하자면 중국(中國)이란 정식국호는 1912년 1월 1일 이후부터 나온 신생어(新生語) 이다.
따라서 대만(臺灣)에있는 중화민국의 약칭이 ‘중국’이고, 지나본토에 있는 중화인민 공화국의 약칭은 ‘중공’인 것이다. 그러므로, 중화민국과 중화인민 공화국을 한꺼번에 부를때는 옛날부터 사용했던 ‘지나(支那)’가 가장 적합한 명칭이다. 또 한가지 중화인민공화국이나 중화민국의 약칭을 첫글자인 중(中)과 끝자인 국(國)을따서 ‘중국(中國)’으로 고집한다면, 우리는 한국(韓國)이라고 부르지말고 ‘대국(大國)’이라고 불러야한다. 대한민국의 첫글자인 ‘대(大)’자와 마지막 자인 ‘국(國)’자를 따서 ‘대국大國’이라 해야 옳단 말이다. 반드시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어야만 대국이되는 것은 아니다. 민족정기(民族精氣)가 살아있고, 역사의식(歷史意識)이 있으면 족하다.

동이배달한민족(東夷倍達韓民族) 상고사는 9,700년

● 한민족사란 ?
단제 신채호 선생은 “ 역사란 아와 피아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발전하고 공간적으로 확대되는 심적 활동상태의 기록이다.” 라고 했고, 웹스터(Webster) 사전에는 “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모든 사건을 기록한 것이다.” 라고 정의 하고있다. 또한 한민족사를 지은 이중재 선생은 “역사(歷史)란 집을 짓고 살면서 벼농사를 많이 짓고 산 조상들의 삶과 지혜를 기록한 것이다.” 라고 했다. 따라서 같은 지역에 살고 같은 말을 하며 생활, 양식, 습관, 문화, 역사를 같이하는 인간
집단인 우리 한(韓)민족의 역사가 다름 아닌 한민족사(韓民族史)인 것이다.

● 한민족 상고사(上古史)는
상고사(上古史)는 환국(桓國: BC8936), 배달국(倍達國: BC3898), 단군조선 (壇君朝鮮: BC2333), 북부여(北扶餘: BC239), 동남부여(東南扶餘), 고구려(高句麗: BC213), 신라(新羅: BC57), 백제(百濟: BC213), 대진국(大震國: 발해, 668-957) 까지를 말한다. 약 9,700년 동안의 우리민족사를 동이배달한민족 상고사 (上古史)라 한다. 역사의 3대 요소를 사람(人), 장소(場所), 시간(時間)이라 한다. 고려때 까지도 아시아 전 대륙을 지배했으나, 백제가 망하고, 고구려가 망하고, 고려가 망하면서 조상들의 옛 고토(古土)를 빼앗기고 한반도(韓半島)로 쫒겨온 비참한 신세가 된 것이다. 역사적 인물과 시간은 정확히 알고있으나 조상들의 옛 영토를 빼앗겼기 때문에 장소 즉 당시의 강역(疆域)를 정확히 밝히는 것이 우리 민족사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필자는 당시의 강역(疆域)을 찿아내는데 주력해오고 있다.

● 지명 조작과 역사서 분실
지나(支那: 중국의 옛 이름, China)인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옛 지명을 없애고, 지명을 옮기고, 지명을 다른 이름으로 바꾸고있다. 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중공(中共)은 80년대 초에 3,700자의 한자(漢字)를 바꿔버려 우리가 알 수 없는 글자(간자체)가 되어버렸다. 춘추전국시대인 BC 770 - BC 233때에 노, 위, 정, 진(秦), 조, 채, 연, 송, 제, 진(晉), 초, 진(陳), 12개의 열국이 서로 패권 다툼을 한다. 진나라가 3개 있는데, 진(秦)은 섬서성에, 진(晉)은 하남성에, 그리고 진(陳)은 안휘성에 있었다. 진시황(BC259 – BC 210)이 BC221년에 지나대륙(支那大陸)을 통일하고나서 승상 이사의 말을듣고 세상의 모든 역사서를 불태우고 학자 460명을
땅속에 생매장시킨 사건이 있었다. 이것을 이름하여 “분서갱유焚書阬儒”라 한다. <한서지리지> ‘하71’에는, “번서갱유燔書阬儒”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때 불탄 사서가 모두 단군조선의 역사서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 진나라의 천하 통일은 겨우 황하(黃河) 이남
단군조선의 제후국에 불과한 진(秦)나라가 패(覇: 다른 제후국과 연합하여 또 다른 제후국을 정벌함)를 이용하여 당시의 7웅(七雄)인 연(燕), 한(韓), 조(趙), 위(魏), 제(齊), 초(楚)를 통일한 것은 아시아 대륙 전체가 아니고 단지 황하 아래 섬서성 (陝西省)과 하남성(河南省)에 있던 당시의 작은 제후국(100리의 땅)들을 통일한 것에 불과하다. 황하 북쪽에는 엄연히 단군조선(壇君朝鮮)의 정통성을 계승한 북부여, 동부여, 졸본부여, 고구려등이 고스란히 존재하고 있었다. 진(秦)이 제후국들을 쉽게 통일 할 수 있었던 것은 진나라의 9대 목공(穆公)이 백리해 (百里奚)라는 신하를 기용한 때문이다. 백리해는 하(夏: 하남성 낙양)나라 사람으로 진나라(섬서성 함양)에 가서 재상이 된 사람이며 진(秦)이 당시의 제후국들을 통일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사람이다.

● 사마천의 <사기>로 다시 시작
강소성 패현 사람인 유방( BC 247 – BC195)이란 걸출한 사람이 한(漢)나라를 세우고 대대적인 역사서를 편찬하기에 이르렀을때, 지나(支那: China)의 역사서중 가장 으뜸이라고 하는 사기(史記)는 사마천(司馬遷: BC 145 – 86)이란 사람이 16년에 걸쳐쓴 역사서로 황제헌원(BC 2697)부터 서한 무제때까지 약 3,000년 간의 역사를 기술한 것으로 총 130권으로 되어있다. 이 사기(史記)를 쓸때 서경(書經)을 보고 지었다고 한다. <삼국지> ‘왕숙전’의 기록을 보면, 사마천이 <사기>에 경제(景帝: 제6대 왕)와 무제(武帝: 제7대 왕)의 잘 잘못을 기록했다가 무제가 노(怒)하여 효경본기 (孝景本記)와 무제본기(武帝本記)를 삭제하고 그 때문에 사마천은 부형(腐刑: 남자를 거세하는 형벌)에 처해졌다. 이런 기록으로 보아 당시 사마천 (司馬遷)은 비교적으로 사실에 가까운 기록을 한 것으로 보인다.

● 서경인 환시래(西傾因 桓是來)
사마천의 <사기史記> ‘본문 제 2권’에 다음과 같은 글이있다. 西傾因桓是來 (서경인환시래) “ 서쪽이 기울어졌기 때문에 환(桓)이 왔다” 이다. ‘서쪽이 기울다’란 고산지대를 넘어 왔다는 뜻으로 보인다. 따라서 분명히 환(桓)이란 사람들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왔다는 뜻인 것이다. 당시는 경도(동경) 80도를 경계하여 서장성(西藏省) 남쪽에 곤륜산( 7282 m) 과 신강성(新疆省) 윗쪽에는 천산(승리봉 7439m)이 있는, 경도80도를 기준하여 서쪽은 요서(遼西)라 하고 동쪽은 요동(遼東)이라 한 것 같다. 감숙성 삼위산(三危山)에서 길림성과 함경북도에 위치한 태백산(太白山: 장백산, 불함산,묘향산,백두산)인 이곳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약 10만년 전부터 살았는데 그들 중에 한분이 BC 8936년에 신강성에 있는 천산(天山)에서 도(道)를 통한 사람으로 그를 가리켜 환인(桓因: 한인) 이라고도하고, 안파견(安巴堅)이라고도 한다.

● 한(桓), 한(韓), 한(漢)의 의미
자랑스런 우리 조상들은 배달국(倍達國) 때 만들어진 뜻 글자인 한자와 단군조선 때의 소리 글인 가명(이두어)를 함께 사용해 왔다. 환(桓)은 ‘굳셀환’, ‘클환’으로 “고산족”이란 뜻이고, 한(韓)은 ‘우물난간 한’, ‘나라이름 한’으로 “유목민”이란 뜻이며, 한(漢)은 ‘은하수한’, ‘물이름한’으로 “하천민”이란 의미이다. 따라서 우리 한(韓)민족은 고산족이면서 동북아시아에서 유목생활을 하고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던 민족이다. 이 안파견 혹은 환인은 고산족들 중의 장자(長子) 즉, 장손이였다. 안파견은 형제 9명으로 이들를 사서에서는 구환(九桓)이라고 한다. 이 장손을 백이(伯夷)라고도 하며, 이 백(伯)이란 글자의 의미는 ‘맏형’, ‘큰아버지’, ‘우두머리’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우리 동이배달한민족은 장손으로 우두머리란 뜻 이다.

● 우리는 동이배달한민족(東夷倍達韓民族) 이다
여기서 이(夷)자는 하늘( 一)에서 내려온 활을 잘쏘는 (弓) 사람(人)이란 뜻이다. 이렇게 훌륭한 뜻을 지닌 이(夷)즉, 맏형이고, 우두머리인 백이(伯夷)들은광명(光明)을 숭배하는 민족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광명 즉 해를따라 계속 이동했기때문에 이 백이에게 동이(東夷)라는 명칭이 붙었다. 따라서 우리 한(韓)민족을 정의 하면, 고산족이면서 동북아시아에서 유목생활과 사냥을 하면서 농사를 짓고살던 장자 즉, 장손으로 광명(해)를 숭배한 민족으로 동쪽으로 계속 이동해온 하늘에서 내려온 활을 잘 다루는 지금으로부터 약 11,000년 부터 살고있던 민족이다. 때문에 한민족보다는 “동이배달한민족”이라 명명해야 옳다.

● 동이(東夷)가 인류의 뿌리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에 이런 기록이있다.
東邦曰夷 夷者柢也(동방왈이 이자저야) “ 동방에있는 동이들이 인류의 뿌리다.”
言仁而好生(언인이호생) “ 말이 어질고 젊잖은 도덕군자다.”萬物柢地而出(만물저지이출) “ 만물이 땅밑에있는 뿌리에서 자라나듯이 동이들이 만인류의 철학사상의 뿌리다.” ( 본문해석은 율곤 이중재 선생 저서에서 인용함) 천(天), 지(地), 인(人) 삼원일체(三原一體)와 오행(목, 화, 토, 금, 수) 사상이 동이배달한민족(東夷倍達韓民族)의 우주철학사상(宇宙哲學思相) 이다. 우리 민족은 하늘에서 시작된 민족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하늘의 자식이란 뜻에서 천자(天子)라 하고 천손족(天孫族)이라 한다. 지나(支那)의 채옹(蔡邕)이란 사람이 쓴 < 독단獨斷>이란 저서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있다. 天子夷狄之所稱 父天母地 故稱天子 (천자이적지소칭 부천모지 고칭천자) “ 천자는 이적(동이東夷)의 명칭으로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기 때문에 천자(天子)라 한다.” <신당서>와 <구당서>를 비롯한 수많은 지나(支那)의 사서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동이(東夷)라고 기록되어 있다.

● 한국(桓國: 환국)은 인류 최초의 나라
이들 동이배달한민족은 경도 80도 서쪽에 있는 인류의 발상지(發祥地)라고 하는 파미르고원( The Pamirs)을 떠나 동쪽으로 계속 이동하여 BC 8936년에 흑수(黑水)와 태백(太白)사이, 현 흑룡강성(黑龍江省) 하알빈 밑 완달산(옛날에는 파나류산임)에 도읍(都邑)을 정하고 환국(桓國)을 세워 5,038년간 존속했다. 당시 환국의강역은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로, 12연방국을 가지고 있었던 정통국으로 인류 최초의 국가로 보인다.

● 배달국과 단군조선
BC 3898년 음력 10월 3일에 환웅천황(桓雄天皇)이 배달국(倍達國)이라는 나라를 세워 1,565년간 실존했던 두번째 등장한 우리조상이 세운 나라다. 배달 (倍達)이란 도(道)를 통했다는 뜻이다. 어떤 사서(史書)에는 배달은 “ 밝다” “ 밝은”의 뜻이라고도 해석 한 학자들도 있다. 필자는 둘다 옳다고 생각한다. 무진년인 BC 2333년에 환검 (왕검)단군께서 아사달( 이두어로 새로운땅 혹은 새로운 산으로 산서성에 있는 말갈백산인 현 연경산을 뜻하거나 혹은 태원을 뜻함)에 도읍(都邑)을 정한후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하고 47대 단군들이2,096 년 동안 통치하던 나라이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에의해 고조선(古朝鮮)의 이름으로 신화(神話)라고 비하(卑下)했지만 단군조선은 실존했던 국가이다.

● 우리의 역사역년(歷史歷年)은 5,909년
2011년 현재를 기준하여 동이배달한민족사의 역사 역년(歷年)은 환기(桓紀: 환인 부터) 10,947년, 배달기(倍達紀: 환웅천황 부터) 5,909년, 치우기(蚩尤紀: 치우천황부터) 4,738년, 그리고 단기(壇紀: 단군왕검 부터)는 4,344년 이다. 따라서 우리 한민족(韓民族) 즉, 동이배달한민족사 (東夷倍達韓民族史)의 역사역년은 배달기(倍達紀)인 5,909년을 사용해야 옳다. 신시개천(神市開天; 나라를 다스리기위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뜻)이 BC3898년 음력 10월 3일이며, 환웅시대(桓雄時代)인 배달국(倍達國)의 역사기록이 여러 사서(史書)에 언급되어있는데 반하여 환국(桓國)에 대한 기록은 많지않아 더 연구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음력 10월 3일을 동이배달한민족의 설날로 지정하고 이날을 기념해야 한다. 유태인들은 한 해의 시작 (그들의 설)을 10월로 하고있다. 우리 동이배달한민족의 문화가 그들에게 전파된 것으로 보여진다.